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어떻게 우선순위를 둬야 하지?
QBR(분기별사업리뷰)을 하면 Account Plan도 같이 리뷰하곤 합니다.
'또?! 지난번에 했는데 3개월 사이에 뭐가 달라졌다고?! 왜 이렇게 자주 해?!'
동료들과 투덜대다가, '그러라고 월급 주는 거지 쩝', 하면서 노트북을 엽니다.
Account Plan, 참 멋집니다. 고객사 조직도, 담당자 및 의사결정권자 성향과 관계, 고객사의 업무와 페인포인트, 역학관계, 우리가 풀 수 있는 강점, 경쟁상황 등등이 파악되어 있는지, 그리고 파악한 내용을 정리해서 전략 검토를 위한 자료로 삼는 거죠.
시간이 지나며 PPT에서 SFDC, Notion 등으로 툴은 바뀌었지만 이 회의는 계속됩니다. 이제 AI가 기존 미팅기록으로 시스템 업데이트는 물론 이런 자료까지 다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오히려 문득 왜 이 고객사부터 하지? 다른 곳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대기업이라고 그냥 Account plan에 반영할 건 아닌데? 이런 생각들도 듭니다.
게다가 신규제품이나 신규시장에선 더 복잡합니다. Territory Plan이 중요한가? Account Plan인가? Key Account는 어디지? Industry별로 나눠야 하나?
지금 이 제품을 팔기 위해 먼저 달려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답부터 말하면, 매출규모가 크고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가 아니라 우리 제품으로 문제를 풀고 그 Use Case를 비슷한 고객에게 되풀이할 수 있는 곳부터 찾아야 할 겁니다. Account Plan도 고객 정보를 모으는 문서가 아니라,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할지 정하는 계획이어야겠죠.
이게 말은 쉬운데 현장에서는 잘 안 됩니다.
예전에는 제조 대기업, 통신사, 금융사가 H/W, N/W, Database, ERP, CRM의 큰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하고, 규모가 큰 기업이 많이 구매하니 세일즈 전략도 거기에 맞춰졌죠.
Cloud·SaaS로 이동하면서 규제와 디지털 비즈니스 여부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보안솔루션을 파는 지인과 DevOps를 파는 동료의 Account 우선순위도 달랐죠. 그런데 리더십이나 HQ는 유명 대기업 진척도만 묻는 때가 많습니다.
사실 같은 Tech 비즈니스인데도 중요한 고객은 다르죠. 왜일까요?
필요한 업무와 구매·도입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DevOps는 개발과 배포가 잦은 게임사나 SaaS 기업, Contact Center AI는 상담량이 많은 고객, AI 학습·추론 인프라는 스타트업이나 연구소가 더 중요한 초기 시장일 수 있습니다.
Palantir도 연례보고서에서 각 고객의 장기 성장기회를 보고 투자를 한다고 설명합니다. 산업군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우선순위를 꼭 산업군 단위부터 정할 필요는 없다는 힌트는 되죠.
그럼 맞는 고객은 어떻게 찾을까요? 우리에게 Key Account는요?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데모가 좋다고 고객이 구매하는 건 아니었죠. 그저 멋지고 추상적인 메시지는 엉뚱한 리드를 불러오고, 담당자 한 명이 좋아한다고 회사가 사주지도 않습니다. 고객은 직접 개발할지, 기존 제품을 그냥 쓸지, 새로 살지도 고민합니다.
PoC도 기술 구현해준다고 끝나지 않죠. 누가 사용하고 데이터를 제공하며 운영할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구매 가능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우선순위에 맞는 고객은 해결할 업무가 분명하고, 그 문제를 바꾸기 위해 실제로 사람과 시간, 비용을 투입할 의지가 있으며, 우리 제품으로 원하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는 고객일 겁니다.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요? 매출만 쳐다보면 이 당연한 이야기가 안 보입니다.
또 유저 한 명이 우리 제품을 잘 쓰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건 바로 대규모 계약을 한다는 게 아니라 Use Case를 발견한 거에 가깝습니다. 다른 고객에게도 반복되는지, 그 고객들은 돈을 내고 도입할 수 있는지를 따로 봐야겠죠.
