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에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두시간을 넘게 달려 하코네로 갑니다. 하코네 센고쿠하라 지역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 속으로 들어오면 마침내 폴라미술관을 만납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모네의 그림을 소장한 미술관이자 국립공원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지하로 파고들어 전시실을 만든 곳이죠. 직접 다녀온 후기 전해봅니다.

미술품 수집의 모범 사례, 스즈키 회장의 컬렉션
폴라미술관은 클로드 모네의 유화 작품 19점을 소장하고 있어, 단일 미술관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모네 컬렉션을 보유한 곳입니다. 모네, 그리고 하코네 숲 속의 미술관 - 과연 어떤 사연으로 연결되는 걸까요?
시작은 폴라(POLA) 화장품 그룹의 2대 오너인 고(故) 스즈키 츠네시(鈴木常司, 1930~2000) 회장의 컬렉팅에서 비롯됩니다. 스즈키 회장은 화장품 기업의 경영자로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미술풀 수집을 시작했어요. 서양 회화와 공예품의 미에 매료된 그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앙리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네가 빛을 해석하고 색채로 구현하는 방식에 특히 매료되어 19점이나 집요하게 수집했죠. 피부의 투명감과 빛을 연구하던 폴라 그룹의 추구미를 가장 잘 그려낸 작가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스즈키 회장의 모네 컬렉션은 청년기 작품인 《샌라자르 역의 선로》(1877)부터 대표작 《수련 연못》(1899), 만년의 《운하》(1908)까지 평생에 걸친 화풍 변화를 망라할 정도로 체계적인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스즈키 회장은 “미술품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문화 유산이며,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평생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생 동안 수집한 약 1만여 점의 컬렉션으로 폴라 미술진흥재단을 설립하고, 누구나 와서 자연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자연과 미술품이 어우러지는 안식처"가 되기를 바랐던 스즈키 회장은 이 곳, 하코네 센고쿠하라 숲 속에 폴라미술관을 짓습니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예술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그 아름다움을 모두가 경험할 수 있도록 자연 속 미술관을 만들기 까지의 그의 여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모네를 감상하는 현대적인 방법

지금 폴라미술관에서는 모네 서거 100주년과 미술관 개관 25주년을 맞아 소장한 모네의 작품들과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함께 선보이는 《The New Vision: Monet and the Contemporary Gaze》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카메라(Camera), 시간(Time), 강(River), 삶(Life), 정원(Garden) 다섯 가지 주제로 마련된 공간에서 모네의 작품과 연결점을 갖는 현대미술 작가를 함께 소개하면서, 감상의 폭과 깊이가 확장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모네의 인공 정원과 노에미 구달이 연출한 고대 식생


전시장 초입부터 가장 대표적인 모네의 수련이 관객을 맞이합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초록이 우거진 수련 연못과 일본식 다리는 모네가 “조성한” 정원입니다. 모네의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현재의 아름다움만 있어요.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라는 본질은 현대작가 노에미 구달이 “연출한” 델타 시리즈와 같습니다.
노에미 구달은 고생물학자와 협업해서 석탄기의 사라진 식생을 디오라마로 재현하고 사진으로 찍습니다. 마치 창 밖 습하고 푸르른 고생물을 바라보는 듯 하죠. 모네의 정원은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면, 구달의 작업에서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의심과 호기심이 듭니다. 같은 인공 자연의 모습에서 두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방향이 달라지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시간을 담은 빛의 색, 루앙 대성당과 볼프강 틸만스

“와! 나 이거 정말 보고 싶었는데!”
이 곳, 하코네에서 루앙 대성당을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꼭 한번 직접 보고 싶었던 그림이거든요. 핑크와 그레이 그리고 푸르스름한 트와일라잇이 담긴 작품이라 더 좋았습니다. 해 질 무렵 앞 건물의 그림자와 함께 붉은 노을이 성당을 비추는 순간 이었을까요. 30여점의 루앙 대성당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과감한 색으로 시간을 담아낸 이 작품을 택한 스즈키 회장의 안목에 또 한번 감탄합니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 옆으로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 두 점이 함께 있습니다. 〈Tag/Nacht VI〉은 낮과 밤의 경계에서 푸른 보라빛으로 물든 하늘을 담았고 〈Filled with Light, a〉은 런던에 있던 틸만스의 스튜디오 공간에 들어온 석양 빛과 그림자를 찍었습니다. 무슨 설명과 해석이 필요할까요. 같은 공간에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색을 모네는 유화로, 틸만스는 사진으로 과거와 지금 바라보는 것일 뿐, 우리는 그저 시간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빛의 색을 감상하고 그 시선으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즐기면 됩니다.
안개 속 런던 그리고 템즈강 물 밑의 이야기



또 다른 위시리스트를 폴라 미술관에서 충족했습니다. 모네의 <국회의사당>을 보았거든요. 반가움과 동시에 이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전시의 메세지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몽환적인 안개 뒤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템즈강과 빅벤의 모습은 사실 당시 산업화로 인한 런던의 심각한 공기 오염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 주변으로 미국 작가 로니 혼의 <Still Water (The River Thames, for Example)> 시리즈가 전시됩니다.
<Still Water> 는 템즈강의 고요한 수면을 촬영한 사진인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볍지 않은 텍스트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템즈강에서 발생한 자살에 관련된 기사, 독백들, 인터뷰 내용이 잔잔한 물 위 인용문으로 표기됩니다. 몽환적인 분위기 이면을 감싼 산업화로 인한 극심한 오염의 현실, 그리고 잔잔한 수면 아래 존재하는 현실과 사회 문제들이 다른 시대, 회화와 사진이라는 다른 작업이지만 메세지가 오버랩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 공간이었어요.
모네의 자연과 피에르 위그의 자연


모네의 아름다운 수련을 감상하다 벽을 돌아 나오면 기괴한 조각을 만납니다. 벌집이 머리가 되어 수면을 만지는 인체에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프랑스 설치예술가, 피에르 위그의 <Deep Water> 입니다. 모네의 <수련> 은 인간과 생태계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물에 비친 빛과 색이 자아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그림이죠. 피에르 위그는 물을 다르게 접근합니다. 비인간적 지성의 존재를 대표하는 벌집을 머리로 표현하여 인간과 자연의 구분을 흔들고, 물의 표면을 만지는 자세로 수면 아래의 생물들의 존재를 표현합니다. 인간의 인식 너머의 자연 생태계를 바라보고자 한 피에르 위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상의 표현을 실험한 모네. 이 둘의 조합이 참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섭니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열흘이 넘은 지금, 글을 쓰기 위해 작품 사진을 다시 보아도 실제로 마주했던 그 빛과 색의 아름다운 경험이 눈 앞에 일렁입니다. 돌아오고 나서 느껴요. 모네의 작품을 이렇게까지 깊게 감상할 기회가 있었던가. 울창한 숲 속을 거닐며 미술관 안팎의 작품과 보냈던 시간들 마저 생생합니다.
다녀오길 잘 했습니다 ✨
전시 정보

The New Vision: Monet and the Contemporary Gaze
Pola Museum of Art
June 17, 2026 – April 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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