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31

여름 - 11

2025.08.04 | 조회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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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김토성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그 중간 어딘가에서.

1층에서 문을 열고 나서면 알 수 있다.

그날이 시원할지, 아니면 끈질기게 속삭이듯 더울지.

 

얼굴들이 다들 지쳐 있다. 너무 덥고 습했다.

에어컨이 어쩌지 못하는 사무실의 헌 공기에 치이고, 퇴근길 식어 가는 찜기 같은 열기에 찌든다.

‘내가 눈치 없이 살아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매일.

 

지친 건지, 어딘가 고장이 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으려고 할 때쯤,

불쑥 들이치는 기억을 마주할 때가 있다.

 

회색 건물들 사이로 비집고 나온 하늘을 마주하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헤엄치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캡처해둔 사진을 찾으려 사진첩을 위로 올리다 한낮에 레몬즙을 듬뿍 뿌린 오징어 튀김에 맥주를 들이킬 때의 그 뜨겁고도 시원했던 사진을 본다거나,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는데 커피콩을 볶는 매콤하게 고소한 냄새가 비강 속으로 순식간에 깊숙이 들이칠 때.

 

이런 기억들은 피할 수 없이 날 행복하게 한다.

작고 사소한 행복.

오늘도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 휘청이던 걸음걸이를 다잡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하게 그리워할 기억들을 만들어서, 온몸으로 좋아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취향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다.

이제 곧 대학 졸업이라 여행을 가고 싶은데, 학자금 대출도 많이 남았고 모아 둔 돈도 없어서 대출을 좀 받아서 여행을 가고 싶다고.

젊었을 때의 여행은 나중에 하는 여행과 달라서 가 보고 싶다고.

 

다들 정신 차리라는 댓글이었지만, 난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때의 반짝이는 몇 가지 순간을 마음에 담아 두고, 오랜 시간 위로받으며 사니까.

 

그 글을 쓴 사람이 어디로 여행을 갔는지 못 갔는지, 졸업을 하고 돈을 벌어서 여행을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서든 행복한 순간 하나 담아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서,

그래서 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저릿할 만큼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야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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