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자남 감량일지

제6화 웜업 세트

2024.06.05 | 조회 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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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가서 세트 하나 단품 하나를 고릅니다. 둘은 세트에 있던 사이드 메뉴를 나눠 먹습니다. 나란히 앉아 먹는 동안 상대가 고른 메인 메뉴는 어떤 맛인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상대가 알아서 맛보라며 내어주기도 합니다. 또 가끔은 같은 입맛을 가지고 있어 같은 메인 메뉴를 고릅니다.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맛을 느끼며 속을 채웁니다.

저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런 게 좋았어요. 천천히 먹는 사람 덕분에 천천히 음식의 맛을 느끼게 된 일. 또 그냥 보기만 해도 배부른 서로에게 맛있는 음식을 앞접시에 내어주는 일. 그리고 적당한 주변을 걸으며 대화 나누는 일.

이유 없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좋은 것이 있으면 꼭 먼저 덜어주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스스로 아끼는 것은 좋지만 자기 것이 아까워서 마음을 재는 상황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소중한 마음은 소중하게 받을 사람한테 가는 게 좋겠죠. 그렇게 되려면 일단은 스스로 아끼는 습관부터 들여야 했습니다.

어제는 바벨 40kg를 들고 스쾃을 했어요. 전보다 겁을 덜 먹게 되어 가능한 일이었죠. 맨몸 스쾃은 첫 세트에 아무 생각 안 하고 30번을 연달아 해냈어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20개가 한계였는데. 정체기도 슬쩍 돌파할 기미가 보입니다.

운동 중 세트를 이어가다보면 트레이너분이 묻습니다. 조금 더 무겁게 해서 자세 제대로 적게 할래요? 아님 무게 올리지 않고 더 많이 해볼래요? 그럼 저는 고민을 하고 제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트레이너분이 다시 말합니다. 아, 왜 망설이시죠? 무겁게 갔다가 다시 가볍게 가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두 세트를 다 소화합니다. 최대 중량으로 최대치로 동작하는 탑 세트를 끝내고, 연이은 세트 끝에 근육이 풀려갈 즈음 사력을 다해 가벼운 무게로 연신 쳐내는 드롭 세트로 마무리합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기진맥진 상태에서 웃으며 운동을 마무리할 때. 그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조금 더 무거운 것을 끝까지 지탱했을 뿐인데, 전혀 가볍지 않은데도 들어올릴 만하다 싶습니다. 이런 착각처럼 무거운 한계를 끝까지 견디고 나니 일상에 놓인 사소한 문제들은 견딜 만해요. 세트를 구성하고 싶다는 마음, 그러나 기꺼이 세트의 일부를 나눌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라면 나도 타인과도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

구독자 님은 어떤 세트 구성이 알차다고 생각하시나요? 인생에 있어서요. 모든 세트는 반복해야 의미가 있대요. 삶의 메인 메뉴는 무엇이고, 함께 즐기고 싶은 사이드 메뉴가 있는지도 살펴보세요. 저는 요즘 스트레칭과 웜업 세트의 중요성을 느낀답니다. 1인 세트는 아마도 웜업 세트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무슨 일에 앞서 시동 거는 일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니까요.

(경) 정체기 돌파 (축)
(경) 정체기 돌파 (축)

추신, 안녕하세요. 이달이 끝나면 벌써 한 해의 절반에 다다르게 된다니. 시간 참 빠르네요. 이 감량일지는 유월까지 쓰려고 했지만, 운동은 평생할 예정이라 유월 이후에 이 연재는 간헐적으로 이어갈게요. 아마도 올해 시월쯤이면 건강하게 적당한 속도로 원하던 감량치에 도달할 듯해요. 변동이 없다면 그 무렵 첫 시집이 나옵니다. 겁의 총량을 다 덜어낸 뒤에 어떤 시와 산문을 새롭게 쓰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구독자 님께서도 올해 계획하거나 소망했던 일들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셔도 좋을 듯해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터 끝에 둔 웨이브 투 어스의 노래 들으시면서 화창한 여름날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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