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혹은 곧 도래할 땅, 흙, 도자

경기도자비엔날레 <땅이 만든다 Earth Makes> 9.18-11.1

2026.10.20 | 조회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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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민 스미스 Yasmin Smith ‹맨체스터 유목› 2025, 백색 석기토, 맨체스터 선박 운하 유목재 재유, 주입성형, 1220℃ 전기 가마소성, 350×10×260cm
야스민 스미스 Yasmin Smith ‹맨체스터 유목› 2025, 백색 석기토, 맨체스터 선박 운하 유목재 재유, 주입성형, 1220℃ 전기 가마소성, 350×10×260cm

야스민 스미스의 작업을 근 일년 사이 일본 아이치, 호주 시드니, 경기도 이천 세 곳에서 만났습니다. 언뜻 나뭇가지 더미로 보이는 이 작업은 맨체스터 선박 운하에 떠다니는 나뭇가지를 수집해 그 형상을 점토로 다시 만들고, 원형인 나뭇가지는 태워서 그 재로 유약을 제작했습니다. 이 재유에는 토양, 물, 대기에 축적된 오염과 그 장소의 역사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산업화의 후유증, 붕괴한 생태계, 나아가 작금의 기후위기까지 녹아있다고 할 수 있겠죠. 야스민의 작업이 세계 곳곳에서 호명되는 데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동시대인에게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 본전시는 <땅이 만든다 Earth Makes>를 주제로 열렸습니다. 문장의 주어, 작품을 만드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땅'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연의 부산물, 가령 흙을 채집해 그 형상을 빚는 일에 불과합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건 살아 있는 흙 자체에 내재된 힘이죠. 또한 땅과 기후는 지역성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딛고 선 땅을 기반으로 문화적 풍경을 빚어냅니다. 나아가 오늘날 도자는 동시대의 풍경, 지질학적 특성이나 기술과 환경문제 등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매체가 되기도 합니다.


흙이 만든다 Made from Earth

윌리엄 코빙 William Cobbing ‹대지의 내면› 2026,  점토, 혼합매체, TV 모니터, 118×115×110cm
윌리엄 코빙 William Cobbing ‹대지의 내면› 2026,  점토, 혼합매체, TV 모니터, 118×115×110cm

윌리엄 코빙은 움직이는 영상과 굽지 않은 점토를 결합하고, 이를 ‘비디오와 점토의 충돌’이라고 설명합니다. 작가에게 점토는 완전히 통제되는 재료가 아닙니다. 몸과 맞닿아 눌리고 처지며 계속 형태를 바꾸고, 작가와 재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대지의 내면〉에서는 관람객의 몸도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성인은 몸을 숙이고, 아이는 발판 위에 올라서야 안쪽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자세를 바꾸는 순간, 관람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일을 넘어 몸으로 경험하는 일이 됩니다. *

첫번째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생성물은 그 기원에 놓인 '흙' 자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작업들입니다. 구워진 도자의 표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어린시절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가 함께해 온 흙의 질감, 촉감, 양감 등을 감각해 봅니다. 작가의 손이 지나간 흔적, 뭉쳐진 모양새, 닿으면 느껴질 온도, 무게. 물기어린 촉촉하고 마른 흙의 변화, 불이 닿으며 만들어진 색과 결 등을 생각해 봅니다. 작가는 흙이라는 물질을 단순히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생김새처럼 흙으로 빚어진 도자 작업은 개별적인 개체로서 각각 다른 얼굴을 지녔습니다. 

김명주의 〈더블 룸〉은 작가의 작업실을 이루는 요소들을 비엔날레 전시장 안으로 가져온 설치 작업입니다. 완성된 작품과 제작 중인 조각과 회화, 작업실에서 가져온 소파가 함께 놓여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시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작가는 인간의 불안과 상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흙으로 탐구해 왔습니다. 흙에 손의 움직임과 감각을 옮기고, 가마 속 불을 거치며 생기는 뒤틀림과 색의 변화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조각의 표면을 살펴보면 흘러내린 유약이 남긴 색과 흔적에서 흙과 불이 만들어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김명주 ‹더블 룸›  2016~2026
김명주 ‹더블 룸›  2016~2026

땅이 만든다 Made by Earth

김준명 ‹호기심› 2026 흙, 점토가루, 모래, 낙엽, 석고, 인조잔디, 각종 포장재, 곡식, 비닐, 모래, 천, 찻잎, 나뭇가지, 아크릴관, 담배꽁초, 종이 등, 가변크기
김준명 ‹호기심› 2026 흙, 점토가루, 모래, 낙엽, 석고, 인조잔디, 각종 포장재, 곡식, 비닐, 모래, 천, 찻잎, 나뭇가지, 아크릴관, 담배꽁초, 종이 등, 가변크기

김준명은 자연물과 인공물을 한 작품 안에 엮어, 서로 다른 재료에 시간이 어떻게 쌓이고 변화하는지 관찰해왔습니다. 작가는 도자를 오랜 시간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물질로 바라봅니다. 〈호기심〉은 작가가 20여 년 전, 야산의 깊은 땅속에서 생활 쓰레기가 여러 층으로 묻혀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땅은 인간이 버린 흔적을 말없이 품고, 그것마저 자신의 일부처럼 받아들여 오래된 풍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폐기물은 오랜 시간 땅속에 남아 다른 물질들과 함께 새로운 층을 만들어갑니다. *

두번째 챕터 '땅이 만든다'에서는 지역성과 장소성을 이야기합니다. 전시 전반에서 작가들은 좁게는 지역의 흙이나 폐기물 등을 소재로 차용하고, 넓게는 지역문제와 환경오염 등을 다루는 방식으로 동시대 현장을 가시화 했습니다. 과거 비엔날레에서 별도의 국가관으로 다뤘던 부분을 본전시 안으로 가져와, '포커스 호주'라는 이름으로 호주의 땅과 축적된 기억을 드러낸 작업을 선보인 것도 흥미롭습니다. 한국 서해안 갯벌의 흙을 가져온 차기율, 중국 경덕진의 경험을 기록한 오세린,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 사막을 식생을 묘사한 카를라 가르시아 등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양한 지역의 문화적 풍경을 담아냅니다.

