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돌아온 수요일의 이종철, 수종철입니다. 오늘은 간만에 무거운, 그러나 끝까지 읽어보면 안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저는 집에서 기안84 영상 보는 걸 좋아합니다. 모든 남성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수의 사람 속에 기안84가 존재합니다. 기안84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집에서 막요리를 하는 게 취미입니다. 물론 저는 레시피 보고 합니다. 가끔 기안84 레시피도 따라 해보는데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맛있습니다. 기름에 김치+설탕(올리고당)을 함께 볶는 레시피는 언제 해도 맛있어요. 예전에 새마을식당 김치찌개를 수백 번 따라 해봤는데 실패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답이 그냥 설탕 넣는 거여서 황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여튼 유튜브에는 MBC가 직접 올린 기안84 클립 모음이 많은데요. 저 무해한 영상을 틀어놓고 작업을 하든 글을 쓰든 책이나 만화를 보거나 하는 것이 제 퇴근 후 일상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광석 노래가 들렸습니다. 김광석 노래 중 제가 모르는 게 있었다는 것도 놀랐는데요(찾아보니까 많았습니다 슈퍼마리오 노래도 있어요). 상의를 벗고 바닥에 앉아 벅벅 긁으며 소주와 김치볶음밥을 먹는 기안84에게 김광석 노래를 입히다뇨. 우리 모두에게는 김광석도 있습니다. 우리 안의 두 사람이 어떤 장면에서 완벽하게 만나버린 겁니다.
사실 저는 고급스러운 저 노래가 저 사람에게 저렇게 잘 어울릴지 몰랐습니다. 사실 혼자 사는 남자에게는 모두 어울릴 겁니다. 노래는 김광석의 '혼자 남은 밤'입니다. 만약 영상을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저 노래라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공감은 가지만 기안84가 불쌍하고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보다 훨씬 부자고 잘 살 테니까요. 물론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겠습니다만.
김광석의 노래는 저음일 때도 쓸쓸하지만, 고음으로 올라갈 때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슬픔이 백미입니다. 비브라토가 단단하지만 우는 사람의 흐느낌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부분 듣다가 많이들 우셨죠? 저를 가장 많이 울린 가수 중 하나입니다. 저 노래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아 이렇게~~ 슬퍼질 땐 노래를 부르자 엉어어엉ㅠㅠ
김광석은 정말 인간의 고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예요. 성인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며 느끼는 고독의 상당 부분은 김광석의 목소리에 의탁한 분이 많을 겁니다. 이런 기분이구나. 슬픈 것 까지는 아닌데 가끔 이렇게 소름 끼치는 일이구나 하는 것들.
그러다 출근한 아침, 왜 김광석은 우리를 떠났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렇게 귀한 유산을 갖고 있었는데 대체 왜.
사실 비슷한 연배 가수들의 말년은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대중이 보는 방송은 친근함을 요하고, 스타들의 괴상한 면을 칼로 깎아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 버립니다. 평범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꾸 평범함을 이끌어 내죠. 원래부터 둥글둥글한 김종서 님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박학기 같은 사람들은 방송에서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죠.
제가 트로트 자체는 좋아하지만 트로트 가수 나오는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해는 가요. 다수에게 어필해야 하고, 시청층이 노년층이니 친근하고 우스운 모습이 대중에게 적합하겠죠. 그러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 중 하나로서, 그런 시기가 오면 미디어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유튜브 위주로 활동하며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김광석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인에 대해서 정확한 건 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아름다울 때 삶이 끝났으니까요. 저는 이미 그 시기가 지난 것 같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 제 자신을 대입해 보았습니다. 삶이 끝난다면? 큰 미련이 없을 것 같아요. 고통 없이 자다 편하게 떠난다면 그것 역시 어떤 복이 아닐까 싶고요. 내가 내 구겨진 모습까지는 보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반대로 나를 구겨지게 만든다면, 그런 집착을 가지지 않으면 되겠죠.
반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그토록 삶에 미련이 없다면, 타인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지를요.
저는 김광석이 촌스럽고 지리멸렬하게라도 살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만약 그가 살아있어도 그는 끝까지 우아했을 것 같습니다만, 혹시 그렇지 못했다면, 우스꽝스럽게, 하기 싫은 방송에 얼굴을 들이밀며라도 살아줬으면.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계속 고독과 희망을 알려주었더라면. 일어나, 다시 해보는 거야-라면서요.
지인들의 얼굴도 이 공식에 대입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아름다움을 잃기 시작했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도 오래 살아남아 못난 모습이라도 계속 보여주는 게 어떨까 하고요. 한국에서 중년 남성이 못난 모습을 보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여성의 삶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건 제가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요. 하여튼 이 빙판길에서 어찌저찌 사는 건 참 어렵습니다만, 그 못난 모습이라도 나에게 말해주고 구겨진 얼굴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이 공식을 통해 유독 삶에 미련이 없는 저도 삶에 대한 고귀함을 다시 이해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모두 강한 것이라는 의미도 아로새겨 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보는 모든 여러분, 그것이 아름답지 않다 하더라도 존재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실 약속까지는 못 하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만 드립니다.
이 글을 마감한 이후 저는 투표만 하고 하루 종일 빈둥댈 생각입니다. 오뉴월 참 휴일이 많네요. 개인적으로 여러 갈래에서 마음을 다잡는 시기가 될 것이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때요 별로 안 무거운 주제였죠? 왠지 현자처럼 구는 시기가 지나, 다음 주에 저는 출장을 갑니다. 출장 가서 또 많은 활약 기대해주시고요. 저는 다음 주에 다시 돌아옵니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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