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31

여름 - 2

2025.09.25 | 조회 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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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김토성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그 중간 어딘가에서.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여름, 시카고의 폴란드계 이민자였던 트레이시 자즈먼(Tracy Zardsman)은 폴란드 이민자 조합의 회관에서 다트를 즐겼다(금주법의 시대였기에 지금처럼 펍에서 다트를 할 수는 없었다).

 

당시 다트핀은 조악해서 아무리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도 핀이 목적지를 비껴가기 일수였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악함 덕분에 의도치 않게 높은 점수를 얻곤 했다. 트레이시는 다트가 본인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1933년에 시카고 최초의 다트 클럽을 열었고, 그녀의 사망으로 클럽이 문을 닫았던 1939년까지 매년 다트 대회를 개최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매번 실패하고 엇나갔을 대공황의 시기에 다트가 그녀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핀이 날아가는 짧은 시간동안 가능성이 펼쳐지며 기대감은 한껏 올라간다. 아직 핀이 꽂히기 전이지만 내가 원했던 곳으로 간 것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의 통쾌함과 결국 핀이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꽂혔을 때의 짜릿함.

하지만 혼자 던져봐야 재미가 없다. 다트는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완성된다.

 

누구에게나 삶의 앞에 놓여진 길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발을 헛딛는 건 아닌지 넘어지거나 엉뚱한 곳으로 가진 않을지 불안하다. 다트핀을 던져 20을 맞추고 싶지만 1에 맞을 수도 있고 과녁 밖으로 나가버릴 수도 있다. 삶도 다트도 가능성을 향해 던지고 불확실함을 견디는 일이다. 그리고 둘 다 곁에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견딜 만하다.

그래서 트레이시는 다트클럽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았던 게 아닐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황량해진 마음과 불안함을 안고 하루하루 보내던 당시에 누가 먼저랄것 없이 다트 기계 앞에 모이게 된 것은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불확실한 시기를 즐겁게 지나보낼 수 있었다.

 

진심으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서로 웃기고 비웃고 까불어도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사람들과 다트를 하면서 다시 즐거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래서 심난하고 울적하던 그 시기에 서로에게 위안이 되려고 우리는 다트를 그렇게 열심히 던졌나 보다(사실은 붕어빵과 간식을 남의 돈으로 사먹는 즐거움 때문이었지).

 

그리고 트레이시 자즈먼(Tracy Zardsman)은 Crazy Darts Man의 애나그램이다. 시카고 다트클럽은 대공황의 혼돈속을 헤쳐가는 인물이 다트를 좋아한다면 저런 마음으로 다트클럽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지어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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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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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커피의 프로필 이미지

    회사커피

    1
    2 months 전

    집에 다트 기계를 들인지 거의 2년 10번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역시 같이 해야 재밌어요!

    ㄴ 답글 (1)
© 2025 명랑한 은둔자. 김토성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그 중간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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