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있으면 돼요. 그 말을 듣고 곧장 위시리스트에 넣어 두었던 가람마살라였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전체적인 레시피보다는 능숙한 칼질이나 킥(Kick)이라고 알려주는 포인트 비법에 시선이 쏠릴 때가 있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알게 된 게 가람마살라 하나는 아니었겠지만, 분명 나는 그런 말에 자주 휘둘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감이 없는 사람이라도 레시피를 철저히 따른다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맛은 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감도 있고 간도 알아서 척척 잘만 맞춘다.
궁금하다. 잘하지 못해도 재미를 계속 붙일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내게 취미나 특기라는 이름으로 남은 습관들을 살펴보면 모두 언젠가 한 번은 소질이 있다거나 조금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응원의 말을 받았던 것들이다.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있다는 말, 잘할 거라는 오기 같은 거 없이 꾸준히 즐길 수 있는 건강한 것들이 있다면 유연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여유 있는 삶 이전에 유연한 생활부터 해보자 했거늘 (...) 주문한 가람마살라를 놓을 자리를 들여다보니 온통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진작 지나버린 것들이다. 간장, 식초, 식용유 등등 어느 것 하나 정성스러운 요리의 입자로 살아남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보내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들이 지나면 또 영원처럼 그 시간이 와 버린다. 어느 부분 지독하게 게으른 생활을 이런 식으로 실감하는 것에 신물이 나면서도 정리하고 반성하는 일만큼은 꾸준히 즐긴다.
스스로 잘하는 짓이다, 하고 읊조리며 기본기 없이 묘수를 바라던 나 자신을 있는 힘껏 질타하듯이 가람마살라와 함께 주방에 기본으로 있으면 좋을 것들을 주문해서 채운다. 최고의 요리 비결은 구색을 맞추기 전에 자주 오래 주방에 들어서는 것이다.
추신, 만물박사 김민지. 한 주 동안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셨는지 안부 여쭤봅니다. 저는 지난주 9월 초 백신 예약에 성공했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미룰까 맞지 말까 생각이 바뀌는 가운데 오늘 저녁에는 퇴근길에 있는 약국에서 타이레놀 한 갑을 사왔어요. 2차 접종까지 무사히 마치고 항체와 항원을 인터뷰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레터를 띄웁니다. 요즘 낮에는 매미가 울고 밤에는 귀뚜라미가 울더라고요. 한 계절의 마지막과 한 계절의 시작이 맞물려 있는 하루 잘 지내셨길 바라며 다음 레터 들고 오겠습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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