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나오는 Reference 자료 요청
오늘은 내부 회의를 합니다. 아시아 각국 담당자 및 리더십과 현재 사업 기회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하고 큰 고객사에 첫 사업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APAC 리더가 친절하게 묻습니다.
‘Any help?’
이 정도 영어는 알아듣죠. 그래서 대답합니다.
“고객이 Reference를 요구하네요.”
그러자 자신 있게 “Okay, let me help you” 하며 PPT 파일을 보내줍니다.
어찌 보면 참 고맙고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입니다.
PPT를 열어보니 수많은 미국과 유럽의 기업 로고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오, 이 기업들은 언제 다 이렇게 썼지? 우리 제품 좋은데?’
그런 생각도 잠시, 고객의 요청이 ‘국내’ Reference 있냐는 거였다는 걸 깜빡했다는 걸 떠올립니다.
‘없는 걸 어떻게 주지?’
없다고 하자니 왠지 ‘안녕히 가세요’ 할 것 같은 이 기분이 떠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처음 파는데 국내 레퍼런스를 제공해야 하는 이 모순된 상황.
영업, 오늘도 참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 영어도 다 잘하고, 글로벌 규모인데, 도대체 왜 국내 레퍼런스 있냐고 아직도 물어보는 걸까요?
Logo, Use case, Reference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에게 맞는 Use case가 뭐고 Reference가 있나요?”
이 질문 한 줄에 답을 할 수 있다면 이미 그 회사는 PMF(Product Market Fit)를 잘 찾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 제품으로 풀 문제가 뭔지 알고, 그걸 실제로 하고 있는 다른 고객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회사가 Logo, Use case, Reference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런데 셋은 조금 다르죠.
- Logo : 누가 샀는가?
- Use case : 어떤 목적으로 썼는가?
- Reference : 어떻게 도입하고 운영했고, 무슨 문제가 있었으며, 그래서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알 수 있는가?
그래서 첫 고객을 계약했다고 첫 Reference가 생긴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로고는 하나 생겼지만 우리가 왜 선택됐는지 모르고, 고객이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면 다음 고객에게 해줄 이야기가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데 왜 굳이 ‘국내’ 레퍼런스일까요?
아시아 시장만 해도 참 재밌습니다. 영어로 정보 접근이 익숙한 싱가포르나 동남아 팀들은 본사의 영문 자료와 글로벌 사례를 참 잘 활용합니다. 그런데 일본팀 동료와 이야기하면 일본어 자료와 일본 고객 사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저에게 토로합니다.
저도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Same here”를 외치죠.
한국 시장도 많이 나아졌지만, 제가 만났던 Enterprise 고객들은 여전히 국내 사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한국기업들 영어도 잘하고 외국 제품 직접 구매도 많이 하는데, 왜 여전히 이런 양상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걸 단순히 “한국이나 일본 고객은 언어가 달라서, 보수적이라서”라고 설명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업의 운영방식이나 환경의 차이를 인식해야 하는 거죠.
요즘 많은 고객이 AI를 통해 사전조사를 합니다. 그런데 AI가 알려준 내용은 다시 사람에게 확인하려 하고요. 결국 중요한 검증은 여전히 사람 쪽에서 일어납니다.
Forrester의 2026년 B2B 구매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인 구매 결정에는 평균 13명의 내부 이해관계자와 9명의 외부 영향자가 관여합니다. 제가 만났던 국내 대기업들은 여기에 위계와 매트릭스 조직까지 겹치면서 의사결정 구조가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담당자 혼자 “좋습니다”라고 끝낼 일이 아닙니다. 회사 안에서 왜 이 선택을 해도 되는지 설명해야 하죠.
그래서 비슷한 회사가 같은 선택을 했고 실제로 잘 쓰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근거가 됩니다.
이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은 나와 비슷한 집단의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는 거겠죠. 같은 산업군에 있고, 비슷한 규제를 받고, 어쩌면 서로 이직도 하는 그런 회사들 말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는 고객의 경쟁사가 구매한 제품이라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하지만요.
모든 제품에서 Reference의 의미가 같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 유수 회사들이 대규모로 도입하여 사용합니다.” 하며 로고가 나오죠.
Compute, Storage, Network처럼 비교적 표준화된 인프라를 팔 때는 이 말이 꽤 강하게 먹힙니다. 큰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갔다는 것 자체가 증거니까요.
그런데 업무 프로세스 안으로 들어가는 Software나 Solution이라면, 그리고 이제 AI라면 고객이 바로 다음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운영하는 회사는요?”
