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갑작스레 돌이켜본다는 건 새삼스럽지만 나름 인상적인 질문이었다. 곧바로 떠올리지 못한 답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돌봄'이라는 따뜻한 질감과는 다르게 다소 날카로운 질문이 문제였을까. 어찌 됐든 제법 한참을 고민하게 했다. 나의 삶을 돌본 것. 유년기를 지나 청소년기까지 떠올리면 글쎄, 나를 돌봤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찾자면 글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휘의 나열이겠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이의 숨결의 집합체일 것들.
2.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사실 별것 없었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고집이 있었고, 대부분의 드라마와 책의 결말은 겨우 그 나이에도 꼬이디 꼬인 어린애의 마음에 차지 않았으니까. 보통은 책을 읽으며 책 속의 것들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는데 나는 그 이면을 상상하기 바빴다. 단순히 생각하자면 그저 마음이 가던 인물이 보다 좋은 결말을 맞이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 어린아이는 조금 무자비한 면도 있어서 비틀어놓은 이야기의 다른 것들이 어떻게 되는 것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찌 됐든 누군가가 공을 들여 완성했을 결말을 북- 찢어버리고 혼자만의 상상을 덕지덕지 붙여나가는 걸로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한때는 글을 쓰고 싶었지.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려면 시선이 비켜나가는 것들까지 애정 어리게 돌봐야 한다는 것들을 몰랐기 때문에 쉽게 꿈꿀 수 있었던 거다.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했을 때 그다지 뼈아픈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가슴 한 켠에 얕은 자상 하나 정도는 새겨졌지만. 그나마 쉬이 꿨던 꿈이라 다행인 걸까. 누군가와의 재능 차이를 확인할 때마다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었으니. 눈물이 없으니 경쟁심이나 노력 또한 없었지만 말야.
3.
꿈을 쉬이 꾸고 쉽게도 접었지만 나는 글을 놓지는 않았다. 단순히 픽션의 결말을 바꾸던 아이는 픽션 말고도 이것저것 쓰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의무인 것처럼 굴었다. 기억하는 모든 순간 나는 무엇이라도 어떻게든 쓰고 있었고 그걸 알아챈 순간에는 뭐랄까. 내 삶에 있어 글은 정말 놓을 수 없는 거구나 확인받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왜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정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으니.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이제는 정말 글을 쓰지 않을 거라던 말을 달고 살았던 것이 무색하게도 나는 지금 이 순간마저 글을 쓰고 있다는 게 그 방증이겠지. 그래서 생각한 건데, 글은 나를 돌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글이 있기에 나를 돌볼 수 있었다. 쏟아낼 곳 없는 마음을 글로 털어내는 일은 읽어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만족스러웠다. 하얀 여백에 수놓아지는 글자들이 내 마음을 대변할 때면 그것 자체로도 위로받는 것 같았다.
4.
고작 낱말 몇 개 이어 적는 것만으로 의미를 이룬다는 건 꽤나 낭만적이니까. 하지만 고작 낱말 몇 개이기에 그마저 안 될 때면 나는 쉽게 가라앉아. 내가 나를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까. 평생을 써왔고, 평생을 쓸 거라는 생각에도 글은 여전히, 늘 어렵다. 친한 것처럼 굴다가도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낱말 하나를 찾기 위해 두 팔을 휘적이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하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가겠지. 고작 낱말 몇 개 이어붙이는 일에 위안을 받으며, 나는 나를 돌보려 노력할 테지.
5.
나의 삶을 돌볼 수 있게 만든 게 바로 글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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