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만자남 감량일지

제1화 체스트업

2024.04.23 | 조회 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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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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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서 하는 일보다 내켜서 하는 일이 좋습니다. 뭔가 내켜서 하는 일이 현재 삶에 얼마나 있나 헤아려봤습니다.

그중 하나가 된 운동, 어제는 가슴 운동을 했습니다. 눈물은 근손실이라는 헬스인들의 격언에 따라 충실히 근손실한 주말을 지나 도착한 헬스장. 마음고생 다이어트는 안 하고 싶단 각오를 다지며 지난 주 내리 눈물을 머금고 열심히 했으니 이번 주도 다음 주도 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월요일이라 역시 출석률이 좋았습니다. 한 아주머니와 나란히 옆에 앉아 사이클을 탔습니다. 드문드문 연배 있는 회원님들의 운동하는 표정을 천국의 계단을 타며 지켜보곤 했습니다. 세월에 굳은 몸을 푸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뭔가 겸허해져서 좋더라고요. 그렇게 한동안 그 곁에 앉아 겸허하게 페달을 밟던 중 트레이너분이 도착했습니다.

2월부터 지금까지 14kg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더 남아 있지만, 조금씩 움직여 변화하는 몸이 신기합니다. 인생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라도 믿고 싶은 때. 이때, 그러니까 이 타이밍을 잘 잡는 노력이 결국 성장의 길을 열어준다는 걸 너무 잘 압니다. 살아온 경험이 그랬으니까요. 마음이 아주 힘든 때 힘을 내는 방식을 온힘으로 터득하는 것. 제 성격 중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런 겁니다. 삶에서 힘을 내는 방식 중 하나가 유머였다면, 운동도 이제 하나의 유머가 된 셈이죠.

그런 맥락에서 헬스에 마음 붙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쇠로 가득한 공간에서 탄력과 근육을 탕탕 뽐내는 게 아니라 몸을 모으고 벌리거나, 구부리거나 펴는 모든 동작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경험. 크게 다치지 않고 즐겁게 오래 운동하기 위한 이 과정이 현재 제 삶에 필요한 동력이라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흉추 세우고, 체스트업!

뻐근한 감정을 풀어내면서 쓰는 짤막한 일기처럼. 운동하는 날에 잘 들이마시고 뱉은 숨 하나가 선명한 집중의 힘을 키워줍니다. 혼자서 하나도 못했던 윗몸 일으키기를 이제는 15개 해낼 수 있어요. 늦었지만 넌지시 곁에서 본받고 싶던 어떤 사람의 습관을 따라갑니다. 에스컬레이터 없이 스스로 계단에 올라 도착하는 마음을. 전보다 활짝 가슴을 여는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민지님에서 획 하나씩 더 그었을 뿐인데 강해진 만자남
민지님에서 획 하나씩 더 그었을 뿐인데 강해진 만자남

추신, 안녕하세요. 만물박사 김민지. 아니 만자남입니다. 이 메일을 바로 열어보신 분들은 점심 직후겠네요.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점심 한자 뜻풀이가 생각납니다. 點心. 점찍을 '점'에 마음 '심'. 바쁜 일과 속 마음에 점 하나 찍듯 가볍게 무언가를 드셨길 바라며. 노래 하나 놓고 갈게요. 좋아하는 드라마의 OST인데 기억에 남는 주인공 커플 대사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미련처럼 애틋한 장르를 땔감으로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기선겸 씨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빛나던 순간들에 대한 미련, 그 미련을 값지게 쓰는 것."

"오미주 씨의 땔감은 뭐였는데요?"

"나는 두려움이나 강박 같은 거?"

"저마다 다른 사랑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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