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보름달이 뜨는 밤에 우리는 '연결' 그리고 '가장 오래된 내일'에 대하여

새해 첫 날이 아니라도 왜인지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계절, 구독자님 목욕은 재개했을까요? 개인적으로 설이나 추서과 같이 일정 이상의 휴일이 확보될 때라면 그동안 하지 못한 것들-이를테면 밀려버린 마감이거나 하지 못한 독서 등을-마음먹고 다시 꺼내보려는 습관이 있는데요. 비록 그게 모두 실현(천)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똑같이 하루를 살면서 갖게되는 이런 마음의 자연스러운 리부트 버튼. 분명 소중하고 귀해 나도 모르게 기분 좋아지는 아침일 거에요. 최근 저의 경우 1년도 채 돼지 않아 두 번의 이사를 하면서 연휴의 특별함은 커녕 일상의 시간 감각도 아득해져버린 와중에 얼마 전엔 친구와 늦은 저녁에 살며시 뜬 왁싱문을, 그리고 오늘은 슈퍼문 못지않게 밝게 뜬다는 보름달을 기다리고 있어요. 무리하지 않고, 부러 애쓰지 않으며 자연스레 다가오는 계절을, 기후 이변 시기에 이 말 또한 무력하다면 시간을 기다린다는 건 새삼 시간을 살아가는 가장 평범해서 이상적인, 말하자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의 감각을 살아보는 일일지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명절이라면 동네 목욕탕, 집에서 하는 목욕과 무엇이 다른 걸까요. 부러 발걸음을 해야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건 분명 오래 전부터 '목욕을 하자'라고 하는, 게으름과 찌뿌둥함을 깨어내는 마음의 '리프레쉬'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 이사온 동네에 공중 목욕탕은 아직 찾아보지도 못하면서 마음만은 탕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쉬원한 것 같은', 그런 연휴의 마지막 날, 보내고 있을까요. 얼마 전 일본에선, 정확히는 홋카이도 아사히카와(旭川) 시의 한 센토가 폐업 1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는, '센토의 부활'을 알리는 뉴스가 있었어요. 근래 센토라고 하면 '시설의 노후화 운영진의 고령화'로 인해 줄줄이 문을 닫는 분위기인데,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는 욕탕이란 분명 어딘가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리 명절과 조금은 닮아있지 않나요? 국내에서도 동네 목욕탕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시절에, 그럼에도 중요한 건 틀림없이 마음을 힐링하는 법, 주기적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무언가의 계기, 곧 따뜻한 욕탕의 품, 때로는 고향 같거나 집밥같은 보금자리일 것 같아요. %%님, 그런데 동네에 점점 사라져가는 센토, 공중 목욕탕을 다시 이곳에 불러내는 오늘의 마음가짐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어제를 마무리하며 오늘의 끝자락에서 내일을 기약하는 보름달밤의 하늘 아래, 아마도 그건 '연결'은 아니었을까요.

창업 59년의 역사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의 센토 키쿠노유(菊の湯)가 2023년 3월 문을 닫은 지 약 1년 만에 다시 동네 품으로 돌아왔어요. 구독자님, 그런데 다음 추석은 토탈 며칠 빨간 날이던가요? 

