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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완 인터뷰
사진 찍다가 내가 기타로 ‘월광’을 쳤잖아요. 그거 연주하는 데만 2년이 더 걸렸어요. 누구한테 들려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까지요. 이까짓 소리가 뭐라고… 다들 마찬가지예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요. 그런데 삶을 제대로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나요? 사실 거기에 더 큰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월광’을 연습하면서 생각했어요. 사물과 세상을 보는 것도 이렇게 훈련해야겠다고요.
1978년부터 올해 3월까지 내가 라디오 방송을 안 한 날이 하루도 없어요. 매일 묵묵히 했어요. 아주 묵묵히. 이렇게 매일매일 하는 일들이 단단한 기둥이 돼요. 커다란 일인지 작은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성실을 이겨내는 건 없어요. 생에 거대한 목표가 있고, 어딘가에 올라야 하고, 거기에 인생길이 있는 게 아니에요. 삶 자체는 들이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 사이에 있는 거라고. 그런 시계추 같은 느낌이 매일매일 조금씩 쌓이면서 염세도 치유되더라고요. 루틴을 만들지 않고 금세 세상의 깨달음을 얻을 순 없다고 봐요. 지금 하는 일, 눈앞의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것뿐이에요.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그 커다란 시간을 체험할 수는 없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당신과 나의 시간이 같은 것임을 알게 돼요. 그럼 우리가 그 안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해지죠. 시간은 생의 인증서예요. 모든 아름다움의 보증서고요.
늙으면 자연스레 주름이 생기고 노안이 오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왜 청춘을 그리워하면서 노년을 보내야 하느냐는 말이죠. 찌그러지고 사라진다는 것은요, 망측하고 흉해지는 게 아니에요. 그 시간 속에서 돋아나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우리는 상실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요. 요새 알랭 들롱의 주름진 얼굴이 회자되더군요. 난 그 주름에서 웅장함을 느껴요. 결국 모든 찰나가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것이죠.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가는 길이 맞나?’, ‘내가 보는 세상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나뿐 아니라 모두가 망망대해에 떠 있을 거예요. 아무도 이정표가 없죠. 그러나 나는 순수에서 북극성을 발견했어요. 그건 다른 게 아니에요. 있는 걸 있다 하고 없는 것이 없음을 아는 것. 그것밖에는 중요한 게 없어요.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되요. 망가진 인생이라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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