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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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곧 죽음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고, 삶이라는 것 자체가 상실의 연속, 즉 죽음의 연속이다. 이별은 곧 관계의 죽음이며, 아침은 밤이 죽었기에 온다. 이사도, 이별도 모두 죽음이다. '싸나톨로지(Thanatology)'란 그리스어로 죽음을 의미하는 '타나토스(Thanatos)'에 뿌리를 두며,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려운 죽음을 학문으로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잘 살기 위해서다.
죽을 수 있다는 건 곧 살아있다는 걸 의미한다. 윤동주 시인도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서시')라고 읊지 않았나.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의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떠올리게 되지 않나. 그게 지금 나의 위치다. 내 삶의 방향성이자, '나는 누구이고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1억 버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말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화해와 용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정인 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 자신에게 다가온 슬픔과 눈물을 온전히 맞이하면 힘은 들지언정, 단단해진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사랑하는 가족의 눈을 바라보며 '내게 와주어 고맙다'는 말과 '미안했다'고 하고 싶다. 그 말을 할 수 있기 위해 살아온 거니까.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 이 세 가지는 신의 밀어(密語)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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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 사랑과 죽음, 상실과 그리움, 공허와 외로움 등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그러나 그 뜻을 곰곰이 따지고 성찰할 때, 삶은 비로소 그 심층의 비밀을 드러낸다. 우리 삶을 채우는 것은 관계의 사슬들이나, 우리 삶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 사이에 놓인 여백, 관계 이후에 오는 공백이다. 진짜 삶이란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세간의 사건이나 발화가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곱씹으면서 사유를 덧대 가는 짧고 단순한 화두들 속에 존재한다.
관계의 여백과 공백을 화두로 삼는 내적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에 이를 수 있다. 욘 포세는 이를 “밝게 빛나는 어둠”이란 역설의 언어로 압축한다. 성찰은 삶의 피할 수 없는 어둠을 무의미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지 않고 진실의 빛으로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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