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도서전 목표가 있었다. 과소비하지 않기. 그래서 가기 전에 굿즈랑 참여 부스랑, 후기 엄청 찾아봤다. 진짜 갖고 싶은 것 많았는데 추리고 추려서 꼭 사고 싶은 것들만 저장해 놨단 말임.


이게 가기 전인데.

다녀와보니 이렇게 됨. 싯팔, 그래 내 정체성은 언제나 유재석보다는 박명수에 가까웠지.
P에게 계획이란 언제나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늘. 하지만 눈앞에서 일대일 밀착 마케팅을 하시는 분들을 한낱 소비자인 제가 어떻게 이기죠? 이건 내가 나약한 탓이 아니라 상대가 너무 강한 탓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이겨내고 십오 만원 조금 넘는 선에서 텅장을 지켜냈다. 이걸 지켰다고 할 수 있나 싶지만.
오픈런 하겠다는 다짐은 늦잠으로 스러지고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도착했더니 줄이 하나도 없더라. 갖고 싶은 굿즈나 한정판 도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오픈런 할 필요는 없을 듯. 물론 저는 갖고 싶은 게 있었지만 오픈런을 못해 놓치고 말았습니다. 희희. 입장 줄이 없었다는 말이지 내부는 또 다른 얘기임. 대표적으로 무제라든가 무제라든가 무제 말이지. 박정민을 보기 위해 그렇게까지 줄을 서야 하는가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데 자신도 없고 얼굴 한 번 본다고 삶이 극적으로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포기했다. 물론 그 근처 지나갈 때 혹시 있나 싶어서 흘긋흘긋 구경하긴 함. 하지만 없었고요. 개인적으로 박정민을 못 본 것보다는 같은 날 다녀갔다는 박보영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가슴에 사무치더라.


도서전 가서 반나절 넘게 같이 구경할 친구들은 성균지 팟밖에 없음. 어찌저찌 굴러가는 우리의 우정, 이카 양과 나마 양.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닉네임이 있어 블로그에는 실명을 쓰고 레터에는 다시 지운 다음 초성을 기입하는 번거로움을 덜게 되었다. 고마워라.
나마 언니가 도서전 며칠 전에 파리 여행을 다녀와서 기념품을 사다 줬다. 저게 밤잼이었나. 도서전 이후로 한 달간 집에서 빵을 사 먹지 않아서 아직 먹어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시식 후 인증샷 보내겠음. 잼이라고 하니까 급 유통기한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통조림처럼 되어 있는데 괜찮지 않을까. 사진에 나온 책이랑 같이 받았다. 그녀는 출판업이랑 관련 있는 업계에 종사 중이라 평일에 먼저 도서전을 다녀왔고 그때 우리한테 줄 선물을 준비했다는 사실. 섬세한 새럼. 근데 저 언니 평일에 이미 일곱 권 샀댔나 해놓고 저 날 점심 먹기 전에 두 권인가 세 권 더 샀대. 봤지, 도서전 이틀 오는 사람은 못 본 것들 천천히 둘러보는 사람이 아니라 못 산 것들 천천히 두 배로 사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날 명언을 남겼다. 요즘 사용에서 느끼는 행복보다 소비 자체에서 느끼는 행복이 큰 것 같대. 공감해.
집에 더 이상 책을 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책 소비를 줄이려 하는 중인데 막상 도서전 오니까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판사 부스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일단 좋았음. 작년부터 책 구매는 독립서점이나 출판사 운영 서점, 카페에서 최대한 해결하고자 하고 있어서. 물론 자격증 도서 같은 것들은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플랫폼 이용하긴 하지만. 출판사와 대형서점 간 유통구조 차원의 문제도 있긴 한데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서점 가면 대충 출판사의 색깔이 느껴지는데 그 점이 좋다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독립서점 가면 책방 지기 취향이 보이니까.
그래서 웬만한 부스는 다 돌아봤고 마음에 드는 출판사도 몇 발견했다. 지난 북클럽이 마음에 들었던 창비야 진작 재가입하려고 생각했고, 문학동네나 민음사 같은 대형 출판사들은 워낙 부스를 잘 해놨으니. 문학과 지성사 부스도 화제였는데 보면서 마케터와 용역이 꽤나 고생했겠다는 생각만 들었음. 종료 후에 저거 어떻게 철거해야 하나 싶더라.
그리고 제 도서전 목표 중 하나가 현암사였는데요.


이유는 이 마스코트가 진짜 미치도록 귀여워서... 저 키링을 사 말아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안 사고 책갈피만 받아왔다. 근데 사실 키링이 문제가 아니었음. 내가 진정으로 사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음.


이 티셔츠. 이 정도면 깨끗하게 집 근처 나갈 때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고 싶었는데. 문제는 제가 "(앞)"이라는 글자를 발견해버렸고. 앞? 그럼 뒤는 뭐지 했더니 싯팔. 어이없어. 저걸 어떻게 입고 다녀요ㅜㅠ 하지만 재미에 살고 재미에 뒤지는 우럭은 도서전 당일에도 구매 여부를 고민했고요.


출근룩으로도 OK! 이러고 있네ㅜㅠ 내가 돌아가기 직전까지 네가 남아있다면 그건 운명으로 생각하고 사리라 결심했지만 결국 품절이었다고 합니다.
현암사는 을유문화사만큼 역사가 깊은 출판사라 이번에 80주년을 맞이 팔순잔치 콘셉트로 부스를 기획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우럭,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즐겨야 하는 병이 있다. 아, 솔직히 이걸 어떻게 참아요. 다들 인생은 80부터 사랑합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내준 우럭.


진자어이업어.



나중에 찾아봐야지 했던 출판사로는 휴머니스트, 역사비평사, 다다서재, 봄알람, 도서출판 마티 정도. 휴머니스트는 관심 가는 책이 굉장히 많았는데 무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슈로 한 권인가 두 권만 사고 나왔다. 그나저나 휴머니스트 마케터 분 영업력 미치셨더라고요. 마케팅 말고 영업하시는 건 어떠신지. 그리고 이번 도서전 주빈국이 대만이라 관련 도서도 조금 살펴봤는데 개인적으로 지만지에서 나온 책들 읽어보고 싶었음. 대만 부스에서는 책 구매가 불가능했고 지만지 부스는 찾지 못해서 사지 못했다. 이외에도 월간 읽는 사람이나 과학잡지인 에피 등에도 관심이 가서 구독 고민 중이고. 하여간 이것저것 잘 즐기고 왔다네요.

책에 16만 원 지르고 자제력 고평가 굿. 구매한 책들과 굿즈는 나중에 다른 글로 써보겠음. 아, 오늘 레터 알찼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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