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쫄쫄보의 유서

제19화 2024년 12월 3일 밤

2024.12.05 | 조회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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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현재를 벌써부터 미래의 전쟁터로 만든다면, 어떻게 파헤쳐진 땅 위에 미래의 집을 짓겠습니까?

프란츠 카프카 지음, 편영수 엮고 옮김, 『카프카의 아포리즘』, 문학과지성사, 2021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1920년 7월 8일)


어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룻밤 사이 정리된 해프닝이 아니고, 웃고 넘길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조롱과 냉소로 비관하고 외면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곧 국회 본회의장에서 탄핵소추안 보고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고도 마냥 안심할 수 없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하는 마음뿐입니다. 정치적 사안과 삶의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어리고 막연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출퇴근길 여러 방면에서 생활을 꾸리고 있는 분들이 모여 발표한 시국선언문을 읽고, 또 거리에 나온 분들의 표정과 몸짓과 함께 놓여 있던 긴 하루가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없어도 녹록할 수 없던 연말연시였을 텐데. 모쪼록 주변 모두가 무탈하길.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꼭 돌파했으면 좋겠다고. 2024년 12월 5일 유서에 적어봅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2024년 12월 3일 밤
이런 것들은 다 소음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정적이다. 큰불이 났을 때 가끔 그렇게 극도로 긴장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줄기가 잦아들고, 소방수들도 더 이상 기어오르지 않는다. 다들 꼼짝도 하지 않는다. 저 위에서 검은 서까래가 앞쪽으로 쏠리고, 뒤로 불길이 치솟으며 높은 담벼락이 소리 없이 기울어진다. 모두들 어깨를 움츠리고 서서,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의 정적이 바로 그렇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말테의 수기』, 안문영 옮김, 열린책들, 2019)

소음보다 무서운 정적을 극복하며 부디 무탈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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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퀸리스의 프로필 이미지

    퀸리스

    1
    18 day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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