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읽었습니다. 내적 수련을 통해서 마음에 교양을 쌓고 왔어요. 진실로 쌓였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응답하지 않겠다. 스스로도 이게 맞나 싶으니.
2.
비단 블로그와 레터뿐만이 아니라 모든 할 일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듯 독서했다.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몰랐는데 9월 레터에도 그게 어느 정도 티가 난 것 같더라. 개인적으로 글에 정신 상태가 드러난다 싶으면 그대로 글을 엎어버리고는 하는데 그때는 그랬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우울한 얘기는 듣는 사람마저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한 글은 읽는 사람마저 우울하게 만들 거라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난 스스로가 그러는 걸 견딜 수가 없다.
아, 민감한 내용 쓰려니까 담배가 당긴다. 담배 피운 지 1시간도 안 돼서 지금 나가면 안 되는데. 요즘 흡연 주기가 부쩍 짧아져 하루 반 갑을 거뜬히 태우고는 한다. 그만큼 정신이 많이 무너져 있다는 증거겠지.
아무튼 내가 갑작스레 일언반구 없이 사라진다면 땅 파고 있다는 뜻이다. 병원과 약물의 힘으로 곧 돌아올 테니 기다려주세요. 어차피 뭐, 엄청 기대하면서 읽는 레터도 아니고. 무엇보다 우울에 잠긴 경우도 있지만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그저 귀찮아서 때려치우고 있는 경우도 제법 많으니까. 레터 안 온다고 우럭아, 괜찮아? 연락했는데 웅, 나 붕어빵 먹고 있는데..? 답장하려면 조금 무안하잖아. 그냥 모른 척해 줘. 곧 돌아온다.
3.
아, 말하니까 붕어빵이 먹고 싶다.
4.
말이 나와서 말인데 붕어빵은 팥붕이 진리인 것 같다. 슈붕은 솔직히... 잉어 모양 델리만주일 뿐이지 않나? 이렇게 우럭 또다시 한국인 절반 즈음의 적을 양산해낸다. 하지만 슈붕 달고 느끼하기만 하다고. 그거 먹을 바에는 반죽이 도톰해서 어느 정도 중화되는 델리만주를 먹겠어.
그런데 요즘 우리 동네 붕어빵 팔던 사장님께서 어디 가셨는지 도통 보이지를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장 초입에 계셨는데 자리를 옮기신 걸까 장사를 접으신 걸까. 부디 전자여서 내가 아직 못 찾는 거였으면 좋겠다. 사장님... 비록 나와 정치관은 달라서 얘기를 들어드리는 건 힘겨웠지만 붕어빵은 죄가 없다는 걸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새기며 붕어빵을 념념굿했던 추억이 있단 말임. 우리 사이의 유대감은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나요? 빨리 돌아오세요, 사장님.
5.
어쨌든 하고 싶었던 말은 생각보다 한 달 새 책을 꽤나 읽게 되었으므로 한동안 레터와 나의 초등학생 독후감 같은 서평이 간간이 번갈아 보내질 거라는 것. 제법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었으니 소개 차원에서도 괜찮겠다 싶고. 다만 이제 글의 질은 보장할 수 없는... 이게 바로 악질이지 생각들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 갈지도 모른다. 정신 아플 때 쓴 거니까 감안해 주도록. 언제는 우울 전시하기 싫다더니 비겁하게 정신병을 방패 삼냐 싶겠지만 나는 원체 뻔뻔해서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건 다 쓰는 버릇이 있다. 그럼 내일 봐,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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