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26] 🌻 저는 이런 9월을 보냈어요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하루하루 하늘이 드높아지는 계절입니다. 집 밖을 나서자마자 설핏 볼에 닿는 바람이 선선할 때,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유난히 푸르를 때 희망과 위로를 느끼게 됩니다. 견디듯 걸어다녀야 하던 계절도 이제 정말 지나간 거예요. 뭐든 묵묵히 버티고 받아들이다 보면 태연하게 내 옆을 스쳐가기도 하는가 봅니다.

저는 3주 전 부친 레터에도 적었듯이 어김없이 바쁘고 벅찬 한 달을 보냈어요. 이부자리에 눕는 순간까지 골치 아프게 만든 일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은데 다 물러간 지금 달력을 보니 그 사이에서도 소소하게 웃었던 기억이 좀더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찰나의 야장 날씨를 놓치지 않으려 동글뱅이 모기향 옆에서 생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거나, 산들바람을 느끼며 완벽한 기온 속을 걷던 순간 같은 것들이요.

온도와 바람만으로 사람의 기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체감하는 나날입니다. 지쳤으면 어때, 다 지나갔는데. 힘들었으면 어때, 그만큼 좋았던 기억도 많았는데! 하루하루 시원해지는 공기에 마치 환대 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들었던 노래를 공유해 봅니다. 버거운 시간 속에서 이 레터를 읽고 계신 분들에게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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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목인 - 도심산책

음악을 듣다 보면 마치 그 사람의 내밀한 에세이를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무래도 모국어의 사소한 뉘앙스까지 감지할 수 있는 한국 노래를 들을 때 그렇다. 음악에 있어 멜로디가 중요한지 노랫말이 중요한지, 물론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지만 나는 가사에 마음이 동할 때 그 음악에 속절없이 빠져들게 된다. 마치 내 마음 같은 책을 읽고 난 직후처럼. 내가 하려던 말을 책(음악)이란 형태로 빚어내준 데 신통함과 감사를 느끼면서.

어느덧 데뷔 23년차를 맞은 김목인의 음악은 이런 부분에서 내 마음의 주파수와 자주 맞아떨어진다. 2022년 발매한 그의 네 번째 정규앨범 [저장된 풍경]은 앨범 이름처럼 머릿속 한켠에 저장된 사소한 풍경을 필름사진처럼 차분히 짚어낸다. '어느덧 뒤처진 듯 느껴지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 속한 기분' 같은 가사를 읊조리고 있으면 묵묵한 풍경 속 내 모습을 멀찍이서 관조하게 된다. '다르다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슬픈 일인지'(<다르다는 건>), 곱씹다 보면 나와 다른 존재들까지 온기 어린 시선으로 살피게 된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일상이 숨가쁠수록 나와 가까운 주변을 들여다 볼 시간이 줄어든다. 그 사실이 자주 갈급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바쁘게 살고 나면 뭐가 남을까.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을 텐데. 이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매일의 쳇바퀴를 바쁘게 돌리는 시간이 절대 다수이기에 김목인의 노래가 더 고맙고 소중하다. 정갈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귀에 담는 시간이나마 삶에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뭘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일지 사유하게 만들어 주니까.

🌻 Carpenters - Yesterday Once More

요즘 읽는 책의 제목이자 주제는 '경험의 멸종'이다. 신기술과 알고리즘의 범람으로 인해 언뜻 진보된 삶을 사는 듯하지만 대면 소통은 점차 줄어들고, 그렇게 효율적이고 정확한 삶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길에 '인간다운' 사색과 우연은 점차 사라져 간다는 이야기다. 과거의 향수에 무조건 얽매일 필요는 없다지만 우리를 둘러싼 기술의 속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이자는 흐름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내가 참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AI의 진격으로 인해 우리 곁의 아날로그, 그러니까 마주앉아 나누는 대화나 손글씨 같은 경험이 끝내 멸종에 이르게 될까. 희망 섞인 낙관이지만 나는 결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기술의 도약만큼이나 고집스럽게 비효율적인 아날로그와 어제를 지키려는 세력(?) 또한 언제나 일정 비율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맘에 드는 음악을 추천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이렇게 개인적이고 구구절절한 뉴스레터를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내 낙관에 힘을 더한다. (여러분, 새삼 고맙습니다.)

카펜터스(Carpenters)의 노래 <Yesterday Once More>는 이미 클래식이지만 아날로그를 기억하려는 이들에게 있어 앞으로도 영원한 주제곡이 되어주지 않으려나. 영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에서는 세상을 20세기로 돌려놓고 싶어하는 낭만적인 악당이 등장한다. 그 패거리의 이름 또한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였다.

🌻 윤종신 - 9월(月)

여름 끝물 더위가 오래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9월 초도 꽤 덥다. 9월을 두고 가을이란 단어는 곧장 떠오르지 않게 됐다. 대신 기온과 상관 없이 따라 붙는 이미지가 있다. 3월과 9월은 내게 언제까지나 '새학기'의 달이다. 학창시절 내내 오감으로 입력된, 이 무렵 특유의 분위기. 날씨가 춥든 덥든 그 오묘하게 낯설고 홀가분한 새학기만의 공기는 다른 어떤 시기에서도 맛보기 어렵다. 그래서 윤종신의 이 노래를 듣다가 '새학기'란 가사를 듣고 그렇게나 반가웠다. 

<9월(月)>은 2001년 발매한 윤종신의 9집 [그늘] 수록곡이다. [그늘]이라 함은 한여름의 영원한 클래식 <팥빙수>가 타이틀 곡으로 실린, 그야말로 여름 한복판의 앨범이다. <9월(月)>이 수록곡 끄트머리에 실린 건 지당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름이 끝나가면 이윽고 9월이 오니까. 노랫말처럼 '그을린 여름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을 때, '마냥 싫지 않은 묘한 기대감'과 함께 9월이 흘러가니까. 아직 더운 기운이 남은 9월 초보다 요즘의 공기에 조금 더 어울리게 느껴지는 곡이다. 며칠 남지 않은 9월을 하루하루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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