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번에 말했듯 뒤져가는 발목을 수술로 리스폰했다. 관절경 수술이라 수술 당일을 제외하면 크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보행에 불편이 있는 상태. 수술한다고 해서 다치기 전만큼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다고 하던데 처음에는 엥- 싶었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납득했다. 게임에서 뒤지고 리스폰하면 최대 체력 깎인 채로 살아나잖아. 발목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해가 쉬웠다. 그래도 고친 발목-정확히는 발목을 고치느라 쏟아부은 돈-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 웬만하면 의사가 말한 대로 따르고 있긴 해. '웬만하면' 말이야.
2.
그다지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술은 처음 받아봤는데 뭐랄까. 한 마디로 후기를 풀자면 하나의 고깃덩이가 된 느낌이었음. 병원 직원이나 의사, 간호사가 불친절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고 그냥... 병실에서 수술 대기실로 옮겨져서 너덧 명으로부터 차례로 이름과 수술 부위, 그 외 여러 가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는데 그 순간 매대에 오르기 전 상품 상태를 확인받는 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내 신체가 의학이라는 '기술'을 통해 '고쳐지는' 거잖아. 수술이 하나의 공정 과정처럼? 느껴져서 내가 무생물이 된? 그 과정 내내 현실감이 조금 동떨어지는? 싯팔, 말 더럽게 못 하네. 나도 내가 느낀 바를 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려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어휘력이 절망적이라 잘 안된다. 27살의 어휘력, 이게 맞는 걸까? 어른의 어휘력 저자가 내 레터 읽으면 오열할 듯. 아무튼 재차 말하지만 모두 친절했으니 불편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는 거ㅇㅇ.
3.
수술 후에는 가족이 못 온다고 하길래 급하게 친구를 불렀음. 알바 끝나고 흔쾌히 와준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지만 계속 표현하면 뭔가 킹받는 반응이 되돌아올 것 같아서 적당히 얘기하고 말았다. 이전 레터를 읽다 보면 내 인성이 어떻게 되어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내 친구가 괜히 내 친구인 게 아니라고요. 전화해서 와 줄 수 있냐는 물음에 되돌아온 첫마디가 "시급 맞춰주냐?"였는걸. 우럭, 재미를 너무 추구한 나머지 주변인들의 인성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어쨌든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링거 달고 목발 짚고 화장실 혼자 가는 거 진짜 빡세더라고. 수술 직후에는 통증도 조금 있던 터라 몸 상태도 썩 좋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전날 3시간밖에 못 잔 여파와 진통제의 약효가 한꺼번에 들이닥쳐 두 시간 좀 안되게 친구 앞에서 처잤는데 그 사이 친구가 찍어준 내 사진이 너무나도 환자였음. 그렇게 조금 자고 일어나니 병실은 소등 시간이었고 친구를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로비로 내려가 라면을 먹었다. 비싸고 맛있는 거 먹이고 싶었는데 이미 환자식을 먹은 이후였을뿐더러 내가 먹고 싶은 건 그녀로부터 불호 판정을 받았으므로. 깔끔하게 다음에 밥 사기로 했으니 됐지, 뭐. 근데 병원밥 먹어서 라면 안 들어갈 줄 알았더니 컵라면 큰 컵 가뿐하게 해치웠음. 우럭의 위장, 아직 죽지 않았음을.
4.
수술 바로 다음 날부터 목발을 짚고 조금씩 걸어도 괜찮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사실 전날에 답답하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나대다가 실수로 수술한 발을 몇 번 딛는 참사가 있었음. 하지만 의사도 모르고 지금 통증도 심하지 않으니 문제없죠? 샤워도 그래. 수술 부위에 물이 닿으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찝찝함을 참지 못하는 성정에 깁스 보호대가 오지 않았음에도 샤워를 강행했다. 쉽지 않은 일이라 보통 사람들 같으면 하루 이틀 참았겠지만 난 못 참아. 난 인성도 드럽고 인내심도 없고 성격도 급하니까. 수술 후 경과 지켜보느라 퇴원 못한 이틀간 참았으면 됐지. 거듭 말하지만 결국 물 안 닿고 잘 끝냈으니 된 거다.
이제 하나 애석한 점이 있다면 의사가 체중의 50% 정도 실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는 것. 아니, 상식적으로 발을 내딛고 음, 이 정도면 체중을 20kg 정도 실었으니 3kg 여유가 있군- 이딴 거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일단 내디뎌서 아프지 않을 만큼 대강 무게 실어 보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다 보면 이 정도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하면서 조금씩 과감해지다가 발목이 찌릿 신호를 보내고 나서야 깨갱 발을 물리는 우럭이 있지만. 이를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발목이 부어오르기 시작하는데 그럼 그때 오늘의 걷기 운동을 마쳐주면 된다. 반복할 필요 없이 어느 정도 감각인지 기억하면 되는 거 아냐? 타당한 지적이지만 인간은 어리석은 망각의 동물임과 더불어 우럭의 신체능력은 평균보다 떨어진다는 게 함정.
5.
그리고 퇴원한 우럭은 간병을 도와줄 아빠가 입국하기 전까지 호텔에서 지내기로 했는데요. 인근 식당과 욕조 여부 등 여러 조건을 따져서 잡은 호텔 룸 덕에 우럭, 27살 먹고 공주 됐음.
안녕, 우럭곤듀양. ㅎ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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