 👨‍👩‍👧‍👧 '연결'이라는 명절의 탕 한 복판에서 

그러니까 명절의 키워드는 '연결'이라는 말.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친지 친구들을 함께이게 하고 나아가 고속 도로를 꽉 채운 차들이 서로를 연결하고(이건 좀 짜증이 나지만요), 명절이라는 것 결국 사람과 사람의 만남 뿐 아니라, 지나온 날들과 기다리는 날들 사이의 '연결'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오랜만에 본 친척들과 나누는 말들엔 분명 알지 못했던 어제의 것들이 가득할 테고, 또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만남 속에서는 그 다음을 기약하는 아직 예견할 수 없는 미래가 있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근래 자꾸만 문을 닫고 또 때때로 일어나는 센토(공중 목욕탕)을 보면 이야말로 가장 명절다운 일상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어지거든요. 특히나 오랜 경영 방식에서 버티지 못해 쓰러지는 오랜 센토들을 젊은 세대의 아이디어와 기술과 새로운 시대의 생활 양식을 반영한 다양한 변화들로 일종의 탈바꿈,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 동네의 명절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이 돼요. '키쿠노유'는 홋카이도 센토이지만 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일본의 손꼽히는 인기 센토이고, 최근엔 젊은 센토 애호가들이 탕을 빌려 다양한 커뮤니티 이벤트를 열며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이전 레터에서 여러 번 소개했던 몸을 씻는 위생의 장소로서가 아닌, 동네의 만남과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적 센토를 계승하는 모델을 실천한 예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이번 재오픈은 교토에 거점을 두고 센토 컬쳐 발신 활동을 하는 'FROCLUB, フロクラブ', 일본어로 읽으면 '후로風呂' 클럽과 아사히카와의 사우나 애호가 팀 '아사히 사우나'가 힘을 모아 지금 시대에 맞는 센토, 디지털 밀레니얼 AI 시절에도 쓸모를 잃지않는 센토를 만들었어요. 곧 엄마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가 힘을 합쳐 센토의 재오픈을 이끌어낸 셈인데요. 이들이 내세운 세 가지 키워드는 '지역 커뮤니티'와 '일상의 힐링', 그리고 '건강 촉진.' 정작 몸을 청결하게 하다와 같은 공중 목욕탕의 주-역할을 빠진 것 같은데, 웬만한 집에 샤워 시설 하나 쯤 갖추고 사는 계절 센토의 역할 또한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거에요. 다만 편의 편리 만을 쫓는 디지털 기술 중심 시대에 센토의 가치를 지켜가기 위해 지하수를 사용하는 욕조는 크게 변형하지 않고, 다만 소위 목욕탕 대야나 거울과 같은 경우는 디자인을 새로하고 타일은 전체적으로 소독 세척 작업 등을 통해 청량감을 더했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목욕을 마친 다음에는 맘 편히 놓고 휴식을 할 수 있게 입구에는 아티스트 Tim Kojima 씨가 손으로 그린 일러스트가 장식되어 있고, 로비에는 레코드에서 음악이 그리고 약간의 푸드와 드링크가 준비뒤어 있기도 해요. 곧, 센토를 좋아하지 않아도 동네의 친교의 장으로서 활용될 여지를 확보해두는 셈이에요. 홋카이도의 센토, 사실 전 이 만으로도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들썩이는데, 추운 곳에서의 탕답게 사우나 시설도 리뉴얼 핀란드 식의 사우나를 체험할 수 있는 HARVIA(하르비아)製(제) 머신이 가동될 예정이에요. 그러니까 더이상 '쓸모'가 업어 폐업한다는 동네의 공중 목욕탕들, 어쩌면 단지 아직 '쓸모'를 다 발휘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우린 아직 더 '연결'을, 고향 집에 엄마 아빠 친척 들과 조금 더 대화를 해야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구독자님 아직 목욕 전 아니 연결되어 있가요?

 🚈 고향에서 하는 생각? 아키하바라에 아키하바라가 없다!?

고향이라고 하면 대부분 고속도로를 타고, 혹은 KTX 열차에 올라 장거리 여행을 하는 시골 어느 지역을 떠올리기 쉽지만, 혹시 도심에서의 고향이란 어떤 곳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때때로 이전에 살던 동네를 우연히 지날 때 무언가 마음이 뭉클해지는, 애잔하거나 애뜻함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마도 이런 걸 향수, 노스탤지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렇다면 고향을 고향으로 느끼는 건 무엇일까요. '전자 기기의 마을', 나아가 '오타쿠의 성지', 그리고 '모에 문화의 수도(萌える趣都)'라 불리는 도쿄의 아키하바라가 요즘 좀 수상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거든요. 마치 얼마 전 시부야를 가리켜 '시부야스러움이 사라졌다'고 이야기되거나, '하라쥬쿠'가 10대 거리의 타이틀을 빼앗겼다라고 했던 것처럼, 아키하바라 역시 비슷한 변화의 바람이 스쳐가고 있는가봐요. 근래 '아키하바라에서 오타쿠가 사라졌다'라는 류의 기사가 적지 않게 보이거든요. 아마도 한 5년 전, 개인적으로는 스시 장인, 그 중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여자 스시 장인을 만나러 아키하바라를 찾았을 때, 역 앞 카페 창 밖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무언지 모르면서도 이 마을을 단 한 장면으로 설명하는 듯한 기분을 받기도 했어요. 길을 걸으면 메이드 복장을 한 여자들이 호객을 하거나,

