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착시를 씁니다. 잘못 본 것을 통해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그대로 시에 받아 적는 편입니다. 오늘 착시는 쓰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시를 썼지만, 운동하면서 잘못 본 것을 레터에 받아 적습니다.
벤치프레스가 끝나고 한 손에 바벨을 쥐고 X축 같은 몸을 눕혀 팔을 굽혔다 펴는 운동을 배웠습니다. 이름하여 원암프레스. 팔 한쪽으로 무게를 치는 자세를 온통 배워놓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트레이너분이 적어주신 운동일지를 보았습니다. “원앙프레스? 이게 어떤 운동이죠?”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고 말았죠.
원앙프레스. 어쩐지 책과 전혀 상관없는 청첩장을 숱하게 찍어줄 것 같은 출판사 같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읽었을까. 그렇게 열심히 한 팔 들기를 해놓고 원앙이라고 보았을까. 그러다 생각이 났습니다. 금슬의 상징인 원앙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요.
원앙의 생태는 일부다처제. 암컷이 알을 품으면 수컷은 떠난다는 이야기. 수컷 원앙을 바람둥이라 할 수도 있지만, 실제 반려 상대를 선택하는 건 암컷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찾아 읽은 밤입니다. 상징성과 다른 내막, 그 속에 짐작할 수 없던 생태의 진실이 또 숨어 있다는 게 재밌었습니다.
원앙프레스라는 운동은 배우지 못했지만, 원암프레스는 제대로 배운 밤. 아까 쓰던 한 팔 힘처럼 스스로 애를 쓰는 날들이 잦습니다. 원앙을 제대로 알든 알지 못하든 나란히 힘을 쓰는 시간은 확실히 부러워서 가끔 커플에 대한 환상을 품다가 스스로 진저리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겪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구나 하고요.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게 주어진 이 원암프레스의 시간을 견고하게 채우고 싶습니다. 하나도 못하던 푸시업도 이제는 10개 이상 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강해질 팔로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아직 문제 해결까지 가는 길이 멀지만, 정말로 그거면 됩니다.
다가오는 겨울에 결혼할 친구들에게 축하의 글을 전할 때 원앙프레스라는 이름을 쓸 거예요. 생각하니 기쁩니다. 조금은 슬프기도 할 거예요. 가슴을 제대로 들어 올리고 지지대가 되어줄 반대편 발에 힘을 줘야 한 팔을 제대로 써서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양팔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어요.
사랑하는 친구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잘살기를. 착시를 쓰다가도 축시를 쓸 거예요. 올가을 그런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2024년 10월 9일 유서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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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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