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키가 쓰고 바나나가 읽다 '오늘과 내일과 그 불확실함'에 대하여

틀의 안과 밖. 벽의 이쪽과 저쪽. 오늘의 주제,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신작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에 대해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한 발 앞서 살펴보는 레터인데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벽, 그리고 우리 일상 곳곳에 너와 나를 가르는 벽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내 안에도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벽 안에 머문다는 건 안전하고 안심이 되는 평탄한 시간의 삶처럼 느껴지지만 그와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지 않음으로서 정체된, 고여있는 시간을 살고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즉, 새로운 경험이나 만남, 내일을 접할 기회가 그만큼 제한되어 있는데요. 바로 그런 맥락에서의 책방이 지난 5월 7일 도쿄 키치죠지에 문을 열었어요. 여행 전문 책들을 모아놓은 이름은 '거리 거리의 서림(街々書林).' 벽에 관점에서 보면 여행이란 늘 그 벽, 경게를 넘어 있잖아요. 말하자면 늘 내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곧 여행이고, 그와 같은 책들만을 모은 책방이 새로 문을 열었는데요. 위치는 도쿄 무사시노시(武蔵野市) 키치죠지 혼쵸(本町)의 카페와어패럴 숍이 늘어선 거리. 59평 남짓 크지는 않지만 1400여 권의 책과 잡화 그리고 이벤트와 전시를 할 수 있는 갤러리도 겸해요. 본래 철도 회사와 여행사, 그리고 호텔 운영 회사에서 일하고 사장까지 역임했던, 현재는 여행 작가로 살고있는

이를테면 책 보다는 여행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코야기 쥰 씨가 근래 인터넷 중심의 출판 사정에 회의를 느끼고, 직접 만남이 오가는 나의 벽과 너의 벽을 허물어 새로움이 이뤄지는 책방을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해요. '활자 이탈, 인터넷 판매가 대중화되며 마을의 서점이 하나둘 문을 닫지만, 좋아하는 영역 밖 미지의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코로나발 가지못한 여행을 대신해주는 TV 프로그램도 늘어나지만, 그래도 여행이란 직접 체험함으로서 완성이 되고, 책 또한 누군가의 2차 경험을 통한 독서보다는 나의 일상에서 만난 우연한 책과의 시간이 보다 더 리얼하고 의미를 가지잖아요. 코야기 씨의 책방엔 세계 지도에서 산과 온천, 비경과 섬, 그리고 성과 장식, 문양을 테마로 한 책 등이 놓여있고, 기행은 물론 역사와 민속, 종교와 언어에 대한 책까지 큐레이션의 폭이 꽤 넓어요. 더불어 잡화 코너와 갤러리의 전시를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간다는 게 코야기 씨의 바람이에요.

책과 책방. 저희 레터에서도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최근에도 바로 어제 그리고 그제도 마을에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는 끊이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어쩌면 책방을 둘러싸고 세월은 격변하는지 몰라도, 코야기 씨의 말에 의하면 폐점이 줄을 잇는 건단행본과 잡지 학습서 등 종합 일반 서점이고, 오히려 특정 장르에 특화된 서점들은 늘어나고 있다고도 해요. 그렇다는 건 세상엔 역시나 직접 만나고 체험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여지없이 존재하는 걸까요. 나를 둘러싼 벽을 넘어 그 밖의 나를 찾아 만나러 가는 길의 책, 그리고 책방. 무라카미 씨의 신작은 그야말로 '벽'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코로나 3년을 지나, 지금 우린 벽의 어느 쪽에 돌아와 있을까요.

 🌕 우린 얼마나 더...어느 보름달이 하는 이야기 

세상은 온통 새로운 것, 젊은 사람들과 다른 것만이 돋보이는 듯 싶지만, 오래된 시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우연히 들려온 오랜 팝송에 맘이 동하거나 이미 아는 이야기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다보면 신작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세월을 마주하게 되거든요. 일본에선 요즘 전에 없에 6070의 활약이 돋보이는 지금, 얼마 전 4월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신작 소설은 예고된 일이었지만 첫 달 판매 부수 125만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고, 그보다는 좀 어리지만 영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씨는 또 한 번 칸느에서 트로피를 가져갔죠. 타이틀은 각본상이었지만, 그 각본을 쓴 것 역시 비슷한 연배의 좀 더 어린 사카모토 유지 씨에요. 더불어 만에 영화로 돌아온 키타노 타케시의 칸느 경쟁 출품작 '쿠비(首, 목)'이랄지, 이제는 저 세상에 잠들어 있을 사카모토 류이치 씨의 에세이도 이제 곧 출간돼요. 제목이 '난 앞으로 얼마나 더 만월을 볼 수 있을까.' 전에 없이 6070 물결, 세상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예정되지 않은, 말하자면 호외랄지 갑작스런 레터를 쓰고 있는데요, 정해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에 비롯되는 새로움이 있고 때로는 얽매이지 않은 그 어딘가에 있고 싶다 느껴요. 이런 건 정말 아무 이유나 설명 없이 딱 그러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지난 6월 7일 문예지 '신초(新潮)'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강연록이 수록, 공개됐어요.

