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우리는 무한히 반복 달리기를

전시 섞어서 보기: 이대원과 린 허쉬만 리슨 개인전

2026.10.27 | 조회 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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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은 하루에 전시를 몇 개까지 볼 수 있으세요? 저는 갤러리 호핑을 하다가도 대형 전시를 포함하면 3개, 갤러리 전시면 5개가 최대입니다. 체력이 부족하다기 보다 작품을 보더라도 건조하게 바라보게 되거든요. 저건 색깔이고 저건 화면, 동영상이 돌아가네. 작품을 이해할 체력이 없는거죠. 혹시 평소에 전시를 한 개만 보던 구독자라도 앞으로 2주간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하는 이대원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린 허쉬만 리슨의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을 함께 봐주세요.


미술관에 가는 이유

갤러리 호핑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다닐 수 있지만 미술관 전시는 보러 가기에 상대적으로 무겁죠. 갤러리는 상업성을 띄기 때문에 결국 쇼케이스의 성격을 띄죠. 하지만 미술관 전시는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꼭 지금 우리가 봐야하는 전시를 소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은 한국 근대 작가들의 의미있는 작업들을 쌓는 아카이브처럼 작동하죠. 서울시립미술관은 동시대에 가장 뜨거운 주제들을 공론장에 올려놓는다고 생각해요.

두 미술관은 가까이 있지만 다루는 주제가 너무 다르죠. 그래서 전시를 보러 갈 때 묶어서 볼 생각을 잘 못했어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 전시 2개를 보고 나오면 지쳐서 다른 미술관에 갈 힘이 없다는 핑계도 있어요. 그렇지만 린 허쉬만 리슨 개인전, 이대원 회고전이 겹쳐서 열리는 2주간 두 전시를 함께 보는 것은 미술과 현대인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줄 겁니다. 

 

슬프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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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1921-2005)은 한국에서 사랑받는 화가입니다. 경매사에서 일할 때에도 이대원은 항상 잘 팔렸어요. 화사한 화면, 시름 따위는 없는 것 같은 농원의 풍경, 풍성한 과실수로 가득한 세계는 도원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에서는 그의 고유한 스타일인 화사한 화면을 만들기까지 축적된 시간을 고르게 펴서 보여줍니다.

이대원의 작품은 끊임없는 탐구의 산물이었습니다. 사토 구니오에게서 배운 서양화의 기본적 구성에서 시작해 한국 공예에서 배운 염색, 한국화의 삼원법과 표현법, 앵포르멜같은 모더니즘 회화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연습했어요. 그래서 이대원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보고 있으면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세잔의 덩어리감이 보이고 어떤 작품에서는 서구 풍경화의 모습이 보이죠. 외부에서 받은 자극을 가감없이 시도해보는 모습이 작가로서 존경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모작을 하더라도 보여주기 싫을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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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고유한 스타일로 남은 1970년대 이후 <농원> 시리즈에서는 이대원이 쌓아온 40년이 고스란히 화면에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서구의 점묘법과는 전혀 다르게 동양화의 준법이 고스란히 남은 붓터치와 야수파에 가까운 과감한 색상 구성, 동양화의 삼원법에서 느껴지는 서구와 다른 플랫한 화면의 원근법까지. 이러한 요소들이 합쳐져서 이대원의 회화는 구상이지만 전면회화적 추상성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추상화의 장식성과 다양한 색감이 만나서 이대원 특유의 화사한 화면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컬렉터가 집에 이대원의 작품을 걸고 싶은 이유같다고 느껴져요.

이대원은 화가로서 정체성 하나를 공들여 가꾸며 큰 사람같습니다. 그에게는 색과 조형, 아름다움이라는 탐구해야할 영원한 진리가 있었어요. “나 하나의 조그마한 생의 미약함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무한한 형태, 무한한 색채를 이 조그마한 눈, 머리, 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연의 힘에 새로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인간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낭만적이죠.

