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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끔 하는 건 사랑이란 걸 #1

인생이 싯팔 이럴 수가 있나

2024.01.23 | 조회 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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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이야기

매주 평일 아침 찾아오는 우럭의 이야기

오늘은 글감 소진 이슈로 예전에 썼던 영화 리뷰나 한 편 보내드립니다. 원래 세 편 완결인데 중간에 쓰다 말았던 비운의 리뷰입니다. 레터로 보내다 보면 언젠가 끝까지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가 원래 이런 정상적인 글도 쓸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내일은 새로운 글감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스포일러 주의

 

기대 않던 작품에서 예측 못한 울림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애초에 영화를 그리 열심히 챙겨 보는 편이 아니라 이런 말을 내뱉는다는 게 조금 웃길지도 모르지만. 뭐, 어찌 됐든 간만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다. 적당히 상업적이고 적당히 B급 유머를 곁들인 적당히 재미있는 영화. 그럼에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에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는 영화. 내게는 이 작품이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아서.

톡 까놓고 결론부터 이야기해볼까.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는 '사랑'이다. 이쯤이야 다들 어느 정도 예상도 하고 공감도 했을 테다. 애초에 글 제목 자체를 저렇게 적어놓았는걸. 단지 좀 더 살펴보고 싶은 부분은 '사랑'이란 게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포용하나 하는 의문에 대한 것.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나는 너를 구할 거야!" 한국판 포스터에 그렇게 적혀 있기는 한데, 글쎄. 모성애만으로 함축될 수는 없는 내용이지 않았나.

그러니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의문들. 도대체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했던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끝내 왜 사랑해야만 하는가- 하는.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다고.

 

01_사랑이란 무엇이기에:

 

"인생의 사소한 결정들이 엄청난 차이로 이어져. 결정의 갈림길마다 우주가 분열되고... 이게 당신 우주야. 무한한 거품 속을 떠다니는 기포 하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인생은 흔히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하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하 '에에올') 는 멀티버스를 통해 해당 메시지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성공한 액션배우로서의 삶, 가수로서의 삶,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생, 철판요리점 요리사, 심지어는 손가락이 소시지인 세계관까지. 여러 갈래로 나뉘는 인생 가운데 지금의 에블린은 가히 최악이라 할 만하다. (세상에, 손가락이 소시지인 세계관보다도 최악이라니. 그건 그것대로 소위 '웃픈' 일이지만.)

그러나 언뜻 묘하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 세계의 에블린이어야 했을까. 알파 웨이먼드도, 조부 투파키도. 결국 돌고 돌아 찾아온 것이 왜 하필 최악의 에블린이었냐는 말이지. 그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이 세계의 에블린은 너무도 무력하고 나약하지 않나. 차라리 다른 세계의 에블린이었다면 액션배우로서, 가수로서, 아니면 일자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하다못해 손가락이 소시지라 하더라도 어찌 됐든 특별한 무언가를 하나쯤 가지고 있었을 텐데.

조금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역으로 이렇게 생각해 볼까. 지금의 에블린만이 가진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알파 웨이먼드의 말을 잠시 빌려와보겠다. "나의 에블린(My dear Evelin). 난 당신을 알아. 늘 뭔가 이룰 기회를 놓쳤을까 전전긍긍하지. 이 말을 해주려 온 거야. 그 모든 거절과 그 모든 실망이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어. 이 순간으로. 그것만은 잊으면 안 돼." 피상적으로 바라보면, 그래. 솔직히 네 인생 실패했다는 말을 저렇게나 돌려 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나의(My dear)" 에블린이라잖아. 굳이? 그러니 우리 사고를 조금 비틀어 보자고. 그녀가 거절하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실망시키면서도 끝끝내 지키려던 것이 무엇일지.

 