하루키 씨는 올 1월부터 5월까지 미국 메사츄세츠 주 웨일즈 여자 대학에서 특별 객원 교수로 일했는데요, 그 기간 중 진행됐던 하루키 씨의 강연록이 수록되었어요. 웨일즈 여자 대학은 마들렌 올브라이트를 비롯 3명의 여성 국무장관을 배출하고 힐러리 클린턴 전 영부인의 출신교이기도 해요. 사람이 학교를 만든다는 말, 여기서 나왔나요. 아무튼 잡지에 수록이 된 건 그 중 4월 27일 진행된 제목 '역병과 전쟁의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것'이었고, 하루키 씨는 강연에 앞서 '주제가 너무 광범위하게 잡혔다는 기우는 있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 작가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이 테마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고 이야기했다 해요. 역병과 전쟁, 실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사건 사고이지만, 어느새 모른 척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살고있는 게 또 현실이기도 하잖아요. 그럼에도 그를 외면하지 않는 것, 직시하고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것. 바로 소설, 작가의 역할이었을까요. 그의 신작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영어로는 'The City and Its Uncertain Walls' 타이을로 내년 봄 출간 예정이에요.-은,

높은 벽에 둘러쌓인 마을(가상 속 공간이라 여겨지는)에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밖의 벽 바깥 현실 생활을 알아차린 뒤 그 두 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 하루키 씨 다운 설정이죠. 그리고 이미 알려진 대로 그가 40년 전 거의 같은 제목의 중편을 작업한 적이 있거든요. 당시엔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과'로 끝났어요. 다만 하루키 씨는 당시의 엔딩이 늘 마음에 걸려 언젠가 다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게 바로 코로나 3년을 지나며 벌어졌을 뿐인 이야기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실제로 다시 써보았더니, 저는 놀라운 맘과 함께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실은 지금, 이 시대와 그 이야기는 합치한다는 것이었어요.' 하루키 씨 소설은 당시의 사건사고를 반영하기도('언더그라운드'의 옴진리교), 그 무드 안에 태어나기도('1984'에서의 포스트 옴에 관하여)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현실에 레퍼런스를 밝힌 경우는 별로 없을 거 같은데요. 사실 제목만 보아도 근래 코로나로, 그리고 전쟁으로 서로가 국경을 닫았던, 하루 아침에 하늘 길도 모두 봉쇄된 일들을 떠올려보면 어딘가에서 이 소설은 분명 지금 우리 사는 생활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아요. 하루키 씨는 이렇게 말했어요.

 🕰 시간을 들여야 드러나는 것, 이야기가 된 음악 

벽이란 건, 사실 근대 건축을 완성하는 시작이자 마지막, 곧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집을 만들고 벽을 쌓으면서 우리 일상에 존재하게 된 건축 양식이잖아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곧 나와 타자, 나아가 우리와 너희, 그리고 우리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경계(벽)을 만들어 온 알고보면 그 시작이기도 한데요. 동시에 잠재하는 대립하는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공동체의 배타주의라고도 느껴요. 하지만 그런 벽, 의식하는 일 별로 없잖아요. 도도둑을 맞지않는 한 혹은 거센 태풍이나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우린 경계에 의외로 꽤 무심하다고도 생각하는데요. 다만, 그런 무의식의 벽은 실은 보다 더 깊숙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작용해 알 수 없는 곳에서 분열을 만들고 공포를 자아내고 우리를 서로 갈라지게 해요. 그리고 바로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게, 아마 그런 이야기같아요. 소설  속 주인공 남자는 마을 안에 살면서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요. 좀처럼 그 기분을 마음 깊은 곳에서 털어낼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벽의 밖으로 나서지도 못하는데... 그렇다면 마을 안에, 벽에 둘러싸인 남자 곧 나 자신이란 자아는 어디로 쫓겨나있는 걸까. 즉, 나의 나머지 반쪽은 어디에 살고있는 걸까. 뭐 이런 초현실적인 물음이 남아요. 

