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쫄쫄보의 유서

제13화 꿈의 활착

2024.10.24 | 조회 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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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가기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어요. 거리에 떨어진 은행을 피해 걷느라 의도치 않게 리듬을 타는 요즘. 구워 먹을 땐 참 좋은데 낙엽이 덮은 거리를 시간처럼 걸을 땐 피하기 바쁩니다. 사는 일과 비슷해요.

모든 걸 반기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내 깨달았습니다. 뭘 좀 진득하게 하고 싶어서 이러나 하는 진심. 긁고 긁다 보면 피가 나올 것 같은 무감함도 함께 깨닫습니다.

내년부터는 오래 숨죽이며 할 것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소소해도 좋고 대대해도 좋달까. 그리고 씩 하고 웃음 지으며 그 일들을 마주할 의미 있는 마지막이 있었으면 해요. 그럴 수 있으려면 시작이 있어야겠죠.

시작은 거창하지 않을수록 좋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말은 항상 거창해지기 마련이니까. 그 이야기에 대해 말을 아끼는 버릇부터 들여야 합니다.

말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대상이 이제 막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에 들었다는 자각이에요. 그리고 그 대상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사랑입니다.

방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를 깨우지 않고 조용조용 말없이 집안일을 하고 언젠가 그 누군가가 깨면 함께 먹을 밥을 짓는 사람처럼. 그 대상을 생각하면 좋지 않을지. 꿈은 적어도 그런 전제가 있어야 펼쳐질 수 있다고. 2024년 10월 23일 유서에 적어봅니다.

첫 시집과 함께하는 자리에 놓으려고 찾은 옛 전화기
첫 시집과 함께하는 자리에 놓으려고 찾은 옛 전화기

추신, 오늘 야근으로 레터 발송이 늦었습니다. 오히려 좋습니다. 심야니까요. 작은 소리도 깊게 새길 수 있는 시간. 이전보다 짤막하게 말을 아끼며 보냅니다. 지난 주말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이 전화기를 보신 분들이 계셨어요. 뉴스레터 구독 중이라는 감사한 말씀과 함께 다녀가신 분도 계셨습니다. 반가움에 어수선하게 있다 전하지 못한 감사 인사를 마저 적습니다. 고맙습니다. 엊그제는 김상혁 시인님이 첫 시집에 실린「불릿의 시」를 라디오에서 낭독해주셨어요. 심야엔 라디오가 제격이죠. 오늘 레터 끝에는 '윤고은의 EBS 북카페'와 낭독과 전후 흘러 나온 두 곡을 놓고 갑니다. 한 주간 따뜻하게 보내셔요.

1022 (화) 무리하는 시인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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