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아니 그냥 피는 물이죠. 진한 만큼 엉기는 물이기도 합니다. 피가 굳는 현상을 두고 꽤 오래 생각해 왔습니다. 혈액응고. 사자성어 같은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아시나요.
혈관 밖으로 나온 피가 굳어지는 현상. 지혈 효과가 있어 생명을 유지하는 데 불가결하다.
저는 이 불가결함을 압니다. 그러나 혈관 안에서 피가 굳어지는 현상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압니다. 가족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몸에 어디 하나 핏줄이 뻗지 않은 곳이 없고, 비교적 가까운 선대의 병환과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기에 가끔은 스스로 거처하는 온몸이 시한폭탄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가족이 여지없이 그 병에 걸리는 건 아닙니다. 그걸 혼자 피해 가겠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래도 저래도 누구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게 유일한 삶의 각오일 때도 있고요.
사람은 독자성을 지니잖아요. 또 요즘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집에 가기도 한다는데 가족들조차 모르는 남모를 시간이 한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이 흘러가는 걸까 싶기도 해요. 가족이더라도 언제나 함께 같은 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 개별적인 존재로서 많은 변수가 생긴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골똘해지면서 동시에 아득해진달까요.
살면서 경이롭다 느낀 게 꽤 있는데요. 그중에서 제일 경이로웠던 마음은 저를 낳고 키운 사람들의 마음이었어요. 그래도 너는 나보다 잘살아야지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은 내가 놓인 삶의 바탕이 두 눈을 꼭 감고 올리는 기도 같아서. 타고난 어둠이라는 게 내가 빛나면 충분한 어둠이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걸 다 아는데도 삶의 광채를 잃어만 갈 때는 내가 나를 지켰던 경험들을 떠올려요. 아주 작은 거라도 상관없어요. 마음 복잡한 자신을 위해 어딘가를 정처 없이 걸었던 경험. 누구와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혼자 어디를 다녀오고 어떤 일을 해냈던 경험.
그런 경험 속에서 또 무엇인가 혼자 겪었을 인연들을 생각하는 경험들이 결국 누군가의 한 시절을 살릴 수 있을 거예요. 또 그 한 시절은 다른 시절을 살릴 테고요. 그런 연속성을 나라고 한다면 좋겠다고. 2024년 9월 4일 유서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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