돌려 말하는 데는 재주가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역시, 사랑이다. 이 세계의 에블린만이 가지고 있는 것. 사랑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녀의 우주도, 남편도, 딸도 모두 지켜낼 수 있었다. 당장 웨이먼드를 외면하고 고향에 남은 에블린의 가능성만 해도 그래. 불확실한 미래, 불확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랑 하나만으로 떠난다는 게 참 무모한 일이지. 굳이 모험을 시도할 필요 없이 안정된 고향에서 엄한 아버지의 착한 딸 노릇을 하며 사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우주의 에블린은 웨이먼드와 함께 떠났다. 막연한 미래와 막연한 가능성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아버지의 극심한 만류를 기어이 제치고서라도 그녀는 결국 웨이먼드의 손을 잡았다. 오직 '사랑'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의 딸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정착은커녕 겨우 발만 딛고 서 있는 자신과는 달리 미국 사회 내 깊숙이 뿌리를 박고 무럭무럭 크기를 원했던 그녀의 딸. 그러나 자식은 항상 부모 뜻대로는 되지 않는 법이라지. 자퇴에, 타투에, 동성애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설상가상 조부 투파키인지 뭔지로 변하더니 제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공격한다. 저게 내 딸이라고? 혼란스러워 제대로 된 사고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와중에도 딸을 놓지 못한다. 설령 제 딸이 이 우주의 악이라 해도 아주 작은 커터칼의 날조차 겨눌 수 없다. 돌덩이가 되고자 하면 함께 돌덩이가 되어 주었고 절벽에서 구르면 그를 따라 함께 굴렀다. 그 이유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러니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니까.

 

"난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뭐 한다고 너랑 여기 있겠니? 그래, 네 말이 맞아 말이 안 되지. 어쩌면 네 말대로 그 뭔가가 있을지 모르지. 우릴 하찮은 쓰레기로 느끼게 해줄 새로운 무언가. 네가 그 모든 소음을 뚫고 날 찾아다닌 이유를 설명해 줄 무언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난 너랑 여기 있고 싶어. 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너와 여기 있고 싶어."

"그래서 뭐? 나머지 문제들은 다 무시할 거야? 뭐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왜 그런 곳으로 가지 않는 거야? 엄마 딸의 모습이... 안 이런 곳. 이곳은 그래봐야... 상식이 통하는 것도 한 줌의 시간뿐인 곳이야."

"그럼 소중히 할 거야, 그 한 줌의 시간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사랑이래도.

 

자, 드디어. 우리에게는 이제 하나의 물음만 남았다. '굳이' 이 세계의 에블린이어야만 했던 그 대단한 사랑. 그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하는 의문. 사랑의 정의부터 따져가는 개념적인 접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애초에 할 수도 없는걸. 그저 영화를 보고 각자 느꼈던 것을 이야기해보자는 것뿐이지. 아,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사랑은 이런 거구나- 에 대한 각자의 답을.

개개인마다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던 장면이 어디일지는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우주와 연결되기 위해 '개연성 없는 생뚱맞은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야 이상하잖아. 어느 정도 말은 되어야 하지 않나. 립밤을 먹고, 종이에 손을 베고, 대뜸 고백을 하고... 도대체 이게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다만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 않겠어? 인생의 사소한 결정들이 엄청난 차이로 이어진다는 이야기. 그럼 그 사소한 결정들은 전부 개연성이 존재했었나? 전부 말이 되는 행동이었을까?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거라고 확신하고서 저지른 것이었나? 고민해 보고 답하자면... 흠, 아마 그건 아닐 듯.

지금껏 해왔던 얘기들도 봐. 전부를 포기하고 떠났던 선택도,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남았던 선택도. 사실 그럴 이유는 없지 않아?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랑이었어- 뭉뚱그려 이야기했지만. 그래서 사랑이 뭐길래 그러냐는 답을 줘야 납득이라도 할 것 아닌가.

 

우습게도 우리는 이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 속에 답이 있는걸. 립밤을 먹고, 종이에 손을 베고, 대뜸 고백을 하고. 어처구니없어 보이더라도 아까 비틀었던 사고 그대로 바라보자. 정확히는 그게 정말 생뚱맞기만 했었는지 굳이 따져보자는 거다. 어떻게 되든 간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벌인 일들'이지 않나. 개연성 없는 듯했지만 그를 통해 무언가를 바랐고, 결국 그로 인해 무언가-설령 그것이 기대와는 다를지언정-가 일어난. 즉, '개연성 없는 생뚱맞은 행동' 그 자체가 하나의 개연성으로서 남을 마법 같은 순간.

그러니까 "나의 에블린. 난 당신을 알아. 늘 뭔가 이룰 기회를 놓쳤을까 전전긍긍하지. 이 말을 해주려 온 거야. 그 모든 거절과 그 모든 실망이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어. 이 순간으로. 그것만은 잊으면 안 돼." 이 말은 즉 이런 얘기지. 이 세계의 에블린이 선택한 길들은 언제나 개연성 따위 존재하지 않았으나, 그 시작은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 애초에 그녀의 선택에 개연성 따위를 논할 필요도, 소용도 없었다는 것.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고, 사랑이 곧 개연성이 되었을 것이므로.

 

다시 말해, 사랑이란 하나의 '개연성'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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