곳곳에 코스프레 복장을 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되는 곳에서 아침부터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선 줄은 분명 무언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매우 단순한, 하지만 그만큼 퓨어한 장면처럼 여겨졌거든요. 결국 그 줄의 정체를 당시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런데 요즘엔 아키하바라의 모습도 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만화를 중심으로 동인지 중심의 잡화점 '토라노아나(とらのあな)'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며 2022년에는 마지막 남아있던 1호점까지 아키하바라에서 사라졌거든요. 동네의 중앙 츄오도오리()에 인접해 아키하바라의 상징과도 같던 곳이었는데,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것, 곧 수요의 감소나 인기의 하락을 의미하는 걸까요. 건축과 마을 문화 등 서브 걸쳐 오타쿠적 지식을 자랑하는 저널리스트 야마우치 타카노리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인터넷 쇼핑의 보편화, 그리고 미소녀 만화 인기의 쇠퇴를 이야기해요. 오래 전 레코드가 그랬던 것처럼 더이상 '이곳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물건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 세상에서 마을이 마을로서의 가치를 지속해 지켜간다는 건, 분명 세월과 맞서는 일이기도 하겠죠? 더불어 소비되는 게임의 장르적 변화도 아키하바라의 탈 오타쿠 현상을 가져왔다는 해석도 있어요. 가령, 이전 같으면 미소녀 게임의 새로운 소프트가 발매되는 날 아키하바라는 곳곳이 길 줄이었어요. 하지만 근래에는 스마트폰 게임의 성장으로 게임을 즐긴다는 행위가 보다 1인칭의 개인적 소비로 전환되어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곧 만화를, 게임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키하바라를 찾아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하나둘 지워져가는 셈일텐데요. 다만, 최근의 시부야랄지 하라쥬쿠, 그리고 긴자와 아키하바라와 같이 도쿄의 마을들이 변해가는 형세를 바라보면 코로나의 영향이 여지없이 깊게 작용하고, 곧 외국인 관광객의 수요와 그에 반응해 함께 움직이는 지역 경제의 반향은 아닐까도 싶어요. 아키하바라는 근래 사라진 오타쿠 자리를 인바운드 수요가 채우고 있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근래까지 지속된 엔저까지 더해져 일본의 만화와 아니메, 그리고 게임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방문객이 급증, 일본인 대비 3~4배의 사람들이 찾고있다는 통계도 발표됐어요. 말하자면 철저하게 일본적인, 일본 서브 컬쳐의 극단이라 할 수 있는 오타쿠의 성지 아키하바라가, 한 세월을 돌아 외국인 관광 수요의 중심으로 돌아섰다고나 할까요. 한 켠으로는 잘 키워놓은 문화의 외화 벌이가 시작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아키하바라의 아키하바라답다는 것. 곧 오타쿠의 아키하바라를 가리키는 일종의 고유 명사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우리의 고향은 세월이 흘러, 곧 나이가 들어 어디에서 사나요?

단, 지난 해 아키하바라엔 '칸다 청과물 시장 부지 재개발과 함께 대형 복합 시설 '아키하바라 크로스필드'가 문을 열기도했어요. 그 곳의 콘셉트는 '미래를 책임지는 IT 거점의 형성.' 마을이란 오가는 사람들의 세월 뿐 아니라 거리에 흐르는 세월이 맞물려 아마도 변화하는 거겠죠? '아키하바라의 역사를 관통해 구축해온 전기 거리의 이미지를 형태를 바꾸면서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비즈니스 저널'의 한 필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거든요.

 🖼️ '나 때' 혹은 '그 때'란 회고형은 분명 추억의 미래형이 아닐까요 

구독자님, 명절을 이야기하며 이미 방금 전의 과거가 되어버린 추석 연휴를 돌아보며 우린 아마도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는 않을까요? '그 때는 말이지' 혹은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이에요. 전 왜인지 명절은 온통, 그냥 과거형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새해를 시작하는 설날도, 구정신정 불문하고 어딘가 과거를 한쪽 품에 안고 일어나는 맑은 하늘 아래 아침과 같고, 추석은 그야말로 수확의 계절인 만큼 지나온 한 해가 온통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만 같기도 해요. 물론 여기엔 아무런 근거나 그럴싸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지만, 명절이란 새삼 어제를 돌아보게 하는 무언가의 작용 반작용은 아닌 걸까요? 얼마 전 도쿄 시부야 인근 '히카리에'에선 바로 그 얄궂은 과거형, 애뜻함 반 미련 반 혹은 때로는 후회이기도 한 미래형의 키워드 '그 때(あんとき)'를 이름으로 한 프리마켓이 열렸어요. 단, 여기서의 '그 때'란 시부야가 주어인 만큼 서브 컬쳐와 패션이 청춘의 활기를 마음껏 펴던 90년대~00년 초반을 가리키고, 그를 위시하듯 마켓엔 당시 인기를 누렸던 패션 브랜드 'XLARGE' 등을 취급하는 비즈 인터내셔널의 현역과 OB 멤버들,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8G SHOOT'의 프로듀서이자 우리에겐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파크'와 영화 '고'로 더 친숙한 배우 쿠보즈카 요스케, 종합 격투기 선수이면서도 자신의 브랜드를 프로듀싱하는 우노 카오루 씨 등이 출점, 나아가 본 이벤트를 주최하는 마케팅그룹 '파나티크'의 오노 다이스케 사장이 전 스트리트 매거진 'Ollie'의 편집자였던 이력을 살려 프리마 사이트에는 전 '올리' 편집자들의 브랜드 창업자의 인터뷰, 90년대와 현재의 우라하라쥬를 조망하는 등의 콘텐츠도 게시했어요. 그리고 이번 행사는 지난 6월 하라쥬쿠의 또 하나의 상업 시설 '오모카도'에서의 1회에 이은 두 번째. 그러고보면 고향이라는 것, 그리고 '그 때는' 또는 '나 때'란 시제는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그 자리에 남아있는 걸까요. 멀어질 수록 지나갈 수록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고향의 끝자락에서 우리의 영원할 '안또키あんとき', 그 때를 그리워해봐요. 구독자님 그런데 내일이 연휴의 다음날, 주말까지 d-1일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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