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50권을 읽겠다던 작년의 우럭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는 족족 구매해 쌓아두고는 몇 페이지 펴 보지도 않았음. 구석에 처박아둔 책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출판 업계에 조금 기여를 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한다. 종이 값이 올라서 안 그래도 힘들 텐데 나 같은 독자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2.
하지만 이제는 책을 그만 사야 하나 싶긴 한 게 정말 방 안에 둘 곳이 없다. 책장 정리를 한 번 싹 했는데도 말이지. 지금 있는 책장을 버리고 조금 더 큰 책장을 사든가 방을 옮기든가 해야 하는데 둘 다 현실적으로 조금 무리다. 내 방은 원체 작아서 지금보다 더 큰 책장을 수용할 공간이 없고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방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서재가 있는 집이 갖고 싶다. 그러나 서울 토박이인 우럭은 서울을 벗어날 생각이 없을뿐더러 집 하나 구하기도 힘든 서울에 서재를 따로 마련한다? 이거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서민 우럭은 오늘도 서럽다.
3.
그래서 말인데 올해부터는 도서관을 좀 적극적으로 이용해 볼까 해. 우리 동네에는 규모가 큰 구립 도서관이 있는데 아무래도 집에서 거리가 좀 있어서 그런지 잘 안 가게 되더라. 그리고 일단 회원카드 만들어 놓았던 걸 어디다 놨었는지 정말 까맣게 잊어버림. 회원카드를 찾든지 재발급을 받든지 뭐든 해야 한다.
다른 대안으로는 졸업한 모교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책을 읽겠다고 왕복 한 시간 이상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맞는 선택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빌리러 가는 건 문제가 없어. 반납 기간에 맞춰 꼬박꼬박 갈 수 있냐가 문제지. 빌리러 가는 거야 도서관 발전 기금 목적으로 연 10만 원을 내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가지 않을까? -라고 말하지만 우럭은 학창 시절에도 몇 십만 원짜리 인터넷 강의를 끊어 놓고 제대로 완강을 해본 적이 없다. 뭐, 그래도 후배들을 위해서 알차게 사용된다면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나?
4.
사람들은 보통 이런 걸 두고 정신승리라고들 하겠지만.
5.
아무튼 올해는 진짜 다독을 해보려고 한다. 독서를 하면 마음의 양식이 어쩌구- 라고 하지만 마음의 양식보다도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말야. 이래 봬도 독서노트도 만들었다. 책도 안 읽고 뭔 독서노트부터 만드나 싶겠지만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이 공부한답시고 괜히 이것저것 사고 방 정리도 하고 더 유난을 떠는 거다.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편해.
6.
책은 일단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는 게 목표이긴 한데 사실 큰 자신은 없다. 원체 과학이나 역사 분야와는 담을 쌓듯 지내오기도 했고 국문학, 특히 시문학이면 눈이 돌아가는 사람이라. 작년에 사 둔 책의 반절도 시집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이소호 시인의 시를 읽으세요. 현대시가 전개되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나중에 따로 올리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소호 시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함이 좋다.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서 독자로 하여금 선득한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시어들의 조합과 구성이 정말… 시를 ‘전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야기가 또 샜네. 어쨌든 시문학 말고 다른 분야도 좀 폭넓게 다루는 게 목표이긴 한데. 작년에 나름 이것저것 찾아보며 작성한 독서 리스트가 있긴 한데 그조차도 문학이 대다수라. 비문학, 특히 인문이나 사회과학보다는 과학과 역사 쪽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아, 예술 분야의 책도. 정확히는 예술과 예술 비평에 관한 책들을 좀 읽어야겠다. 아무래도 전시회를 다니면서 조금 더 깊이 느끼고 쓰고 싶어서 말이지. 아, 해야 할 건 많고 나는 똥멍청이다. 우럭아, 26년간- 아니, 이제는 27년이다. 제기랄. 27년간 뭐 했니.
7.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책 추천 좀 부탁드립니다.
7.
원래 내 장점은 뻔뻔한 거다.
8.
이게 내 2024년 두 번째 목표다. 아직 두 개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과제가 산처럼 쌓인 기분이다. 스물일곱의 우럭 인생은 조금 빡셀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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