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가발 속의 법정

프랑스 궁정의 유행이 영국 법정의 전통이 되기까지, 말총 가발에 얽힌 권위와 평등의 역사

2026.10.31 | 조회 44 |
0
|
from.
강태준

2017년 9월, 케냐 나이로비의 대법원 법정에서 아프리카 정치사에 오래 남을 판결이 내려졌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무효로 선언한 대법원의 결정은 현직 대통령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지만, 권력 앞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순간으로 평가받았다. 그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지던 법정에서 눈길을 끈 것은 변호사들이 머리에 얹은 하얀 가발이었다. 말총을 곱슬곱슬하게 말아 만든, 영국 법정에서 건너온 전통 복식이었다.

케냐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해는 1963년이었지만, 반세기가 넘도록 법정의 차림새에는 옛 제국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제 독립국의 사법부가 대통령의 권위에 맞서는 순간에도, 그 가발은 변호사들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었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의 법정을 찾으면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저 가발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것을 들여온 제국이 물러난 뒤에도 어째서 여전히 저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일까.

첨부 이미지

여러 영연방 국가에서 법정변호사(왼쪽)와 판사(오른쪽)가 법정에서 착용하는 가발. 출처: Oxfordian Kissuth - Own work, CC BY-SA 3.0

 

유행이 떠난 자리에 남은 전통

 

영국 사법부가 직접 설명하는 법정 가발의 기원은 의외로 소박하다. 법정 밖에서 사람들이 가발을 쓰고 다녔기에 법정 안의 사람들도 그 유행을 따랐다는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일찍 머리숱이 줄어들기 시작한 루이 13세가 1624년 무렵 가발을 쓰기 시작했고, 아들 루이 14세의 시대에 이르러 그 유행은 유럽의 궁정과 상류 사회로 퍼져나갔다. 영국에서는 1660년 왕정복고로 왕위에 오른 찰스 2세의 시대에 가발이 사교계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왕의 취향을 따라, 궁정의 사람들도 저마다 머리 위에 풍성한 머리카락을 얹었다.

법률가들이 처음부터 이 유행을 반긴 것은 아니었다. 그전까지 단정하게 다듬은 짧은 머리와 수염 차림으로 법정에 섰던 이들은 한동안 익숙한 모습을 고수했고, 1680년대 초의 판사 초상화에도 여전히 가발을 쓰지 않은 얼굴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1685년 무렵에는 가발이 법정에 널리 자리 잡으면서, 시대의 취향은 법률가의 차림새까지 바꾸어놓았다.

가발의 유행을 두고는 이가 들끓던 시절 위생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나, 매독으로 인한 탈모를 가리기 위해서였다는 설명도 전해진다. 다만 영국 사법부가 법정 가발의 도입 배경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런 사정보다 단순한 이유, 곧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입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가발은 누구나 가볍게 장만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좋은 가발에는 상당한 돈이 들었고,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분을 뿌려 모양과 빛깔을 유지하는 데에도 품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값비싼 유행이라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18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차츰 가발을 벗었고, 자연스럽게 다듬은 머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법정에서는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흘렀다. 거리에서 가발 쓴 사람들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판사와 변호사들은 익숙한 차림을 지켰고, 한때 세련됨의 표시였던 물건은 어느새 전통의 이름으로 남게 됐다.

1822년 가발 제작자 험프리 레이븐스크로프트가 특허를 낸 말총 가발 제작법은 그 전통을 이어가는 데 힘을 보탰다. 손질에 들이는 수고를 덜면서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자, 일상의 유행에서 밀려난 가발은 법률가의 직업 복장으로 더욱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에도 에디 앤 레이븐스크로프트는 당시 특허를 낸 수작업 방식을 이어 법정 가발을 만든다고 소개한다. 오래된 법정의 풍경 뒤에는, 그만큼 오래 이어져 온 손의 기술도 있는 셈이다.

 

머리 위에 쌓이는 세월

 

법정에 남은 가발은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의식 때 판사나 고위 법정변호사가 쓰는 풍성한 가발은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일상적인 재판에서는 그보다 작고 단정한 가발이 쓰인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단어 ‘빅위그(bigwig)’에서 큰 가발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누가 가발을 쓰는지를 살펴보면 법조계 안의 오래된 경계도 드러난다.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법정에 서서 변론하는 법정변호사인 배리스터가 가발을 썼고, 법률 상담과 서류 업무 등을 맡는 사무변호사인 솔리시터는 쓰지 않았다. 같은 법률가라도 머리 위의 차림이 직역을 구별했던 것이다.

가발에는 경력의 흔적도 남는다. 오래 사용해 빛이 누렇게 바래고 가장자리가 해진 가발은 법정을 드나든 세월을 보여주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반대로 하얗고 빳빳한 새 가발은 막 일을 시작한 변호사의 풋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새것을 장만하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들지만, 정작 그 물건에 무게를 더하는 것은 가격표보다 시간이 되는 셈이다.