잡지에선 다만 '남자는 그 부분에 무언가의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고만 적었는데요. 바로 그 지점이 이번 하루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건, 아마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벽의 여기와 저기 그 사이의 무언가가 어떤 작용을 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어떤 세계를 열어보이는, 그런 결말이 아닐까 멋대로 감히 생각해봐요. 책을 출판한 '신쵸사'는 요즘 몇몇 문학인들의 감상문을 받아 연재하고 있는데요, 요시모토 바나나 씨는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행복이 감사하다'고 적었고, 시인 사이하테 타히는 소설 속 두 소년 소녀의 관계, 사랑이거나 우정이거나 둘도 아니거나 아니면 두 다이거나에 초점을 맞춰 영원할 수 없음을 지금 당장의 현실 속에 그려낸 결국 슬픔 불확실함에 관한 이야기라 말했어요. 그 감상이 해석이 무엇이든 지금 하루키의 소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물어요. 벽 안에서 혹은 밖에서 우린 얼마나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가의 질문이랄까요. 바나나 씨는 감상을 적으며 이전 하루키 씨가 인용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바로 옆에 그건 리얼하게 존재한다.' 결국 픽션일 뿐인 소설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건 바로 지금 옆에 리얼하게 살아있어서는 아닐까요. 지금 내 책상 위에 수두룩 쌓여있는 그와 그들의 소설. 그건 지금 우리 오늘에 어떤 의미의 효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하루키 씨는 '이런 시대에 소설은 얼마나 힘(효력)을 가질 수 있을까'란 질문에 답을 했어요. 소설을 쓴다는 것, 그리고 읽는다는 것. 전쟁도 바이러스도 막아주지 못하지만, 

 👫 그리고 다시, 소년 소녀를 만나다 

'작품이 완성되고 대중에 공개한 뒤, 이미 그건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의 말인지 아리송하게도 종종 듣게되는 이런 말. 영화도 음악도 그리고 책이나 미술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면 그 무엇이든 아마 이 문장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아무리 남을 신경쓰지 않는 작가라 할지라도 내심 궁금해지는 게 내가 아닌 남의 생각이기도 하고, 아마도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란 불가능할 거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사람이란 늘, 나의 생각 말고도 남의 의견도 궁금해지기 마련인 동물인지라, 영화가 개봉할 때면 거의 리얼타임의 한 줄 평이랄지, 별 점이 어느새 퍼져있잖아요. 요즘 일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6년 만의 신작이 공개되고 공개적으로 몇몇 작가의 리뷰가 공개되었는데요. 그것도 요시모토 바나나, 시인인 사이하테 타히, 평소 하루키 팬이라 알려진 SF 작가 오가와 사토시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 등을 쓴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오가와 요우코 씨 등 현역 소설가, 작가들의 글이 출판사 웹페이지에 줄줄이 연재되고 있어요. 다른 소설가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는 건,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좀 이례적인 일이죠.

다만, 하루키 씨의 이번 작품은 그의 6년 만의 신작임과 동시에 코로나 3년을 지나며 살아온 날들의 고백이기도 하고, 그건 곧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출판사 쪽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취지로 이번 연재를 시작한 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떤 글은 감동을 주고 새로운 성찰을 안겨주지만, 또 어떤 글은 무엇보다 말하고 싶고 덩달아 이야기를 하고 싶은 동기를 가져다줘요.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영화, 그리고 소설이 수상한 파장 효과라 생각하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첫 번째 주자?였던, 하루키 씨와 동시대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여전히 활발한 요시모토 바나나 씨의 글을 일부 가져와봤어요. 그런데 바바나 씨는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 읽었습니다'로 시작, 이상하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거든요. 제목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림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아마 그림자와 하루키(春樹) 씨 이름 속 春을 의식한 타이틀 같은데,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쓴다는 것, 무슨 행위였던가요. 중간중간 바나나 씨 특유의 유머가 아주 탐스러워요.😅

 🌒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림자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에 

📙 '마을과 그 불확실한 벽' 읽었습니다'

