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단풍이 보여요. 지각을 하고도 가쁜 기색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초연하게 선명해요. 부러운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법 없이 이렇게 다가오는 풍경에만 부러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을이 좋습니다. 세월이 쓸쓸하고 쌀쌀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주머니에 손을 깊게 넣고 서 있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좋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20년 전에 듣던 노래가 불쑥 생각났어요.
이맘때 사지도 않을 펜을 고르고 고르다가 문구점에서 나와 학원으로 가던 길. 조금씩 뜯어 쓰던 채점용 빨간 색연필.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산 파란색 파나소닉 CD 플레이어. 뚜껑을 열어 친구와 바꿔 낀 CD 한 장. 그 뒷면에 있던 무지개 무늬. 그런 것들은 각각 어느 경험 틈에 스며들었을까요.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도망치듯 떠나온 과거도 많이 그리워질 만큼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기다리는 것이 남아 있는 듯해요.
한편 미래를 생각하면 죄지은 기분을 떨칠 수 없어요. 지은 죄의 명목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별것 아닌 일들이지만, 초조함은 스스로에게 죄가 맞다는 결론입니다. 한때 미래였던 오늘, 과거로 돌아가 하고 싶은 말들을 솎아내면서 퇴근 후 시간을 지낼 참입니다.
어떤 성취는 소나무가 맺는 솔방울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솔방울이 많이 맺힌 소나무는 아파서 그런 거라고 들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런 번식의 양상으로 애쓰는 느낌이 된다는 것. 아닌 척했지만 올해의 성취도 그런 모양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 발밑에 떨어져 바람에 나뒹구는 솔방울들을 주워옵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귀엽고, 실내에 놓아두면 알아서 습도를 조절합니다. 이렇듯 망한 성취도 다시 볼 귀여움이, 생활력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말자고. 2024년 10월 30일 유서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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