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80] 🌻 이렇게 좋은 시월의 '한 곡 반복' 플레이리스트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이 아름다운 시월이 성실하게 흐르고 있네요. 벌써 3년 넘게 레터를 적으면서 여러 번 썼던 내용이지만, 저는 일년 중 시월을 가장 좋아합니다. 생일이 있는 달이어서도 있지만 만약 생일이 한여름이었어도 전 시월을 가장 마음에 뒀을 것 같아요. 슬슬 색감 예쁜 니트를 꺼내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날씨,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이며 온화하고 자비로운 햇살까지. 사람으로 치면 육각형 매력이 넘쳐 흐르는 달이에요.

가만히 걷기만 해도 시월의 날들은 각별하게 느껴지니, 딱히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편은 아닌데요. 올해 제 시월엔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이벤트가 다녀갔습니다. 바로 7년 가까이 살았던 원룸에서 큰 집으로 이사를 간 거예요! 막연히 꿈꿔오던 일을 불현듯 준비하고 나니 모든 일이 폭풍처럼, 그러나 차근차근 착실하게 전진해 나갔어요. 어느덧 이삿날로부터 일주일이 넘게 흘러서 어느 정도 정신없는 이슈는 비로소 지나간 느낌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거대한 일을 척척 해낸 주변 친구들의 얼굴을 새삼 존경스럽게 떠올려보게 되는 며칠이었어요... (낡고 지침)

그 며칠간 다채로운 음악 감상엔 성실하지 못했지만, 정신없는 틈바구니에서도 자꾸 찾게 되는 마성의 '한 곡 반복'들이 있었는데요. 마침 알맞게 세 곡이 모여서 시기적절하게 소개해봅니다. 여느 시월보다도 특별하게 기억할 올해 시월의 세 곡을 함께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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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로로 - 사랑하게 될 거야

작년 초, 이른바 '2023 주목할 신인'이었던 한로로를 레터에서 소개했을 땐 (당연하게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보여줄 수 있는 음악세계가 이렇게 풍성하고 신선하면서도 매번 새롭게 매력적일 수 있다니. 한로로는 벌써 국내 유수 락 페스티벌마다 얼굴을 비추며 '아기 락스타'로서의 입지를 건실하게 다지고 있다. 데뷔곡 <입춘>에서부터 느낀 결연함(다른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은 크고 작은 모양의 꽃으로 개화하여 명맥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떨 땐 처연했다가, 또 어떤 때는 밝고 희망찼다가...

<사랑하게 될 거야>의 노랫말은 뭐랄까 요즘 사람들이 꿈꾸는 '멘탈이 건강한 사람'이 끝내 당도한 태도처럼 보인다. 실컷 울고불고 방황했던 이가 이제는 후회도, 자기의심도 걷어내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라는 가사가 들을 적마다 왜이리 콕콕 잘 박히던지. 스스로든 타인이든 사랑이란 단어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전제가 붙기란 어렵다. 겹겹의 사연과 숭고함을 상상하게 된다. 상상이 미처 닿기도 전에 노래가 끝날 만큼 아쉽고 짧아서 자꾸만 반복해 들을 수밖에 없다.

🌻 김광석 - 나의 노래

올해 시월의 사회적(!) 사건이라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빠뜨릴 수 없다. 향후 몇 년간 처음 이 소식을 접하던 순간마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얼마나 기쁘면서도 믿을 수 없고 놀랍고 벅차오르던지! 그 여진이 지금까지도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마저 나를 잔잔한 행복으로 데려간다. 도서 시장의 행복한 비명부터 당근마켓에 비싸게 올라온 그의 초판본까지.. 전례 없던 소식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소화시켰다.

그런 나날에 출판사 인스타그램에서 한강 작가의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접했다. 악뮤부터 오혁, 조동익까지 그가 글 쓰며 위안을 얻었다는 음악을 차례차례 따라 들었다. 김광석의 <나의 노래>도 리스트 중 하나였다. 새삼 가사를 곱씹으며 들으니 한 줄 한 줄이 이토록 시와 같은지.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은 가사는 첫 줄에 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애달프지만 값진 시와 노래, 문학의 기운을 가득 느낀 올해 시월이 뜻깊었다.

🌻 김일두 - 머무르는 별빛

과메기처럼 기온이 낮아질수록 제철을 맞는 김일두의 목소리. 코끝 시린 공기와 깜깜한 사위는 어디든 김일두의 무대다. 평범하고 무탈하게 보낸 시월의 하루 끝에 들은 이 노래의 연주 하나, 노랫말 하나가 맞춤옷처럼 귀에 쏙쏙 들어맞는 기분이었다. 좋은 시를 읽고 난 기분과 비슷했던가. 아니면 누군가와 새벽이 깊도록 마음을 터놓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비슷한 충만함을 느꼈던가. 꾸밈 없는 목소리 때문일까 언젠가의 순수한 순간들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시월 추적추적 비 오는 늦은 밤'으로 시작하는 첫 구절부터 내가 지금 발 디딘 시월을 더욱 실감하고 긍정하게 했다. 순수한 기쁨이란 게 별 거 있을까? 눈이 감길 듯 피곤해도 '이렇게 좋은 시월'이라고 힘주어 적고 노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할 올해 시월에 한 곡의 비지엠을 얹는다면 나는 이 곡을 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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