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봤습니다

AI와의 싸움은 중꺾마!

코딩 백치가 일본어 단어장 앱을 만들다

2026.10.05 | 조회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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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만 하던 제가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네이버나 구글 검색 대신 제미나이를 썼죠.
궁금한 것 묻고, 필요한 정보 요청하고.
은퇴도 했겠다, 남는 건 시간뿐이라
이래저래 이 녀석이랑 노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말입니다,
똘똘한 요 녀석이 어디까지 잘하는지 궁금해졌어요.
순전히 궁금증이었습니다.

이때 나의 큰 관심사는 일본어였어요.
일본 여행 갔다가 말 한마디 못 하는 내가 너무 비참했지요.
물론 영어가 안 통하는 일본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남는 게 시간인지라 일본어 공부를 목표로 정했어요.
어순이 같아서 한국인에게는 껌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한자를 배운 세대라 유리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시작은 듀오링고였습니다.
게임처럼 단어와 문장을 배우는 인기 많은 앱이죠.
무작정 시작했더니 히라가나, 가타카나는 외워야겠더라구요.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 뇌도 같이 노화한다는 의학계의 주장을
매일매일 온몸으로 체감했죠.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겨우 읽기 시작하고 나니
또 다른 벽은 단어였습니다.
사실 벽이라고 해서도 안 되죠. 외국어에서 단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그런데 듀오링고만으로는 단어가 부족했어요.
일본어 단어 앱을 찾아봤더니 평점 높은 앱들은 대부분 유료더군요.
듀오링고도 쓰고 있는데, 또 다른 외국어 앱을 유료로??
은퇴자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아 고민하던 차였죠.

그래, 바로 그거다.
AI에게 단어장을 만들라고 시켜야겠다.
코딩도 모르고, 어떻게 지시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물은 분명했습니다.
"일본어 기본 단어 200개를 학습하게 해주는 앱이 필요해."

1라운드. 제미나이 등판

나 : 일본어 단어 공부하고 싶어. 기본 단어 200개를 학습할 수 있는 단어장 앱을 만들어줘. 내 아이폰에서 쓰고 싶어.

제미나이 : PWA 단어장 전체 코드입니다.

1초 만에 답이 왔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AI라도 이건 좀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난생처음 보는 코드가 노트북 화면을 꽉 채우며 쫘르르 펼쳐집니다.
멋있어 보이긴 했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건지 안 된 건지 알 도리는 없었죠.
PWA가 뭔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앱처럼 깔아 쓰는 웹페이지랍니다. 이름만 거창했습니다.

나 : 이게 뭐야? 나더러 어쩌라고?

제미나이 : 스마트폰 하나로 5분이면 됩니다. 메모장을 열고 코드를 붙여넣으세요. word.html로 저장하세요.

5분.
이 숫자를 꼭 기억해 두세요.

나 : 메모장이 뭐야?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 말하는 거야?

제미나이 : 맞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열고 코드 전체를 word.html로 저장하세요.

나 : 바탕화면에 저장했어. 그다음은?

제미나이 : 노트북에 있는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로 보내세요. 그리고 거기서 파일을 여시면 단어장이 보이실 겁니다.

보냈습니다.
하라는 대로 아이폰 카카오톡 앱에서 파일을 눌렀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했습니다.
와… 이제 인간이 못 할 일이 없어지겠구나.
며칠이나 걸릴 일이 1초 만에 처리되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또 다행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라운드. 5개짜리 200개

나 :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제미나이 : 카카오톡 안에서는 열리지 않습니다. 사파리로 여세요.

나 : 사파리를 못 찾겠어.

제미나이 : 파일 앱에 저장한 후 여는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가장 확실'하답니다.
그럼 아까 그건 '덜 확실'한 방법이었다는 건가요.
아무튼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파일 앱에 저장하고, 눌렀습니다.

열렸습니다!
화면에 일본어 단어가 떴습니다.
あい, 사랑. 오, 된다.
넘겼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끝.

(짜증지수 20%)

나 : 단어가 5개밖에 없는데?

제미나이 : 테스트용 샘플이었습니다. 60개를 준비했습니다.

테스트용이었답니다.
그런 말은 처음부터 해줬어야죠.
저는 200개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5개를 줘놓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안 물었으면 끝까지 말 안 했을 겁니다.
그리고 60개는 또 어디서 나온 숫자입니까.

나 : 200개 라고 했잖아?

제미나이 : 200개로 대폭 확충했습니다.

대폭.
원래 달라던 숫자입니다.
받을 걸 받았는데 선물 받은 기분을 강요당합니다.

나 : 샘플에는 예문이 없던데?

제미나이 : 예문과 음성 듣기 버튼을 넣었습니다.

(짜증지수 40%)

3라운드. 1분이면 끝난다던 늪

이번엔 바탕화면에 깔 차례입니다.
단어장을 매번 파일 앱에서 찾아 열 수는 없으니까요.

나 : 홈 화면에 추가하려는데 메뉴가 안 생겨.

제미나이 : 아이폰 보안 규칙 때문입니다. 무료 임시 웹사이트로 주소를 만들면 1분이면 끝납니다.

1분이면 끝난답니다.
이 녀석 시계는 저랑 다르게 가나 봅니다.

나 : 파일 열기를 해도 파일들이 안 나와.

제미나이 : 폴더가 엉뚱하게 잡혀 있어서입니다.

제가 잡은 거 아닙니다.

나 : 아이고… 너무 어렵다.

제미나이 : 파일을 길게 누르고 [공유]에서 [Safari]를 터치합니다.

