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 추상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최근 추상이 구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상을 재현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서 관람자가 더 많은 생각을 채워넣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김환기와 아돌프 고틀리브 2인전 <추상의 언어, 감성의 우주>는 196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한국 작가의 연결점을 보여줍니다.
국제적 미술과 한국 추상화
195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잡지 “라이프(LIFE)”나 “타임(TIME)”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왔고 한국 작가들은 잡지 속 원색 도판을 통해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작업을 접했습니다.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가 한국에서 만들어지면서 한국전쟁 이후 한국 화단에서의 추상화가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죠. 그리고 6년 뒤, 1963년 김환기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합니다.
지금은 전 세계 작가들의 도판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외 작가의 작업을 확인하기란 어려웠습니다.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미국관에서 김환기는 아돌프 고틀리브의 회화를 본 뒤, 뉴욕으로 이주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번 페이스 갤러리의 전시에 나온 1967년도 김환기의 작업을 보면 기존의 ‘산월‘과 같은 한국적인 요소를 비유한 구상과 추상의 사이에 있는 작업들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추상화된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특유의 십자구도, 전면 점화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작업 그리고 자주색 전면 점화까지 흐름이 나타나죠. 이러한 변화를 비슷한 시기의 아돌프 고틀립의 작업과 병치시켜 본다면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비롯한 국제적인 미술계의 흐름을 김환기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대상을 받은 아돌프 고틀리브는 참 좋겠다. (중략) 양 뿐 아니라 내용도 좋았다. 내 감각과 동감되는게 있었다.”
김환기, ‘상파울루전의 인상’,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
김환기에게 큰 인상을 남긴 아돌프 고틀리브(1903-1974)는 뉴욕에서 태어나 1920년대 유럽으로 넘어가 여행과 미술 공부를 이어갑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뒤 마크 로스코와 더 텐(The Ten)을 만들기도 하고, 미국 애리조나 사막 등지를 여행한 뒤 그는 1940년대 신화적 요소와 문자(한자를 포함한)를 결합하면서 ‘픽토그래프‘ 회화를 시도합니다. 구상적인 요소와 문자를 결합하는 뒤 그는 상상의 세계나 폭발(burst) 시리즈를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점점 더 단순한 그림을 그리게 되죠. 그 이전에는 이미지들이 직접적인 내러티브를 함축하고 있었다면 점차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색과 붓터치가 만드는 조형성으로 관람자에게 생각하기를 요구합니다.

이번 페이스 갤러리 전시에서 볼 수 있는 1962년작 ‘확장‘은 특히 청록색 배경에 하늘색, 황토색 이미지의 조형성이 충돌하면서 보여주는 긴장감을 통해 관람자에게 “무엇을 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죠. 이러한 질문은 동시에 2층에 전시된 김환기의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전면점화나 십자구도를 통해서 보여주는 추상화는 관람자가 자신의 관점으로 회화를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현대미술로의 변화죠.
비울수록 복잡해지는 세계
현대미술 이전의 서양미술은 화가의 관점을 관람자가 재현하는 행위였다고도 볼 수 있죠. 혹은 관람자의 시선에 맞춰서 화가가 재현 가능한 이미지를 기록하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왕자의 시선’은 관람자가 원근법의 시작점에 섰을 때 사실적으로 이미지가 재현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죠. 즉,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의 목적은 화가가 재현한 이미지를 관람자가 자신의 시선 안으로 가져오는 행동이었습니다. 왕족의 초상화는 사람이 직접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목가적인 풍경화는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고향을 보여주는 용도였죠. 사실적인 구상회화란 화가의 시선을 통해 관람자에게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사진의 발명 이전까지 대상을 재현해서 물리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실적인 표현을 지양하는 ‘인상주의‘는 이런 맥락에서라면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이러한 유럽 미술의 전통을 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미국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활용하여 세계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로 세상을 재현하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을 수 있었죠. 더욱이 그때 당시 기록할 세계라고는 전쟁의 참상 뿐이었습니다. 더욱이 미술은 점차 관람자를 위한 이미지의 재현보다 화가의 자의식, 감정 등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기록하는 대리자’인 화가가 아니라 ’표현하는 주인공’인 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죠.

단순한 그림을 볼 때, 관람자는 자신의 생각으로 그림이 주는 감상을 채워넣어야 합니다. 한 가지 색으로 캔버스를 모두 칠해버리는 절대주의 회화를 앞에 두었을 때 관람자는 화가의 시선을 빌려오지 못하죠. 재현된 이미지, 원근법이 없어진 세계를 마주했을 때 관람자는 자신의 세계를 회화 속에 투영해야 합니다.
김환기의 전면 점화를 마주했을 때, 점화가 주는 반복성을 볼 것인지 혹은 색의 농도를 볼 것인지 등을 선택해야만 하죠. 고틀리브의 회화가 주는 색들 사이의 긴장감에서 관람자는 무엇을 봐야할까요? 그 답을 아무도 내려주지 않기 때문에 현대미술은 어렵게 느껴지고 미술관 안의 모든 행동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관람자와 회화 사이에 아주 내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야 말로 현대미술을 관람하는 유일한 방법이 됩니다.
김환기는 1963년 아돌프 고틀리브의 그림을 보고 자신의 관점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뒤로 작가로서 새로운 표현을 찾아나서죠. 두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오히려 1960년대 미국 미술계와 한국 미술계를 상상하게 됩니다. 가득 담지 않아서 더 가득 채울 수 있었던 세계를요.
페이스 갤러리
<추상의 언어, 감성의 우주>
2025.10.31 ~ 202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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