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오랜만이에요. 에디터 영우입니다. 장난 삼아 아트피플의 명절이라고 '키아프리즈'를 불렀는데요. 키아프리즈가 지나고 민족대명절 추석까지 지나고 인사드려요. 이번에는 10월이 지나기 전에 보러갈만한 전시 다섯개를 추렸습니다. 이제 2주 뒤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작가들의 개인전 소식입니다.
첫째, 레디메이드는 어떻게 미술이 되는가
아라리오 갤러리
<수보드 굽타: 이너 가든>
10월 12일까지
수보드 굽타(b.1964)는 인도의 현대 미술가로 인도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 용품으로 조각, 회화, 설치 작품을 만든다. 반짝이는 일상용품을 재료로 삼아 종교적이거나 자연적인 조각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10년만의 개인전에서 수보드 굽타는 조리 도구를 석고로 마감한 ‘스투파’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불교의 오래된 기념 건축물을 주방 용품으로 쌓아올림으로써 현대사회가 이룩한 물질적 문명 세계를 과거의 종교와 통합시킨다. 그 결과, 우리는 물질적 풍요로 쌓아올린 종교적 건출물을 모방한 설치 작품 앞에서 겸연쩍어진다. 용도를 벗어나면 쓰레기나 다름 없어지는 대량 생산된 레디메이드 제품이 미술과 종교와 결합하여 눈 앞에 나타나는데 있어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 <이너 가든>에서는 일상용품과 자연물, 종교적 재현물을 결합하여 새로운 맥락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둘째, 흩어졌다가 다시 붙는 얼굴
가고시안 갤러리(아모레퍼시픽 세계본사 1층 APMA 캐비닛)
<데릭 애덤스: 더 스트립>
10월 12일까지
데릭 애덤스(b.1970)는 미국의 흑인 커뮤니티의 문화를 묘사한다. 특히 대담한 색상을 평면적으로 사용하는데 파편화된 면이 합쳐지면며 만들어낸 초상화 작품이 눈에 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리는 만큼 뷰티와 관련된 신작들로 주를 이루었는데, 데릭 애덤스는 자신의 브루클린 작업실 주변과 전 세계 곳곳에 있는 뷰티 매장의 디스플레이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회화 시리즈를 선보였다. 특히 큐비즘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광고 디스플레이, 소비 상품 등 팝아트가 조명한 소비 문화를 함께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데릭 애덤스는 흑인 여성들을 주제로 삼는데, 그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스타일이 곧 여러 문화 간 상호 작용을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구 열강에 따라 흩어졌다가 다시 이어붙고, 정착하면서 새롭게 구축한 그들의 삶이 데릭 애덤스의 작품에서 고스란히 나타나는 셈이다.
셋째, 새어나오는 빛을 훔쳐보는 불온한 마음
탕 컨템포러리
<기예르모 로르카: 다른 방의 빛>
10월 12일까지
기예르모 로르카(b.1984)는 칠레 출생 화가로 고전 회화 스타일의 유화를 그린다. 또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동화적인 요소, 소녀, 어린이인데 이를 통해서 불안하거나 불분명한 상호 작용을 표현한다. 동물과 교감을 하고 있는 소녀의 이미지는 바로크 시대 회화처럼 비율과 대칭이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과 동물들 사이의 상호적 관계는 그 시대와 달리 다양한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 폭력적 이미지, 조화로운 형태, 마법적 순간, 동화적 모티프까지 작품 전반에 걸쳐 다양한 감정과 문화적 맥락, 분위기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림 앞에 서면 고전 회화에서 느낄 수 있는 구도, 테크닉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뿐만 아니라 3B(Beauty, Beast, Baby)로 구성된 대상이 주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한편, 회화 한 구석에서 불온한 뉘앙스가 풍겨져 나오면서 관람객은 온전히 이 회화를 아름답다고만 느낄 수는 없게 된다. 이 사이에서 다양한 맥락의 감정이 튀어나오며 작품과 관객 모두 명확하지 않아서 불안하지만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 사이에 놓이게 된다. 새어나오는 “다른 방의 빛”을 훔쳐보게 되는 것이다.
넷째, 그래픽의 홍수 속 미술을 찾는 법
화이트스톤 서울
<코헤이 쿄모리: 장식은 고통 없는 지배(Decor is Painless Domination)>
10월 13일까지
코헤이 쿄모리(b.1985)는 패션 및 상업 디자인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에르메스 스카프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밀라노 유학 중에 보게 된 장식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디지털 데코레이티브 페인팅을 기점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쿄모리의 장식에 대한 인식론을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이미지와 그래픽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레이슨 페리가 자신의 책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2019, 원더박스)에서 말했듯이 “아름다움과 취향은 다양한 매체롤 통해 학습받은 고정관념”이다. 공통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의 기준은 변해왔고, 그 첨병이 바로 ‘장식’이라는 점이다. 장식은 미술과 달리 생활 속에 녹아들어서 조금씩 인식 과정에 영향을 기친다. 이를 통해 “장식이 지닌 강박, 시각에 대한 압박, 폭력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장식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전시를 통해 선보인다. 특히 4층 전시실의 설치작품을 통해서 방대한 시각적 경험이 주는 지배적인 장식 앞에 관람객을 세운다. 개인이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며, 결국 장식의 강력한 힘 앞에 ‘아름답다’라고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미술을 관람하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증명’(다수에 의견에 동조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의 사회심리학적 용어)에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할렘으로부터
리만 머핀 서울
<나리 워드: 온고잉(ongoin')>
10월 19일까지
나리 워드(b.1963)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12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현재는 할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에 쓰이는 재료 역시 미국 북부의 할렘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 사물들을 전복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킨다. 특히 그가 레디메이드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공동체의 회복, 돌봄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2011년에 선보인 메디신 배츠(Medicine Bats)와 2024년에 새롭게 파란색으로 선보이는 메디신 배츠(파랑)에서 야구 배트는 폭력과 대항하는 오브제를 표현하는 동시에 목화솜을 붙여 ‘솜방망이’와 같은 재맥락, 목화 재배 농장을 통한 강제 노동의 맥락을 작품 속으로 가져온다. 또한 제목에서 보여주듯 약(Medicine)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미국 사회에 깊숙히 침투해있는 다양한 ‘약’의 맥락을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 안에서 ‘둔기’는 폭력의 함의를 벗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여전히 눈에 보이는 방망이는 진열된 무기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재맥락화 속에서 나리 워드의 작품은 갈등 보다는 앞으로 화합되는 세계를 지향한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자신이 속한 지역(Neighborhood)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직시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나리 워드의 작업은 장소 특정적인 미술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새삼 보편적 가치를 보여준다. 할렘으로부터 온 평화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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