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최종 유서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그렇습니다. 남은 20일을 보내고 나면 여기 쓴 내용과 마음이 얼마나 맞거나 어긋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네요. 새해를 새해처럼 맞을 수 있기를. 올해는 연말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 지내려니 더 그렇습니다.
새것 같은 기분을 느끼려면 깨끗하기만 해서도 안 될 일이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럼 어떤 것이 더 있어야 할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새것 같은 기분을 느끼려면 아마도 포장 같은 게 필요합니다. 결국엔 뜯기고 버려질 껍질이 필요합니다. 리본처럼 정성스러운 매듭도 필요하고요. 또 그 매듭을 기쁘게 풀어볼 떨리는 손도 필요합니다.
그러고 보면 새것 같은 기분은 일종의 선물이네요.
오늘 저녁 유퀴즈에 나온 김해동 기상학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늦은 식사를 챙겼습니다. 기후 위기는 돌변성이 주된 특징이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모든 위기는 돌변성에 달린 것 같다 싶었어요. 이 시대에 추구하고 싶은 안정이란 대체 무엇이고 그 안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동시에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나의 안위 하나로 이 세상과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할 거리를 올해 반 이상 쓰지 못한 다이어리에 적고 이 유서를 씁니다.
처음 유서를 써서 내보이던 날에는 죽고 싶은데 죽을 용기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무 통의 유서를 쓰는 동안 차츰 알게 됐어요. 살고 싶은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구나, 하는 것을요. 그 집착으로 죽고 싶다는 반동이 생긴 것일 수도 있겠지요.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어도 그만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지내야 하는 이 시간을 애틋하게 느낀다면 충분합니다. 죽지 말라고 해도 고사를 지내도 언젠가 누구든 살아 있는 한 죽게 되니까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지금은 별로 없었어요. 다만 죽기 전 얼마간은 돌변성이 없는 일상을 지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2024년 12월 12월 유서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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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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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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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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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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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mala
글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되새김질을 하게 됩니다. 살아가는 게 고통스럽다는 거, 직시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면 덜 고통스러울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 '어떻게'에 이르기 위해서 오늘도 견디고 버티면서 기꺼이 다시금 길을 잃어 봅니다. 오늘 '하나'를 주문했어요. 작가님과 저자들의 통찰이 나누는 대화를 기대합니다.
만물박사 김민지
vimala 님 안녕하세요. 저 역시 대안이 없어 직시하다가도 먼 산이나 가까운 파도처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다시금 잃은 길에 좋은 풍경이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전해요. 책 주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모르는 채로 어떤 기분을 느낄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산문집도 좋지만 시집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그런 시집 추천도 좀 해볼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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