조영각은 AI와 로봇, 데이터를 인간이 통제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바라봅니다. 〈물면시기〉는 이러한 생각을 오래된 물질인 흙과 연결한 설치 작업입니다. 한국, 영국, 중국, 일본, 스페인, 네덜란드를 맡은 도자 오브제 접시와 AI 영상, 프로젝션, 조명이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작동합니다. 이 작품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시간이 겹쳐 있습니다. 흙에는 광물과 풍화, 침식과 변형을 거쳐온 오랜 시간이 쌓여 있고, AI에는 수많은 데이터와 언어, 기억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이 둘을 서로 다른 퇴적층처럼 바라보고 한 공간에서 만나게 합니다. *

조영각 ‹물면시기物眠時起› 2026, 흙, 도자, 돌, 6채널 인공지능 생성 비디오, 컬러, 사운드, 프로젝션 맵핑, 60분 루프
조영각 ‹물면시기物眠時起› 2026, 흙, 도자, 돌, 6채널 인공지능 생성 비디오, 컬러, 사운드, 프로젝션 맵핑, 60분 루프

지구가 만든다 Made in Earth

장한나 ‹신생태계› 2021, 2026, 모래, 수집된 플라스틱, 수조, 기포발생기, 가변크기
장한나 ‹신생태계› 2021, 2026, 모래, 수집된 플라스틱, 수조, 기포발생기, 가변크기

장한나는 버려진 플라스틱이 자연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주목합니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깎이고, 녹고, 쪼개지며 돌처럼 변한 플라스틱 덩어리를 수집하고, 이를 ‘뉴 락’이라고 부릅니다. 〈신생태계〉는 이렇게 수집한 뉴 락을 수조와 모래와 함께 구성한 설치 작품입니다. 뉴 락은 돌처럼 자연스럽고 때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것이 버려진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낯설고 불편한 감각을 불러일으킵니다. *

세번째 챕터 '지구가 만든다'에서 도자는 오래된 공예의 형식이 아니라, 동시대의 매체로서 기술과 나란히 작동합니다. 바르바라&마르는 AI 이미지 생성 기술과 시선 추적 시스템을 결합해, 화면 속 풍경을 바라보면 시선이 머무는 곳의 환경이 오염되고 반대로 시선을 거두면 훼손된 풍경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완은 과거의 유물을 디지털 정보로 기록하고, 기술을 통해 다시 도자의 형태로 복제함으로써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맥락에서 역사를 구성합니다. 클라이니언은 디지털 이미지를 실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옮기기 위해, 돌의 표면에 이미지를 전사하고 전자 장치와 사운드를 결합했습니다.

이때 도자는 오히려 가장 오래된 재료를 통해 가장 먼 미래를 묻는 언어가 됩니다. 과거 도자는 한 시대를 풍미한 가장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폴씨의 작업에 드러난 것처럼 현재도 반도체의 핵심재료인 실리콘은 흙과 모래 속의 이산화규소에서 얻어집니다. 오늘날의 첨단 산업과 미래 기술도 결국 땅에서 온 물질에 닿아 있는 셈입니다. 하나의 기술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일례로 도자의 물성과 동시대 기술이 만나는 자리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물질의 감각, 몸의 감각, 접촉과 소리와 진동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노코즘은 그레고리 라세르와 아나이스 메 덴 앙크스트가 2003년부터 함께 활동해 온 프랑스 작가 듀오입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식물과 나무, 흙 같은 자연의 요소에 기술을 결합해, 우리 몸과 환경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소리와 진동으로 드러냅니다. 이들의 작업에서 관람객의 몸은 언제나 중심에 놓입니다. 〈식물의 노래〉에서는 살아 있는 식물 자체가 센서가 됩니다. 잎을 부드럽게 만지면 식물마다 서로 다른 소리로 반응합니다. 기술은 식물 속에 감춰지고, 식물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손길에 반응을 돌려주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됩니다. *

세노코즘 Scenocosme ‹식물의 노래› 2026 식물, 인터랙티브 장치, 컴퓨터, 오디오 시스템, 박스, 50×50×175cm
세노코즘 Scenocosme ‹식물의 노래› 2026 식물, 인터랙티브 장치, 컴퓨터, 오디오 시스템, 박스, 50×50×175cm

앞으로 도자기는, 혹은 도자기를 주제로 하는 비엔날레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요? 동시대의 미술이 동시대 혹은 근미래의 화두를 반영해야 하는 거라면, 도자라는 매체를 오래된 형식에 가둘 수만은 없을 겁니다. 새로운 도자는 지금, 가장 뜨거운 주제들 - 인공지능, 디지털 이미지, 가상환경과 만났을 때 도자는 무엇일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여기, 우리가 말해야 하는 건 양극단의 세계 -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탐색하고 흐뜨러트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디지털 기술을 이루는 재료를 따라가면, 그 시작은 땅에 닿습니다. <땅이 만든다> 전시는 11월 1일까지 이천 경기도자미술관에서.

*파란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경기도자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https://www.gcbiennale.org/)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첨부 이미지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

<땅이 만든다 Earth Makes>

9.18-11.1

경기도자미술관(이천) 외

통합권 일반 11,000원
개별권(이천)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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