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지기
한국은 특히나 번아웃에 빠지기 좋은 환경이다. 노력과 ‘정신력’을 강조하고, 개별적인 특질보다 표준화된 기준이 우선시되며, 노동 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K팝 산업은 이러한 한국적 특수성과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결합하여 화려한 불꽃놀이를 터뜨리는 극장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긍정의 과잉’은 달콤하다. 개인은 자발성과 자유라는 광야에서 달릴 수 있다. 한계는 없다. 내가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결국, 내가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더 발전해야 한다는 내면의 자기 요구는 외부의 강요보다 훨씬 힘이 세고 저항하기 힘들다. 복어는 자기 독 때문에 죽지 않는데, 인간의 내면에 잔뜩 벼려진 독기는 성장을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다 천천히 갉아먹는다.
인간은 퀘스트를 수행하고 열심히 키우면 단계적으로 레벨 업되는(수준이 올라가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다. 강철 검이 아니기에 몸과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영생의 존재가 아니기에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할 나이의 전성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기량이 하락하며, 프로그래밍된 사물이 아니기에 어제 잘한 것을 오늘 못할 수도 있다.
아이유는 “언니는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나요?”라고 쓴 글에 “가끔 져요…”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이는 아이유의 대표적인 명언으로 꼽히며 자주 회자되었다. ‘힘든 것은 이겨내야 한다’는 당위를 뒤집으며 신선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가능한 범위를 인지하고, ‘해도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할 때 기준은 ‘성장’에서 고유한 ‘영역’으로 바뀐다. 성장은 멋진 것이지만, 상승과 전진이 변화의 유일한 방향은 아니다.
# 영혼털린 청춘들
정해진 임금을 받고 주어진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인데, 우리 사회에는 이들에게 과도한 호의를 기대하거나, 부조리까지도 감수하길 바라는 분위기가 있다. 그것에 반감을 가진 청년들이 자기 성찰 결과로 ‘소울리스’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소울리스는 ‘적은 에너지로 최대 효율을 뽑아내고’ ‘하이 텐션 대신 자신만의 캐릭터를 유지하며’ ‘일과 자기 자신을 분리해 쓸데없는 소울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했다. 일은 일일 뿐이라는 관조의 극치가 소울리스라는 것이다.
“저희가 영혼 없는 사람으로 변하는 이유는 직원과 손님 서로가 서로에게 상냥하게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시키는 일만 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다가도, 고맙다는 표현 한마디에 제 자신을, 영혼을 되찾는 듯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