같은 제품이어도 어떤 시스템·데이터와 연결하고 누가 운영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운영 방식이 다르면 더 그렇습니다. 기업 내부에서 인소싱으로 셀프서비스 기반 운영을 하는 영미권 기업과, 아웃소싱으로 시스템을 운영하는 국내기업을 놓고 보면 같은 제품이라도 사용법과 운영 주체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아무리 좋은 기능과 로고를 보여줘도 한국 고객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SI나 외부 운영 인력이 들어가고 보안·규제 조건도 다를 수 있습니다. 미국 상무부의 한국 Country Commercial Guide도 한국 Cloud·Cybersecurity 시장에서는 보안, 규제 등을 이해하는 현지 파트너의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시장이 다름을 인식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 “국내 Reference 있습니까?”는 단순히 “한국 회사도 샀습니까?”가 아니라,
“우리 같은 환경과 운영 방식에서도 실제로 운영해봤어요?”
를 확인하고 싶은 걸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품이 고객의 환경과 운영 방식에 영향을 많이 받을수록, Reference도 지금 고객과 더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국내 Reference가 없으면 첫 거래는 영영 못 하는 걸까요. 물론 그건 아니죠.
저라면 고객이 당면한 문제, 인프라·규제 환경, 구축·운영 방식, 원하는 결과 네 가지를 보여줄 수 있는지부터 봅니다.
국내 사례가 없어도 이 네 가지가 비슷한 해외 고객이라면 유명하지만 전혀 다른 환경의 로고보다 더 좋은 Reference가 될 수 있는 거죠.
또 모든 한국 고객이 같은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만난 대기업들은 보안, 인프라, 운영, 구매, 현업, 기존 SI까지 여러 사람이 구매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각자가 이 선택이 괜찮은지 판단할 근거를 각기 따로 필요로 합니다.
반대로 디지털 기반 서비스를 근간으로 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들은 이 부분에 훨씬 유연하고, 어찌 보면 영미권 기업들과 비슷한 운영구조를 가져갑니다. 인소싱과 셀프서비스로 직접 구축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많은 거죠. 다만 이런 기업들은 아주 똑똑하게도 비슷한 기능을 가진 Open Source를 찾아 쓰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이미 찾아 쓰고 있어요.”
아, Use case를 논의하기에는 기가 막히게 적합한데, 매출을 하기엔 또 너무도 멀리 있는 그들인 거죠.
결국 여기서도 질문이 달라집니다. 대기업에게는 “우리 같은 조직에서도 안전하게 도입할 수 있는가”가, 디지털 네이티브 고객에게는 “이미 직접 할 수 있는데 왜 돈을 내고 써야 하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GTM은 로고를 많이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제품을 어떤 고객에게 팔 때 어떤 근거가 필요한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처음은 누구에게나 막막하고 어렵긴 하죠.
첫 레퍼런스는 현지 GTM의 시작점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장에 들어갈 때 첫 레퍼런스를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본사의 글로벌 자료가 대신해주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첫 고객은 단순히 첫 매출이 아니라, 우리가 세운 가설이 이 시장에서도 맞는지 확인하는 첫 시험입니다. 앞으로 모든 고객이 이 ICP(Ideal Customer Profile)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더라도 가설의 범위를 상당히 줄여줍니다.
어떤 인더스트리에 우리 제품이 맞는지, 어떤 규모의 고객에서 가치가 분명해지는지, 어떤 Use case가 실제로 돈이 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는지가 한 고객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첫 고객 하나가 다음에 누구를 찾아갈지, 무엇을 먼저 보여줄지까지 정해주게 됩니다. 현지 GTM이 거기서 시작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너무 빨리 다음 고객으로 갑니다
문제는 회사가 빨리 확장하고 싶고, 로고를 늘리고 싶고, 매출을 선형적으로 증가시키고 싶다는 겁니다. 성장해야 한다는 기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멈출 수 없는 자전거와 같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본 많은 회사의 실수 또는 조급함은, 이렇게 먼저 찾아온 고객의 매출을 쉽게 정리된 매출로 착각하고 지원의 품질이 떨어진 상태에서 다음 고객을 찾아 헤맨다는 겁니다. 레퍼런스 자료에는 옳다구나 로고 하나를 넣어놓고요.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첫 고객 로고가 있다고 Reference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실제 판매 후에 사용은 잘하고 있는지, 알고 봤더니 현장에서 더 잘 활용되는 방안이나 블로커가 있는지, 놓쳤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죠.
정말 수많은 영업이 다음 분기 매출을 위해 이미 계약한 고객을 놓칩니다.
“계약했잖아. 이제 다음 매출 가져와.”