마침 딱 그 정도(하루키 이번 소설 속 주인공들의) 나이의 커플 이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만(베끼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단시간에 베낄 수 있다면 오히려 대단한 재능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3줄에 쓸 이야기를 무라카미 씨는 세 페이지 정도 할애하고 있으니 전 분명 뼈 속부터 중단편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읽고있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리얼한 행복, 감사드립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하기에 적어봅니다. 최근, 전 어느 사람을 화나게 했습니다(그 화제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그 날 저녁 근처 맛있는 야키토리 집을 예약해두었는데, 낮에 집에 돌아오니 현관 앞 정중앙에 까마귀한테 공격당해 몸이 산산히 부서진 작은 새의 사체가 있었습니다. 이거 뭔가 그 사람과 관계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하고 마는 저의 인생은...무라카미 씨의 소설 속 세계를 살고있는 듯한 기분도 듭니다. 불쌍하기 때문에 화단에 깊이 구멍을 파고 묻어주었습니다. 조각조각이어서 '음, 이건 하츠(야키토리 가게에서 식재료로 사용하는 새의 심장 부분), 이거는 카시라(마찬가지로 야키토리 가게 메뉴 중 머리 부분을 일컫는). 다리도 있어(울음)'라고 생각하면서요. 야키토리 기분은 완전히 날아가 어쩔 수 없이 야키톤(돼지고기 꼬치)을 먹었습니다(가게에는 갔군!).

그 다음 날, 아마도 선의였겠지만 아는 사냥꾼 분에게서 피투성이의 오리 고기를 보내주었습니다. 손질은 이미 되어있었지만 '가슴 살을 분리해주세요'라 써있었으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르고 잘라 오리 전골을 만들었습니다(먹기는 먹었구먼!). 국물이 맛있었는데, 57년 인생을 살아오며 갓 잡은 오리를 받아본 적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가르시아=마르케스의 소설에 대해 무라카미 씨가 쓴 문장 그대로에요. 바로 옆에 그건 리얼하게 존재한다.

이번 소설(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은 주인공을 도와주려는 따뜻한 힘과, 그렇지 않은 힘(하지만 차갑다는 것은 아니고, 주인공의 마음 어느 부분을 완벽하게 따르는 힘)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관계하고 있어, 머리를 쓰며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저를 한껏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마도 인생을)고르고, 고르지 않고. 라고 솔직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힘껏 믿을 수 있었습니다. 코야스 씨(소설 속 등장하는 도서관의 전 관장), 다시 한 번, 만나고 싶군요~.

그런 제가(와 저의 언니)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이야기하면, 불륜으로 아빠가 엄마를 다른 남자로부터 약탈해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하라쥬쿠 역사 내 '사루타히코 커피(猿田彦珈琲)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도 마시며 있었더니, 갑자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대부분 읽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읽어버렸어요. 거기에는 '저의 아빠가 당신의 엄마와 결혼했었다는 걸 아빠가 죽은 뒤 알게됐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라 이상한 소리가 나와버렸습니다. 옆에는 아빠와 엄마와 저와 그 다음으로 아이가 있었습니다(만났을 때는 아주 작았는데 벌써 스무살입니다. 바나나 씨의 장남을 가리키는 듯해요). 또 다른 날, 언니가 부모님 유품을 정리했더니 엄마와 엄마의 남편(메시지를 준 사람의 아빠)이 과거 만들었던 동인지에, 엄마가 말도 안될 정도로 어두운 소설을 쓴 걸 발견했습니다. 동인지 편집 후기에는 '요시모토 반메이(바나나 씨의 아빠이자 소설가) 씨의 기고가 실릴 예정이었지만, 마감에 맞지 않아 게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약탈 전야의 분위기가 느껴지며 두근두근 했습니다만, 그보다 우리 아빠는 그 때부터 마감에 당당하게 늦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남편의 아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그들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저도 그도 우리 아이도 모두 이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최근 가장 무서웠던 일(산산조각난 새 사건보다도).

버지니아 울프와 저의 문체가 닮았다고 처음으로 느낀 날, 울프 씨의 작품을 꼼꼼히 다시 읽다 그녀의 유서를 찾았고, 그 글이 지금도 제가 쓸 법한 내용과 문체였습니다. 그녀는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강물에 들어가 죽음을 택한 것 같아요. 남편 몫으로 대파는 남겨놓았을까요. 여성이었기에 원하는 진학을 하지 못하거나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거나, 전쟁통에서 오랜 생활을 경험하거나...힘든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만, 지금도 그렇다면 힘든 시대이고, 언젠가 제가 그와 똑같은 유서를 써버릴 것 같은, 암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씨의 소설은 그런 공포를 완전히 해소시켜 줍니다. 이렇게나 위대한 것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첫사랑도 집요할 정도록 길고 아홉 살 때부터 10년 이상 좋다고 계속 고백을 하고 한 번 성공했다가 세 번 차였습니다만, 지난 해 그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의 딸 아이가 어느 늦은 밤 갑자기 방에 들어와 '대단한 소설 읽었어!  몸이 약한 아이가 있는데 구멍을 파고 아무튼 대단해!'라고, 많이 흥분을 했다 하더라고요. 그게 저의 'TSUGUMI(이 역시 새, 참새란 뜻. 야키토리의 저주?는 아직 이어지나요?:)'란 소설입니다. 설마 '이 여자에게 집요하게 고백받아 힘들었어'라고 말하지 않았겠죠. '초중학교 동급생이야'라고 소개했던 듯 그 아이에게 사인을 부탁받았습니다. '너의 아빠는 멋있고 언제나 인기가 많고, 너희 아름다운 엄마는 모두가 동경하는 엄마였어요'라고, 조금은 저도 흥분해 써주었습니다.