그런데 계획까지 만드는 이유는 뭘까요?
리더십은 세 가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언제 얼마의 매출이 발생될 것인가, 그걸 위해 영업이 뭘 하고 있는가, 뭘 도와줘야 하는가죠. 그래서 이런 자료들을 요청하고 트레이닝시킵니다. 매출 가시성과 영업 실행력을 확인하려는 거죠. 그런데 이 요청이 실질적인 지원이나 리소스 투입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영업을 쪼는 걸로 끝납니다.
또 제품마다 잘 팔리는 고객이 다른데도 관성처럼 대기업 공략 계획만 요구하면, 담당자는 제품에 맞는 고객을 찾고 좁혀가기보다 그냥 대기업 담당자를 많이 아는 거에 집중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AI로 보고서를 더 빨리 만들 뿐이죠.
Territory Plan은 어느 고객군에 먼저 집중하고, 어디는 뒤로 미룰지 정하는 계획입니다. 공통 업무와 구매 이유, Use Case, 시장 규모, 경쟁, 판매 경로와 필요한 자원까지 봐야겠죠. 금융사 문의가 많다고 금융이 최적의 시장일까요? 단지 금융사들에 먼저 알려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Account Plan은 그 고객에게 계속 집중하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이유와 구매·확장을 위한 다음 행동을 확정하는 자료여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Account Plan을 만들 때 아래 네 가지 정도는 꼭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왜 이 고객인가? 매출규모 때문인지, Use Case 확보인지, 다른 고객사로 확장할 발판인지 구분해봅니다.
- 고객은 왜 지금 사야 하나? 해결할 문제와 대안, 돈을 들여 바꿀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지금 그냥 스터디 수준인지 확인해야죠.
- 무엇이 우리가 매출을 해내는 데 걸림돌인가? 경쟁사인가? 아니면 예산권자, 구매 기준, 내부 반대, 데이터와 운영 책임자 확보 같은 것들 중 무엇이 미확인인지, 그리고 고객은 뭘 다음 스텝으로 보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 그래서 다음 분기에 무엇을 할 건가? 고객은 누가 언제 무엇을 결정해야 하고, 우리는 누구를 만나거나 어떤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나오면 계속 집중하거나 뒤로 미룰지까지 정해야겠죠.
어떻게 접근해갈까요?
예를 들어 AI 인프라 운영·관제 관련 소프트웨어를 판다고 해보겠습니다. 마침 감사하게도 다양한 고객을 확보했네요. 대형 통신사 A는 데이터센터 운영과 연결 지어 큰 매출을, GPU 클러스터를 운영하는 연구소 B는 실제 사용과 운영 피드백을, AI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C는 비슷한 AI 서비스 기업으로 확장할 Use Case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 고객을 대하는 입장도, 전략도 같으면 안 됩니다. 사주는 대로 고마워만 할 수도 없죠.
A사가 PoC에 관심을 보여도, 우리만으로 가능한지, SI와 협업은 어떤지, 구매 시 필요한 건 뭔지 알아야죠. B사는 사용량이 많다고 좋아하며 지원만 할 게 아니라 실제 클러스터 운영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됐고, 제품에 반영할 피드백은 뭔지 정해야 합니다. C사는 어떤 업무 담당자들이 어떤 문제를 풀었고, 비슷한 고객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시간과 자원을 집중하고 투자할 목적과 고객의 다음 스텝 등이 달라야 하는 겁니다. B사처럼 초기 제품을 실제 운영에 적용하면서 기능과 개선 방향을 함께 검증하고, 향후 유료 사용 가능성까지 확인하는 고객을 스타트업에선 Design Partner라고도 부르죠. 이런 고객과 당장 매출을 책임질 고객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면 둘 다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초기엔 Territory Plan으로 가설을 세워 다양한 고객을 만나보고, 그중 집중할 고객을 좁혀 Account Plan을 세밀하게 만들고, 고객이 쌓이면 그 고객들의 결과로 Territory를 다시 고치는 거죠. 지금껏 언급한 우선순위에 따라서요.
