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인의 혹은 공동체의 것이었던 땅들을 그들의 것이 아니게끔 ‘점유’해 온 군의 역사는 미군기지가 있는 한국은 물론, 일본과 필리핀, 괌과 태평양 섬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됩니다. 점유의 과정들 또한 비대칭한 권력을 기반으로 불평등과 부정의를 동반했는데요. 지역에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땅의 ‘커머닝(Commoning)’을 무시하고, 주민들로부터 토지를 강탈한 여러 역사적 사례들이 그렇습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피식민지의 토지들을 돈을 주고 거래할 수 있는 ‘자원’이자 ‘대상’으로 한정지었습니다. 브루노 라투르가 말하듯 “17세기 경제학자들이 ‘자연’을 고려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단순히 ‘생산요소로’로, 말하자면 우리의 행동에 완전히 무관심하고 무심한 자원, 마치 지구와는 관계없는 목표를 추구하는 외부인이 멀리서 획득해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괌 혹은 구아한(Guåhån)의 선주민 차모로족(CHamoru)은 스스로를 “타오타오 타노(taotao tano)” 즉, 땅의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땅을 비롯한 자원들을 소유하기보다 모두의 것으로 공유하고 관리해 온 ‘이나파마올렉(Inafa’maolek, 상호의존)’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899년, 마리아나 제도에 온 미 해군과 리처드 P. 리어리(Richard P. Leary) 대위는 사유재산권 개념을 도입했고, 새로운 토지세 시행을 통해 토지를 강탈했습니다. 리어리 대위가 도입한 ‘관세율표(Schedule of Tariffs for the Island of Guam)’는 토지에서 얻는 수익이 아닌 토지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는데요. 무거운 세율을 감당하지 못한 차모로족은 미 해군 정부에 땅을 내놓거나, 재산을 잃을까 두려운 나머지 토지 면적과 가치를 축소하여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리어리는 또한 ‘제15호 일반 명령(General Order No. 15)’을 발표하여, 토지 소유자들이 토지를 등록해야만 소유권이 인정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차모로족들은 1)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으려면 정확하게 등록해 세금을 내야 했지만, 그럴 돈이 없었고, 2) 등록하지 않으면 소유권을 잃게 되기 때문에 3) 마을과 농지 일부만을 골라 보전하는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잉여지로 파악된 토지들은 직전 식민 지배국인 ‘스페인 국왕의 땅’, 즉 미국이 합법적으로 넘겨받아도 되는 땅으로 여겨져 미국의 소유로 이전되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