남성과 여성이 같은 형태의 가발을 쓴다는 점도 흥미롭다. 개인의 취향과 외모를 덜어내고 하나의 직업적 모습으로 모이게 한다는 생각은, 가발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내세워 온 이유이기도 하다.

가발을 옹호하는 이들은 그 아래 있는 개인보다 그 사람이 맡은 역할이 먼저 보인다고 말한다. 가발과 법복을 갖춰 입은 순간, 누군가의 이웃이거나 가족인 한 사람이 판사와 변호사라는 공적인 존재로 법정에 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변 보호에 대한 기대도 담겨 있다. 특히 형사 재판에서는 법정 밖에서 판사나 변호사를 알아본 사람이 위협하거나 보복할 가능성이 있으니, 평소의 인상과 다른 차림이 어느 정도 거리를 만들어준다는 논리다. 물론 가발 하나가 얼굴을 완전히 숨겨주는 것은 아니지만, 옹호론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개인과 직무 사이에 놓이는 그 한 겹의 경계다.

영국의 전 법무장관 로버트 버클랜드는 법정 복장을 학교 교복에 비유했다. 같은 차림을 갖추면 젊은 변호사도 원로 변호사 곁에 동등한 자격으로 설 수 있다는 뜻이다. 재판을 일상의 다툼과 구별하는 격식 역시 이들이 가발에서 찾는 가치다.

그러나 법정에 들어선 모든 사람이 그 격식을 공평함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법률가에게 익숙한 차림이 처음 법원을 찾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례이자 위압적인 풍경이 될 수 있다. 영국 사무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캐럴라인 커비가 우려했던 것도, 법정의 모습이 시민에게 소외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가발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같은 질문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다. 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거리가 어디까지이며, 그 거리가 시민과 법 사이를 지나치게 멀어지게 하지는 않는가.

첨부 이미지

 스코틀랜드 최고법원 판사로 재직한 울먼 경(재임 2008~2023)이 민사최고법원인 세션법원의 전통 법정 복장을 착용한 모습. 현재 이 법원 판사들은 복장 규정이 정장 착용으로 바뀌면서 전통 법정 복장을 입지 않는다. 출처: College of Justice - https://www.judiciary.scot/home/judiciary/judicial-office-holders/senators-of-the-college-of-justice, OGL 3

 

가발을 남긴 나라, 벗어놓은 나라

 

가발을 세계 곳곳으로 퍼뜨린 영국에서도 법정의 차림은 달라지고 있다. 2007년 발표된 잉글랜드·웨일스의 복장 개혁에 따라 이듬해부터 민사·가사 재판을 맡는 판사들은 가발을 벗었고, 디자이너 베티 잭슨이 만든 새로운 법복을 입기 시작했다. 2009년 출범한 영국 대법원도 처음부터 가발을 쓰지 않았다.

형사 법정에는 전통적인 차림이 남았지만, 그 안에서도 개인의 사정을 더 폭넓게 인정하는 변화가 이어졌다. 2025년 7월 개정된 법정 복장 지침은 기존의 종교적 사유에 더해 인종·성별·장애와 관련된 면제 범위를 넓혔고, 이를 3년간 시범 적용하도록 했다. 가발을 일괄적으로 없애는 개혁이라기보다, 같은 차림을 요구해 온 전통 안에 서로 다른 몸과 삶이 들어설 여지를 넓힌 변화에 가깝다.

그렇다고 격식의 의미에 대한 합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일부 가사 법정에서는 판사들이 다시 법복을 입는 시범 운영도 이뤄졌다. 가발을 벗고 복장을 간소화하는 일이 곧바로 더 나은 법정을 만든다고 단정할 수 없듯, 오래된 차림을 되살린다고 권위와 존중이 저절로 돌아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영국 밖으로 눈을 돌리면 가발의 운명은 더욱 다채롭다. 캐나다에서는 오래전에 법정 가발이 사라졌고, 인도와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법정에서도 쓰이지 않는다. 호주에서는 지역과 법원에 따라 관행이 달라, 한 나라 안에서도 가발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답이 엇갈린다.

반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는 가발이 법정의 일상으로 남았다. 나이지리아의 상급 법원에서는 여전히 가발이 요구되고, 가나에서는 2022년 대법원장이 재판 때 가발과 법복을 갖추도록 지시했다. 열대의 더위 속에서도 법률가들은 머리 위에 영국에서 건너온 전통을 얹는다.