길게 눌렀습니다. 공유를 눌렀습니다.
사파리가 없습니다.
다시 눌렀습니다. 없습니다.
안경을 벗고 봤습니다. 역시 없습니다.

(짜증지수 70%)

4라운드. 원천 차단

나 : 사파리가 안 나온다니까!

제미나이 : 아이폰이 로컬 HTML 파일을 '일반 문서'로 취급해 사파리 연결을 원천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원천 차단.
처음부터 안 되는 거였다는 얘기입니다.
그걸 이제야 말합니다. 제가 여섯 번 하소연하고 나서야.
미안하다는 말은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방법이 날아옵니다.
또 "간단합니다"로 시작합니다.

단축어 앱으로도 해봤습니다. 안 됐습니다.
임시 웹사이트도 만들어 봤습니다. 안 됐습니다.
그런데 코드를 다시 보다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개 단어에 예문까지 들어갔다는데,
코드 길이가 처음이랑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나 : 예문까지 다 들어간 200개 코드가 이렇게 짧을 수 있나?

제미나이 : 지적이 정확합니다. 직전 코드는 일부 예시만 넣은 샘플이었습니다.

지적이 정확하답니다.
칭찬을 받았습니다.
속은 사람이 칭찬을 받았습니다.

(짜증지수 100%)

창밖을 봤습니다.
해가 져 있었습니다.
5분짜리라던 일이었습니다.

5라운드. 선수 교체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하나입니다.
그 당시 언론에서 한창 떠들어대던 클로드를 불렀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코드 파일을 통째로 넘겼죠.

나 : 이거 휴대폰 바탕화면에 앱으로 깔고 싶은데, 몇 시간째 안 돼.

클로드는 바로 방법부터 던지지 않았습니다.
파일부터 열어보더군요. 그리고 한참 뒤에 이럽니다.

클로드 : 앱 자체는 문제없습니다.

나 :  어라. 그럼 뭐가 문제냐.

클로드 : 아이폰의 '홈 화면에 추가'는 인터넷 주소로 연 페이지에서만 작동합니다. 지금 파일은 휴대폰 안에 저장된 문서라서, 어떤 방법을 써도 추가 메뉴가 나오지 않습니다.

몇 시간 헤맨 이유가 딱 이 한 줄이었습니다.
서랍 속 편지는 아무리 잘 써도 주소가 없습니다.
주소가 없으니 바탕화면에 걸 수가 없던 거죠.

6라운드. 이번엔 제가 문제였습니다

마침 저는 AI와 함께 만든 홈페이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클로드 : 이미 운영하시는 홈페이지가 있으시면, 거기에 파일을 올리기만 하면 주소가 생깁니다.

간단하답니다. 그런데 업로드 메뉴가 안 보입니다.
또 짜증이 올라옵니다.
이번엔 화면을 캡처해서 들이밀었죠.

나 : 업로드 버튼이 없는데?

클로드 : 지금 로그아웃 상태이십니다. 그리고 화면이 좁아서 메뉴가 '+' 아이콘으로 줄어 있습니다.

네.
로그아웃 상태였습니다.
이건 AI 탓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7라운드. 드디어

올렸습니다. 주소가 생겼습니다.
사파리로 열고, 공유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렇게 안 나오던 '홈 화면에 추가'가 얌전히 나옵니다.

클로드 : 앱 이름은 짧게 하시는 게 좋습니다. 길면 바탕화면에서 잘립니다.

묻지도 않은 걸 챙깁니다.
기본 아이콘이 밋밋하다고 했더니 'あ / 단어장' 아이콘까지 만들어 붙여줬습니다.

제 휴대폰 바탕화면에
제가 만든 앱이 생겼습니다.

첨부 이미지

그래서, 되긴 됩니다

5분이라더니 몇 시간 걸렸습니다.
쉽진 않았어요. 그래도 됐습니다.

제 소감을 한 줄로 하면 이렇습니다.
제미나이는 넉살 좋은 신입입니다.
대답은 제일 빠른데, 되는지는 안 해보고 가져옵니다.
클로드는 깐깐한 과장입니다. 대답은 느린데, 들여다보고 가져옵니다.
물론 제 경험입니다. 그리고 AI는 누구든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막히면 방법 말고 이유를 물어보세요.
"이거 왜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그 앱, 어떠냐고요?

자주 씁니다. 진짜로요.
그런데 솔직히 좀 단순합니다.
단어 나오고, 뜻 나오고, 끝.
유료 앱처럼 캐릭터가 춤을 추지도, 폭죽이 터지지도 않습니다. 그냥 글자뿐이에요.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습니다.
반응이 한결같더군요.
"별 게 다 되는구나."
감탄인 줄 알았습니다.
가만 보니 표정은 '시시하네'였어요.

괜찮습니다.
전문가들 눈엔 코드 한 페이지짜리 앱입니다.
초보인 제 눈엔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인생 첫 프로젝트입니다.
첫 작품은 원래 좀 수수한 법이죠.

첨부 이미지

사실 벌써 욕심이 생겼습니다.
외운 단어는 체크해 두고, 못 외운 단어만 다시 나오게 하면 어떨까.
AI한테 말하면 해주겠죠.
이번엔 또 몇 분이면 된다고 할지, 벌써 기대됩니다.

따라 해보고 싶은 분은 댓글 남겨주세요. 막히는 곳, 제가 먼저 넘어져 봤습니다.

싸나이투 드림

P.S. 실제로는 열받게(?) 하는 과정들이 더 많이 있었지만,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축약한 것이니 참고해 주세요.

  이 글은 AI와 함께 초안을 만들고, 싸나이투가 직접 고쳐 썼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 다음 유람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주변에 AI가 궁금한 분이 계시면 이 뉴스레터를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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