[Vol.15] 🌻 합법적인 마약을 즐겨보실 분?

9월의 둘째 날, 산뜻한 주제로 찾아오게 된 숑🌻입니다. 구독자님에게 마약 같은 존재는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는 출근하자마자 들이켜는 차가운 아메리카노일 수도 있고, 알싸한 마라탕일 수도 있고, 금연 다짐만 n년째인 담배일 수도 있겠죠. 보편적으로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 불리는 음악도 있습니다.

혹시 그거 아시나요? 우스갯소리나 비유가 아니라 음악에는 실제로 마약과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의 클라이맥스가 터져나오는 순간, 행복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우리 뇌 속에서 분출되는데요. 각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마약이 모두 이 도파민을 대체하거나 활성화합니다. 즉, 음악이 뇌에 작동하는 방식은 마약과 거의 같다고 해요. 우리도 모르는 새 일상 속에서 옅은 농도의 마약을 경험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오늘 준비한 레터는 '마약 같은 음악' 특집입니다. 마약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술, 커피 따위의 향정신성 물질에 의존하기보다 마약 못지않은 마력의 노래들에 흠뻑 빠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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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asis - Supersonic

마약의 종류는 효과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가장 흔히 알고 있는 '각성제'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에 탄 것처럼 맥박이 빨라지고 행복해지며 힘이 불끈 솟는다. 코카인, 히로뽕, 담배, 카페인 등이 각성제에 속한다. 미드나 영화의 파티 장면에서 코로 흡입하는 하얀 가루가 바로 코카인이다. 시든 식물처럼 늘어지다가도 진한 카페인 한 모금에 머리가 핑 도는 경험만 생각해도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각성제와 비슷한 노래를 고민하자마자 바로 이 곡이 떠올랐다. <Supersonic>은 90년대 브릿팝을 이끈, 형제의 난투로 지금은 해체한 전설적 밴드 오아시스(Oasis)의 94년도 데뷔 곡이다. 데뷔와 동시에 초음속(Supersonic)으로 성공을 이룬 젊은 밴드의 패기가 첫 소절부터 이글거린다. "I need to be myself, I can't be no one else (난 내 자신이 되어야 해, 다른 누구도 될 수 없어)". 권태와 피로에 동태 눈이 될 적마다 이 노래의 전주와 첫 소절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 내 20대를 줄곧 뒤흔든 잠언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가사 전체가 '잠언'이라고 할 만큼 의미 있지는 않다. "I'm feeling supersonic"이란 노랫말은 그저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약에 취한 기분을 묘사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97년 이전에는 코카인 없이 곡을 쓰지 못했다"며, <Supersonic> 역시 앨범을 녹음하다 말고 뒷방에서 10분 만에 쓴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역시 고기도 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Supersonic train'에 직접 올라타본 사람이라야 이렇게 약 빤 노래를 쓸 수 있는 모양이다.

이역만리 타국의 뮤지션이 젊을 적 코카인에 취해 휘갈긴 노랫말을 이렇듯 거창하게 품고 사는 동양의 청년이 여기 있다. 아무려면 좋다. 합법으로 각성제에 취하고 싶은 날마다 떠올릴 노래가 손 닿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좋아하는 이 노래의 라이브 영상(1996)도 첨부해본다. 3분 54초의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는 아마도 확실히, 약에 취해있는 것 같다. 그 약이 코카인일지 음악일지는 본인만 알고 있을 테다.

🌻 Chet Baker - Born to Be Blue

마약의 또 다른 종류는 '진정제'다. 아편, 헤로인, 알코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술을 진탕 마셨을 때 누군가 부축해줘도 온몸이 액체가 된 듯 힘이 쭈욱 빠지고 나른해지는 경험을 떠올려보면 효능을 상상하기 쉽다. 잔뜩 날섰던 마음이 누그러들고 마취된 것처럼 평안(?)을 찾게 된다. 영화에서 약을 숟가락에 올리고 라이터로 녹여 주사기로 맞는 장면이 나온다면 헤로인일 확률이 높다.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Chet Baker)의 삶은 마약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1950년대 미국 재즈 씬에서 그는 잘생긴 외모와 특유의 연주 스타일로 분명한 스타성을 가졌지만 불행히도 모든 스트레스의 탈출구를 헤로인에서 찾게 된다. 60년대에는 오로지 마약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곡을 쓰고 연주했다. 화려한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 날 공연 이후 자신이 묵던 호텔에서 떨어져 말로를 맞는다.

언젠가 그의 전기 영화 <본 투 비 블루>를 감상했을 때, 그저 마약에 찌들고 타락한 뮤지션을 미화한 내용이 아니냐는 주변의 혹평이 적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결코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지언정 나는 비슷한 부류의 창작자들에 꼼짝없이 마음을 내어주고 만다. 마약상들에 집단 린치를 당해 치아가 모조리 빠지고도 틀니를 낀 채 필사적으로 트럼펫을 연습하고, 과거의 영광을 잃고 작은 클럽을 전전하면서도 폭발하듯 곡을 써내고, '그저 나는 연주를 하고 싶은 것'이라며 눈빛이 일렁이는 예술가의 감정을 범상한 내가 어떻게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토록 치열하게 써낸 그의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편하게 귀에 담으며 거르고 걸러진 우울의 일부만 받아들일 따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이가 삶이란 유리창에 남기고 간 짙은 손자국을 더듬으며 이따금 센치한 감상에 빠져드는 것. 단지 그뿐이다.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상상하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듯,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삶의 일부였을 나른한 기분이 이어폰을 타고 넘어오는 것만 같다.

🌻 The Beatles - A Day In The Life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마약의 종류는 '환각제'다. 엑스터시와 LSD가 이에 속한다. 우리 몸에서 쾌락과 우울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시켜주는 물질이 세로토닌인데, 환각제는 이 세로토닌의 흡수를 막는다. 신경전달물질의 컨트롤타워가 파업을 선언하여 각성와 진정 사이를 널뛰기하며 극단적인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1967년 발매된 비틀즈의 여덟 번째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여러 모로 LSD와 연관이 깊다. 60년대 미국과 유럽을 뒤덮은 '히피' 문화의 정신세계가 담겨있는데 LSD 역시 문화의 일부라 할 만큼 만연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 번째 트랙인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LSD'로 줄여지기에 약물을 암시한다는 의혹을 더한다.

<A Day In The Life>는 실로 굉장한 곡이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쓴 두 개의 곡을 합쳤고, 오케스트라 단원 41명의 (불협화음에 가까운) 연주로 그 중간을 채웠으며, '어느 하루'라는 제목에 맞게 지극히 평범한 날을 이야기하지만 별안간 마약을 장려하는 듯한 노랫말(i'd love to turn you on)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중간의 오케스트라 연주와 마지막의 기괴한 사운드가 상당히 진입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속아 새벽에 혼자 감상하지는 않기를 추천한다. 맘 먹고 각성과 진정을 오가는 환각을 원하는 상태라면 굳이 말리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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