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공기와 수묵의 향기와 흐르는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는 우리의 젊음에 배가되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혜화동 입구에서 보성중학 고개를 넘어 산협에 이르는 2, 30분의 거리를, 또는 삼선교에서 골짜기까지 올라오는 3, 40분의 거리를 항용 날마다 도보로 내왕하고도 피로한 줄을 몰랐다. 집에 있는 날은 산에서 굵은 돌을 주워 오고, 앞개울에서 잔돌을 주어 날라 축대를 쌓아올리고, 밭을 갈아 채소를 심고 정원을 만들어 화초를 가꾸기에 골몰했다. 우리는 무엇이든 가족 총동원하여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서 살았다. 생활도구는 물론이요, 주식물은 쇠고기와 생선을 사들일 뿐으로 장이나 갖가지 떡을 비롯하여 술을 담그고 두부와 묵을 만들고, 엿기름 · 콩나물을 길러서 먹고, 곶감 · 황률 등의 건과(乾果)를 만들어 먹었다. 이 모든 생활을 위한 노력은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더 큰 즐거움은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들을 대접하는 것이었으리라. 더운 여름날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이 먼 산중에까지 찾아오는 친구가 반가웠다. 그래서 뒤안 바위틈에서 솟는 샘물을 떠서 막걸리를 거르고 밭에서 푸성귀를 뜯어 안주로 내놓으면 주객(主客)이 그렇게도 즐거울 수가 없었다.
김향안, 「산(山)에 사는 맛」 중에서
Olfactory Study No.003 “Close to the Earth”

콘크리트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인간의 손과 발, 그리고 숨이 흙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닙니다. 메트로폴리스의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볕이 드는 작은 틈에 화분을 놓고 채소를 심어 기르는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여전히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 물음표를 망각하지 않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삶은 보다 감각적이어야 하고, 생활은 보다 단순해야 할 것입니다.
지구 반대편의 진귀한 식재료보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익숙한 제철 채소와 곡물이 편안하고,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의 로고를 기계로 대량 인쇄한 고가의 접시보다 자주 만나 함께 먹고 마시는 나의 도예가 친구가 빚은 그릇의 손맛이 사랑스럽습니다. 어느 유명인이 즐겨 사용한다는 고가의 향수보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숲에 감도는 흙내음에 이끌립니다. 오랜 세월 가까이에 두고 보아 좋은 고완들은 언제나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Virginian cedarwood 4 drops, patchouli 4 drops, elemi 2 drops, spruce hemlock 1 drop, laurel leaf 1 drop, frankincense 1 drop, vetiver root 1 drop, ginger lily 1 drop
조향사의 노트
가을비에 촉촉히 젖은 숲의 정경을 그려 보았습니다. 토양 미생물은 우리가 ‘흙내음’으로 인식하는 대표적인 성분인 지오스민(geosmin)을 만들어냅니다. 빗물이 마른 흙에 닿으면 그 마찰로 물방울 안에 기포가 갇히는데, 이것이 터지면서 흙내음을 만드는 성분들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이지요.
저에게 이 신비로운 이야기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서이자, 가장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감각의 향연입니다. 조향 언어로 이 장면을 번역한다면, 그 시작점은 언제나 패출리와 진저릴리의 조합입니다. 발사믹하고 미네랄릭한 뉘앙스를 품은 패출리가 흙의 기운을 연출하고, 진저릴리 특유의 알싸함이 서늘한 인상을 만듭니다.
Today’s Music
David Bowie — Where Are We Now?
오늘은 데이비드 보위가 자신의 예순여섯 번째 생일이었던 2013년 1월 8일에 예고 없이 발표한 곡, Where Are We Now?를 함께 듣고자 합니다. 오랜 공백 끝에 조용히 돌아온 그의 노래와 뮤직 비디오에는 시대를 이끈 예술가 데이비드 보위가 아닌, 인생의 황혼기를 지나고 있는 보편의 개인이 있었습니다. 화려했던 시절의 기억이 담긴 장소들을 마주하며, 오늘의 자신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를 조용히 묻고 있었지요. 데모 테이프를 연상케 하듯 힘을 뺀 음악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오브제들로 채운 뮤직 비디오도 자유롭고 편안하게 흘러갑니다. 데이비드 보위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던 토니 아워슬러 감독은, 수십 년의 세월 속에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음악과 영상에 잔잔하게 깃든 거장의 시간은 그렇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쯤에 서 있으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요? 마지막에 남는 것은 그저 지금 이 순간에도 곁에 머무는 오랜 벗과 세월이 깃든 사물들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으로 충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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