이건 영업이 잘못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첫 고객에게서 빨리 떠나는 건, 어쩌면 다음 비즈니스를 위한 무기 보급을 포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첫 고객은 회사가 같이 챙겨야 할 GTM 자산일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 한국에 진출하는 B2B 테크 기업들을 보면, 이미 한국의 유수 고객사에게서 문의를 받고 그 지원을 위해 진출을 시작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 경우에는 Use case를 논의하면서 국내 Reference에 대한 부담을 적게 시작할 수 있죠. 대신 Use case 확장과 지원인력 확장이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 일이 될 겁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찾아온 고객일수록 On-boarding을 잘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운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해주도록 더 많은 지원과 소통을 해야 합니다. 운영환경, 업무프로세스, 그리고 사용목적과 기대효과 등을 파악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쌓인 경험은 다음 고객에게 보여줄 Reference가 되고, 다음 시장에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근거가 됩니다.
물론 고객이 잘 쓰고 있다고 해서 모두 공개 Reference가 되는 건 아니죠. 로고를 써도 되는지, 사례를 어디까지 공개할 수 있는지, 다른 고객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줄 수 있는지는 별도로 고객의 동의를 받아야 하죠. 보안도 문제가 되고요. 고객 노하우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영업이 다음 고객에게 가이드해 줄 수 있는 내용은 달라집니다.
이는 거꾸로 아시아 시장이나 다른 나라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고객이 왜 우리를 골랐는지 모르면, 또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니까요. PMF와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고객사의 규모와 유명세를 떠나 우리에게 온 첫 고객은 너무 훌륭한 등대가 되어 줍니다.
Reference는 고객이 자기 회사를 설득할 근거입니다
결국 Reference라는 건, 우리 제품과 회사가 고객이 처한 상황을 실제로 해결해봤고 그에 대한 이해와 역량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는 고객을 안심시켜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자화자찬이 아니라, 고객과 비슷한 환경과 처지에서 같은 고민을 한 누군가의 검증을 통해서요.
그리고 그건 안심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담당자가 자기 회사 안에서 “우리도 이 선택을 해도 됩니다”라고 설명할 때 쓸 근거가 되는 거죠.
그냥 우리 제품을 산 사람이 아니라, 고객과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을 찾아줘야 하는 노력. 그게 Use case와 Reference의 진정한 역할이지 않을까 합니다.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그 PPT에는 로고가 가득했지만, 지금 제 앞의 고객과 비슷한 회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국내 Reference가 없다면 없는 건 빨리 없다고 해야겠죠. 대신 같은 문제를 풀었고 환경과 운영 방식, 원하는 결과가 가장 비슷한 고객을 찾아줘야 합니다. 그게 해외 고객이라도 말입니다. 이미 구매한 외국 기업과 직접 미팅을 주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고요.
아마 이 작업은 산업별로, 고객별로 계속 해야 하는 일이 되겠죠.
왜 지금 이 고객이 이 Reference를 믿을 만한 사례라고 생각할까?
내가 원하는 고객과 내가 아는 사용법 말고, 우리를 원했던 고객의 특징과 제품 사용처가 뭐였는지를 정리해보는 것. 지금부터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한 번 해볼 일
첫 고객 또는 지금 가장 잘 사용하고 있는 고객 하나를 골라, 앞에서 말한 네 가지를 정리해보죠.
- 왜 도입했나?
- 어떤 업무·인프라·규제 환경이었나?
- 누가 어떻게 구축하고 운영하고 있나?
- 실제로 효과는?
그리고 하나 더는,
이 고객이 이렇게 잘 쓴다는 게 비슷한 다른 고객에게 어떤 증명이 되나?
마지막 질문에 답을 못하겠다면 우리는 아직 첫 Reference를 만든 게 아니라 그냥 고객 주문을 처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 소개
이렇게 Reference와 Use case는 가지고 있는 의미가 생각보다 매우 큽니다. 특히 운영 환경과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그리고 이걸 쌓아가다 보면 결국 우리 제품에 적합하고 중요한 고객이 누구인지 데이터가 쌓입니다. 고객사 규모가 크다고, 유명하다고 중요한 고객이 아니기에, 회사 규모만으로 Key Account를 정할 수는 없겠죠. 우리 제품이 잘 쓰이고 확장될 환경인지도 같이 봐야 할 겁니다.
다음 화에서는 제품의 특성에 따라 어떤 고객을 먼저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Account Strategy’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참고자료
- Forrester, The State Of Business Buying, 2026, 2026년 1월. 전 세계 약 18,000명의 기업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Buyers’ Journey Survey 기반이며, 전형적인 구매 결정에 내부 이해관계자 13명과 외부 영향자 9명이 관여하고 복잡하거나 전략적인 구매일수록 늘어난다고 보고했다.
- U.S. Department of Commerce, International Trade Administration, South Korea Country Commercial Guide – Digital Economy. 한국 공공·규제 산업의 현지 보안 인증과 추가 검증 요건, 현지 시장과 규제를 이해하는 파트너와의 협력 필요성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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