 

로베르타와 복제된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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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허쉬만 리슨(b.1941)에게 세계는 투쟁의 대상이었습니다. 미국 화단은 여성인 작가에게에게 전시장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린 허쉬만 리슨은 <단테 호텔> 작업을 선보입니다. 호텔의 방 하나를 장기로 빌리고 그 안에 설치 작업을 했어요. 호텔방에 온 사람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방 안을 살펴보았죠. 그 뿐만 아니라 작가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 사회적으로 지위를 만들어냅니다.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1973-1978)는 작가가 가상의 여성을 만들어낸 장기 프로젝트였어요. 몸짓, 말버릇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 등 사회적으로도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죠. 린 허쉬만 리슨은 이미 구축된 사회적 인프라도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작가였어요. 영리하게 세계에 빠르게 적응하는 카멜레온같습니다.

린 허쉬만 리슨에게 삶이란 수많은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인의 불행은 너무 긴 수명과 그만큼 수행해야 하는 다양한 삶에서 옵니다. 낭만적 시대는 인간이 수명은 짧고 건강하게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그들의 삶이란 짧고 강렬했어요. 요절한 천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린 허쉬만 리슨은 여성인 자신의 성별로 인한 차별을 받고 그럼에도 여전히 작가로서 살아가려는 자신의 욕망을 마주합니다. 게다가 임신과 출산까지 수행해야하는 여성의 몸에 대해서 다층적인 정체성이 있다고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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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허쉬만 리슨이 전통적인 회화가 아니라 미디어 아트를 선택하고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저는 회화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주류 작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는 대중문화가 성장하고 다양한 매체의 미술이 떠오르는 시기였습니다. 주류가 아닌 작가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하기 좋은 시기였습니다. 전통적인 것, 기득권의 아름다움을 쟁취할 수 없는 작가는 새로운 미학적 질서를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린 허쉬만 리슨은 LLM이 나오기도 전에 데이터로 존재하는 사람을 만듭니다. 에이전트 루비는 데이터를 학습시켜 만든 “챗봇”입니다. 실시간으로 웹에서 데이터를 크롤링하고 자연어를 처리하는 신경망 기술이 아니라 이미 학습된 데이터 안에서만 대답할 수 있는 챗봇이죠. 루비는 엉뚱한 대답을 하지만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는 질문에 “모나리자”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린 허쉬만 리슨의 세계는 기존의 질서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 안에는 색과 형태, 묘사해야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죠. 표현해야할 내 안의 감정도 없습니다. 나의 세계를 꺼내어 보여주기 위한 투쟁이죠. 그리고 이것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서울에 열린 20년짜리 시간 포털

두 작가가 태어난 해가 딱 20년입니다. 1921년 생인 이대원은 끝없는 자기 수련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회화 방법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안에는 화가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장인의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변화를 수용하되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뚝심이 있죠.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세계를 자신의 관점으로 수용하죠.

1941년생 린 허쉬만 리슨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며 자신을 바꿔야만 합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은 미련한 짓처럼 느껴져요. 바뀌는 세계에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처럼 보입니다. 다중 정체성이란 선택이 아니라 현대인의 덕목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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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AI Era)는 너무나 빠르게 사회를 변화시키죠. 현대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전에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집니다. 어제까지는 맞았지만 오늘부터 다르고 내일은 불확실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과거보다 현대인은 더 오래 살아야 해요. 이것은 현대인으로 내몹니다. 인간은 자신의 관점을 세계를 받아들이면서도 환경에 적응합니다. 우리는 이대원의 세계와 린 허쉬만 리슨의 세계 사이에서 영원히 셔틀런을 하고 있어요.

과거에 자연은 이대원이 바라보듯이 인간의 생애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심원한 시간을 지닌 존재였어요. 하지만 AI가 소비하는 전력과 물은 자연의 시간마저 빠르게 소비하죠. 그렇지만 이것은 모두 시대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이 역설적 시간 안에서 반복운동을 하는 것이 지금의 현대인처럼 느껴집니다.

1921년생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와 1941년 작가가 사라보는 세계의 사이 그 간극을 피부로 느껴보세요. 후대에 사는 구독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은 과거의 현재를 미래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죠. 이대원 회고전이 끝나는 11월 8일 전까지 덕수궁과 서울시립미술관 사이에 시간여행이 펼쳐집니다. 현대인의 역설을 오롯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2026.08.06 – 2026.11.08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4전시실

덕수궁 입장료 1,000원 미술관 입장료 2,000원 별도

 

린 허쉬만 리슨:나의 [나]들

2026.10.21 – 2027.02.21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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