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27] 🥦 12년만에 본 뮤즈 공연에 취해있는 이의 편지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구독자 님은 한 시절이 담긴 음악이 있나요? 딱 들으면 특정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요. 저는 꽤 많은데요. 어떤 뮤지션에겐 저의 꽤 긴 시간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런 뮤지션 중 하나가 영국 밴드 뮤즈(Muse)인데요. 고등학생 시절부터 10년을 재면 가장 많이 들은 것이 뮤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그냥 노래만 부르기에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동시에 기타를 연주하다니, 고등학생 시절 제게 매튜 벨라미(Matthew Bellamy)는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뮤지션이었습니다. 드러머 도미닉 하워드(Dominic Howard)와 베이스의 크리스 볼첸홈(Chris Wolstenholme)의 연주도 너무나 매력적이긴 마찬가지였고요.

뮤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좋은 해외 밴드 중 하나여서 공연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이었죠. 제 경우엔 이번 공연 전까지 3번을 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네 번째로 뮤즈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뮤즈가 우리나라에 온 것은 10년만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12년만이었죠! 그 사이 저도 뮤즈 멤버들도 나이가 꽤 들었습니다. 사십 대 후반이 된 매튜 벨라미의 목소리는 예전만큼 폭발적이진 않았죠. 그래도 몸을 젖히면서 목소리에 힘을 주는 특유의 창법부터, 기타를 연주하는 동시에 시종일관 돌아다니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도 여전했습니다.

순식간에 공연이 끝나버렸습니다. 며칠 지난 지금은 꿈을 꾼 것처럼 공연 기억이 아득한데요. 몇몇 장면만이 머리에 남아있네요. 예전에 봤던 공연도 다시 기억나고요. 오늘 PRIIISM은 뮤즈 공연에 얽힌 제 기억들을 담아 꾸려봤습니다. 이번 공연 중 최고, 여태 본 뮤즈 공연에서 최고의 하나, 그리고 라이브를 보지 못한 곡 중에 하나를 골라봤어요. 구독자 분 중에도 공연 다녀온 분이 계실 것 같은데요. 여러분의 소감과 기억은 어떤가요?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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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e - Unintended

<Unintended>는 발매된 지 오래된 곡이라 라이브 무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투어 연주 목록을 보니 거의 빠지지 않고 <Unintended>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공연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론 뮤즈 공연 네 번만에 첫 라이브였고, 덕분인지 이번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인 기억 중 하나로 남있다.

매튜 벨라미가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 기타를 잡았고, 드럼과 베이스 대신 피아노가 반주를 맞춰서 원곡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아무렴 좋았다. 2014년 후두염을 앓은 이후 매튜가 고음 처리를 힘들어 하는데 이 곡만큼은 노련하게 잘 소화해냈다. 공연 중반에 배치되어 열기를 약간 식힐 수 있어 구성상으로도 적절했다. 가만히 있기보단 조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려는 우리나라 관중들은 휴대전화 조명으로 공연장에 은하수를 수놓았다.

곡 소개를 조금 덧붙이자면 <Unintended>는 1999년 발매된 1집 [Showbiz]에 수록되었다. 뮤즈 초창기 시절, 그러니까 '라디오헤드(Radiohead) 아류' 소리 듣던 시절을 상징하는 곡이다. 매튜 벨라미의 음색은 가녀리고 음울하며, 아르페지오로 연주되는 어쿠스틱 기타 멜로디는 어딘가 고전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라이브 버전으로 즐기기)

🥦 Muse - Butterflies & Hurricanes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뮤즈에 입문하게 만든 곡이 <Time Is Running Out>이라면, 내가 뮤즈 '뽕'에 취하게 만든 곡은 바로 이 곡이다. <Butterflies & Hurricanes>는 훌륭한 기승전결 서사를 갖춘 한 편의 드라마다. 그 하이라이트, 절정은 역시 중반의 피아노 솔로. 매튜 벨라미는 기타 못지 않게, 어쩌면 기타보다 더 매력적으로 연주하는 악기가 피아노인데, 이 곡 솔로는 그 정점이 아닐까 싶다. 나비가 날갯짓하듯 섬세하게 시작해 폭풍처럼 거세진다.

비장미가 흐르는 곡 전반의 분위기며 매튜 벨라미가 격앙된 목소리로 "Best, you've got to be the best / You've got to change the world (넌 최고가 되어야 해 /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라며 외치는 가사며, 고등학생 시절 뮤즈 뽕에 빠진 내게 <Butterflies & Hurricanes>는 시험을 치기 전 결의를 다지는 곡으로  제격이었다. (시험을 망쳐 실의에 빠지면 이 곡을 들었다.)

이번까지 네 번에 걸친 뮤즈 공연에서 최고의 순간을 선사한 곡을 꼽으라면 여러 곡이 스친다. 뮤즈 최고의 라이브 곡을 말할 때 너무 뻔한 곡부터, 이미 PRIIISM에 소개됐거나, 대중적으로 충분히 유명해서 소개하는 의미가 떨어지는 곡을 제외한다면, <Butterflies & Hurricanes>이 적절하겠다. 나는 첫 번째 뮤즈 공연 관람이었던 2010년 단독 공연에서 이 곡 라이브를 봤다. 첫 경험이라 그런지 역시 많은 순간들이 기억나는데, 그중에서도 <Butterflies & Hurricanes> 피아노 솔로는 과연 기가 막혔다. (라이브 버전으로 즐기기)

🥦 Muse - Feeling Good

리메이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원곡의 감성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리메이크가 원곡 못지 않거나 더 좋은 경우는 아주 드물게 만날 수 있는데, 뮤즈의 <Feeling Good>이 그중 하나다. 원래 뮤지컬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곡은 걸출한 소울(Soul) 뮤지션 니나 시몬(Nina Simone)이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뮤즈의 <Feeling Good>은 2집 [Origin Of Symmetry]에 실렸다.

니나 시몬이 그러한 것처럼 뮤즈의 <Feeling Good>도 전개가 드라마틱하다. 섬세함에서 출발해 격양과 폭발을 거쳐, 다시 섬세함으로 돌아오는 매튜 벨라미의 보컬이 일품이다. 도입부 이후에 등장하는 금관 악기는 곡을 리드미컬하게 만들어준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해방'이라면 뮤즈의 <Feeling Good>에선 '환희'가 느껴지는 듯하다.

노래에 실린 감정은 라이브 무대에서 더욱 도드라지곤 한다. 뮤즈처럼 라이브 무대에 강점이 있는 뮤지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아래 링크를 달아놓은 라이브(뮤즈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라이브 앨범 [H.A.A.R.P.] 버전이다)에선 종이 꽃가루가 날려서 분위기를 더 극대화 시킨다. 우리나라에선 2007년과 2015년에 걸쳐 두 번 선보인 바 있지만 하필 나는 그 기회를 놓쳤다. <Feeling Good> 라이브를 직접 보게 되는 날이 앞으로 있을까? (라이브 버전으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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