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초 운동을 시작할 무렵엔 턱끝을 간신히 맴도는 단발이었습니다. 당시엔 자꾸만 힘없이 길어지는 듯한 시간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권태에 취약한 인간이라, 마음이 시드는 상황이 오면 주변 정리도 못한 채 항상 새로운 일을 벌이곤 했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그중 가장 손쉬운 결정이었고, 늘 고만고만하게 길이만 다듬다가 두 뼘 이상의 머리카락을 싹뚝 자르고 온 그날만큼은 참 홀가분하더라고요. 그러나 한때의 단정함을 꾸준히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서, 지금 저는 애써 잘랐던 머리를 다시 기르는 중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변덕스럽고, 변덕스러운 가운데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힘이 있어요. 순리라면 순리이고, 오기라면 오기겠죠.
석 달 좀 넘게 운동을 하면서 몸에서 가장 먼저 윤곽을 드러낸 건 얼굴이었고, 그다음은 어깨선이었습니다. 조금 더 선명해진 어깨선에 닿을락말락한 머리카락을 보며 의식하지 않고 내 할 일 하면서 기다리면 찬찬히 돌아오는 게 그래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헬스장에서 하는 어깨 운동 중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영영 안 할 것 같은 운동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비하인드 넥 프레스입니다.
"관절에 무리를 주는 운동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PT를 받으면서 내내 뇌리에 남았던 부분은 관절에 무리가 갈 것 같은 동작을 트레이너님이 애초에 시키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몸에서 자주 접히는 만큼 마찰을 겪는 관절을 위해야 즐겁게 오래 운동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마음에도 관절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자주 접히며 마찰을 겪는 부분. 그런 게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음에 무겁게 붙은 겁들을 살처럼 뺄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사람에겐 사랑이라는 운동이 있고, 그 정성스러움과 꾸준함은 삶에 필요하니까.
얼마간 침대 맡 책장에 꽂혀 있던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 속 단편을 읽다가 일기장에 옮겨 적은 두 부분이 있습니다.
운동을 할 때, 아무 생각하지 말고 동작 하나하나, 호흡 하나하나를 가다듬는 데 신경 쓰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사랑을 할 때도 비슷한 말을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 페이스에 혼자 쏠려 하는 건 아무래도 즐겁게 오래 할 수 없습니다. 소중한 마음을 조각으로 버려두지 않는, 관절과 같은 마음을 위해주는 일을 이제라도 조금씩 해야겠습니다. "깊은 연민"으로, "진실하고 다정한 존재"가 되겠다는 각별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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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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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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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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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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