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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PD는 나영석 사단에서 PD 커리어를 키웠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나 PD 산하를 떠나 만든 ‘환승연애’를 내놓으면서였다. 연애담을 넘어선 자기 성찰의 서사를 보며 시청자들은 “이건 성장 드라마다”라는 평을 내놨다. 젊은 날의 연애는, 사랑이 끝나도 성장의 나이테로 남는 법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할 거라고 쉽게 넘겨 짚어 생각하지 않는 태도. 진주씨가 나 PD에게 배운 덕목 중 가장 값지다고 꼽는 것이다. 그는 당시 나 PD가 늘 강조했던 말을 기억한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좇아야 해.” 주류나 대세의 취향을 겨냥할 수 있다면, 자신의 주관이나 고집 따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일에서 에고(자아·ego)를 뺄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국문과에서 판소리를 배울 때 이걸 느꼈어요. 우리 민족은 이야기에 미친 민족이구나. 상상해 보세요. 판소리 레퍼토리는 몇 개 안 돼요. 그러니까 맨날 똑같은 노래와 이야기를 장날에 갈 때마다 들은 거죠. 매번 같은 대목에서 슬퍼하고 쾌감을 느끼면서 같은 결말에 이르러 매번 울고 웃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해요. 그때 알았어요. 좋은 이야기엔 그런 힘이 있다는걸.” 꾸며낸 이야기가 너무 많아진 시대, 그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돌아갈 하나의 고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진정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짜만을 담겠다’는 그의 직업 철학은,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이기도 하다. 소신에 맞게 대답하고 고배를 마셨던 취준생 시절부터, 절대로 출연자에게 ‘척’을 요구하지 않는 리얼리티 예능 PD가 되기까지. ‘진짜를 향한 진심’은 그의 삶을 움직인 가장 큰 힘이다.
지난해 1월, 그는 그런 본능을 따라 13년 몸담았던 tvN을 떠나 JTBC로 적을 옮겼다. 화려하게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을 때, 이별을 결심한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이 적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러다 오만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더 컸어요. 성취의 패턴을 답습하다 보면 그 안에 안주하게 될 것 같았거든요.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니 다시 순수한 시작점에 선 기분이에요. 새 프로를 앞두고 있거든요. 오랜만에 겸허한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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