그저 이런 일이 저와 무라카미 씨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많이 있기를 애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힘든 일 투성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만, 소설가라는 건 꽤 힘든 직업이니까요.) 

 🐦 우리집 현관에 '작은 새'가 굴러 들어온 날 

어느 만큼의 결심이 필요한 걸까요. 아니, 얼마 정도의 마음 가짐이었을까요. 매일을 살며 대부분 비슷한 시간을 보내며 하지만 때로는 조금 더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들도 해가면서 가끔 그건 얼마나 크고 작은 동기, 혹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자동사적 일인가 싶은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특히나 저와 같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대체로 하고있는 사람에게 그건 곧 타동사인 척 하는 자동사와 같은 날들이기도 하거든요. 오늘은 예고없이 레터를 보내며 과연 무엇이 나를 이렇게 지금 쓰게하는가...조금 궁금해졌어요. 어제는 상암까지 영화를 보겠다고 갔다가 늦은 밤 녹초가 되어 돌아왔는데, 그 탓인지 9시가 넘어 일어났더니 등꼴이 욱신욱신 신음을 토하며 간신히 밥을 먹고 또 밥을 먹고 그렇게 살았거든요. 무엇이, 왜 뭐 때문에 저는 지금 레터를 쓰고 있을까요. 하지만 가끔 저희 엄마는 그런 말을 하시거든요. 아파도 움직여야 안 아프다는. 애초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말인데 실제로 저희 엄만 아프면서 청소도 하시고 밥도 하시고 쉬는 제 뒷바라지도 해주시고. 그러고보면 말이 되지 않지만 진실이란 존재한다고 죄송한 눈물을 흘리며 깨우칠 뿐이에요.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식을 전했는데요. 물론 전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했어요. 일본 아마죤으로 구입하면 하겠지만, 책값 2980엔인 거 리얼인가요. 단지 돈 때문은 아니지만, 하루키 씨의 이번 소설은 좀 어딘가 '밖'에서 이야기되는 것들이 갖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코로나 3년 후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본격적 소설이고, 내용 역시 본인 스스로 코로나 시절에 대한 반영이 있다고 직접 밝혔거든요. 출판사에서도 몇몇 작가에게 기고를 부탁, 그들의 감상문을 실어나르고, 그 글 역시도 또 하나의 '코로나 독후감'처럼 읽히는 게 좀 재밌다 생각했어요. 사실 늦게 일어난 날에는 오후를 다짐하고, 오후도 망친 것 같으면 늦은 밤을 작심하며 버텨보고, 그래도 아니겠다 싶으면 다음 날 새벽을 기다리는데요, 그럼에도 말하게 하는 책, 그리고 이야기. 물론 하루키 씨는 이런 저의 오늘을 알 리 없지만, 세상에 이유 있는 우연이 있을까요.

며칠 전 이와이 감독의 신작 기념으로 무료 공개된 영화는 잊고있던 코로나를 되돌아보는 투명한 수채화같았는데, 이게 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저 역시 하루키 씨 소설 속 시간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하루키 씨의 새 소설도, 고레에다 씨의 새 영화도, 그리고 키타노 타케시 씨의 오랜 신작과 그들보다는 좀 어리지만 여행 작가 코야기 쥰 씨의 새 책방이 동시에 말문을 여는 지금, 우린 또 어떤 이야기를 살아가게 될까요. 그럼 우리, 또 보아요.🐛

📫 오는 금요일, 6월 16일에는 '밤에 보는 뉴스 '야후 재팬' 읽어드립니다' #99호가 발행됩니다.

📬 아래는, 현재 '모두 공개'중인 레터들이에요.가_가장 마지막 '관공서의 솔선수범~'은 첫 모두 공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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