리더십도 이 Planning 단계에서 Forecast만 확인하고 검토하지 말고 엔지니어를 더 투입할지, 파트너나 임원을 만나도록 할지, 아니면 중요도를 낮출지 결정해야 합니다. 영업에게 더 알아오라는 만큼 회사가 무엇을 해줄지도 정해야 하니까요.
AI가 다 정리해주면, 뭘 더 봐야 할까요?
AI가 미팅을 기록하고 CRM에 'PoC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업데이트가 되어도, 고객이 데이터를 제공했는지, 예산권자가 동의했는지는 별개입니다. 이미 확인된 사실, AI의 추론과 전략, 그리고 실제로 무엇이 파악되지 않았는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메타인지가 명확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지난 분기 만들어진 자료에 새로 알게 된 담당자 및 예상 프로젝트 한 개만 추가하고 나머진 똑같은 Account Plan이 만들어지죠.
그래도 전통적으로 돈 많은 대기업이 중요하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는 말이죠. 올해 6월 OpenAI가 발표한 삼성전자의 ChatGPT Enterprise·Codex 도입처럼 큰 기업 하나에서 대규모 도입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전개는 담당자 개인이나 전반적인 GTM 전략만으로 만들어내기 어렵고, 그걸 참고하여 일반 전략으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결국 운칠기삼이야' 해버리면, 아무 계획도 안 나오죠.
15화에서 보고서를 왜 쓰는지 이야기했는데, Account Plan도 다르지 않습니다. 3개월마다 다시 꺼내는 건 지난번 파악하고 판단한 게 맞았는지, 고객이 그 후 어떤 의사결정을 했고 우리 노력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그러면서 퍼즐 조각을 더 맞춰가는 거죠.
그래서 다음 QBR 시 Account Planning에는 앞의 네 가지를 기억하면서, 그중 3가지라도 정리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왜 이 고객에게 집중하는가? 매출규모, Use Case 검증, 확장 중 무엇인가.
- 지난 분기 이후 고객은 어떤 의사결정을 했고, 다음에는 누가 무엇을 언제 정해야 진행이 되는가? (결국 누굴 어떤 메지를 가지고 만나야 하는가죠)
-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결과에 따라 계속 집중하거나 후순위로 미룰 것인가?
이 내용이 안 써진다면 아직 계획이 아니라 고객 소개서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Account의 세 줄을 나란히 놓고 Use Case와 구매 진척도를 비교하면 기회가 반복되는 업무와 고객군이 보이겠죠. 시장 규모, 매출규모 및 확장성을 확인해 다음 Territory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겁니다. HQ에 왜 이 시장에 먼저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지 설명할 근거도 여기서 나오고요.
영업이 '나 이 고객사 잘 알고 있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를 보여주는 자료도, 리더십이 담당자의 활동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자료도 아니어야 합니다.
왜 이 고객에게 집중하고, 고객의 어떤 결정을 이끌어내며, 그 결과에 따라 무엇을 더 하고 무엇을 뒤로 미룰 것인지 함께 정하는 계획이 Account Planning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요?
AI가 고객 정보를 정리하고 계획서까지 만들어주는 시대라도, 적어도 이 과정만큼은 영업과 리더십이 직접 해야 할 겁니다.
다음 글 예고
QBR, 제안서, Account Plan, 미팅 로그와 MEDDICC까지 AI가 정리해줍니다. 그럼 이제 미팅만 더 많이 하면 될까요? 많이 만난다고 매번 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죠. 모든 활동이 기록되는 시대, 어떤 미팅을 찾아서 잡고, 그 미팅을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해야 할까요? 다음 글에서는 그 미팅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참고문헌
- Palantir Technologies, Form 10-K, 2024 회계연도 연례보고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 OpenAI, Samsung Electronics brings ChatGPT and Codex to employees, 2026년 6월 21일.
- 헤럴드경제. 삼성전자·OpenAI 기업용 AI 도입 관련 보도, 2026년 6월.
- 노컷뉴스, OpenAI to supply ChatGPT to Samsung Electronics employees…largest deal to date, 2026년 6월.
- Bessemer Venture Partners, Design partners: The pre-launch edge most AI founders ignore, 2026년 5월 6일.
본문의 A·B·C사는 설명을 위한 가상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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