케냐에서는 2011년 윌리 무퉁가 대법원장이 식민지 시대의 잔재라며 가발을 없애려 했지만, 뒤이어 격식 있는 법정 복장을 되살리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가발을 폐지하려는 시도에 판사와 변호사 모두 당혹스러워했다는 현지 법조계의 반응은, 이 물건의 의미가 식민 지배의 역사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일부 법률가에게 가발은 외부에서 강요된 복장이기보다, 자신이 속한 법정과 직업을 나타내는 익숙한 제복이었던 것이다.

제국이 남긴 물건은 독립과 함께 저절로 같은 의미를 잃거나 얻지 않는다. 어떤 나라에서는 벗어야 할 지배의 흔적으로 남고, 다른 나라에서는 독립한 사법부가 스스로 물려받은 전통이 된다. 같은 말총으로 만든 가발에도 각자의 역사가 내려앉는다.

첨부 이미지

법정 가발과 법복을 착용한 알나시르 비스람 케냐 고등법원 판사. 출처: Dai Sangkura - http://www.judiciary.go.ke/judiciary/images/stories/Profiles/AppeallateJudges/justice20alnashir20visram20--.jpg, Copyrighted free use

 

홍콩이 가발에 담은 약속

 

홍콩에서 가발은 한층 복잡한 의미를 지녔다.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두고는 영국식 가발과 법복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반환 뒤에도 법정의 풍경은 이어졌다.

초대 최종상소법원 수석판사 앤드루 리는 가발을 둘러싼 논란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보통법의 연속성과 법원의 존엄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법정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림스키 유엔 역시 법정 복장을 홍콩이 반환 이후에도 영국식 보통법 체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봤다.

그런 맥락에서 가발은 단순히 영국이 남긴 물건을 넘어섰다. 주권이 바뀐 뒤에도 법의 체계와 재판의 원칙은 이어진다는 약속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익숙한 가발과 법복은 달라진 시대에도 법정만큼은 연속성을 지키고 있다는 표지가 됐다.

물론 홍콩의 모든 법정에서 가발을 쓰는 것은 아니다. 최종상소법원 판사들은 가발을 쓰지 않고, 고등법원과 항소법원에서는 짧은 가발을 쓴 판사들을 볼 수 있다. 치안법원에서는 판사와 변호사 모두 가발을 쓰지 않는다. 법정의 전통도 법원의 역할과 재판의 사정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발이 직역 사이의 경계를 드러낸 순간도 있었다. 사무변호사들이 상급 법원에서 직접 변론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뒤 가발 착용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법정변호사 측에서는 같은 가발을 쓰면 두 직군의 구별이 흐려진다고 반대했다. 법률가 전체의 권위를 상징한다던 물건이, 그 안에서는 누가 어떤 자리에 속하는지를 가르는 표지가 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가발이 보여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법의 연속성을 상징할 수는 있어도, 그 연속성의 내용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법정의 차림새가 그대로라는 사실만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시민의 권리가 온전히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약속이 살아 있는지는 결국 법정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받아들여지고, 어떤 근거로 판결이 내려지는지를 통해 드러난다.

1997년, 중국으로의 주권 반환을 69일 앞둔 홍콩에서, 새 사법연도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영국식 의식이 열린 모습

 

가발 아래 남는 것

 

17세기의 유행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까닭은, 사람들이 같은 물건에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궁정의 취향이 법률가의 제복이 됐고, 직업의 표지는 권위와 평등의 상징으로, 때로는 식민 지배의 흔적이나 법치의 약속으로 읽혔다.

한국 법정의 판사들도 법복을 입는다. 평소의 옷을 벗고 정해진 차림을 갖추는 일에는 개인을 넘어 공적인 역할을 맡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위에 가발 한 겹이 더해졌을 때 누군가는 직무의 엄숙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자신과 법 사이에 놓인 낯선 거리를 느낀다. 어느 쪽의 감각도 그저 오래된 관습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취향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가발을 벗는 법정과 지키는 법정은 앞으로도 함께 존재할 것이다. 다만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일은, 그 안에 어떤 가치를 담아 이어갈 것인가를 묻는 일과 떨어질 수 없다.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을 수는 없지만, 오래된 물건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안에 쌓인 모든 의미가 헛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2017년 나이로비의 법정으로 돌아가본다. 하얀 가발을 쓴 변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 선거 결과가 무효로 선언되던 날, 그 가발에는 식민지의 과거와 독립국의 현재가 함께 겹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사법부의 독립을 세상에 보여준 것은 머리 위의 차림새보다, 권력 앞에서 내놓은 판결이었다.

그 가발이 무엇을 상징했는지에 대한 답도, 아마 판결문 안에 있었을 것이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THE PUNT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THE PUNT

영국 인문교양 뉴스레터 | 매주 여러분의 시야를 영국이 전세계에 미친 광활한 영향력만큼 넓고 깊게 확장해드립니다.

뉴스레터 문의hello@thepunt.co.uk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대표번호: 070-8027-1409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