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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댁알히에 이것저것 붓기

인생이 싯팔 이럴 수가 있나

2024.01.17 | 조회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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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이야기

매주 평일 아침 찾아오는 우럭의 이야기

퇴근해야 해서 인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안녕히.

 

1.

우럭이 살면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기는 15살 무렵이다. 중학교 2학년. 중2병이 한창일 시기에 개빻은 인성과 레전드 예민함으로 히스테리를 존나게 부려댔지만 공부는 열심히 했다. 비록 남의 기준에서는 열심히라 부를 수 있을지 자신은 안 서지만 인생을 돌이켜보면 아무튼 그 시기가 가장 똑똑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은 거다. 청소년기의 활발한 두뇌 활동과 적어도 숙제 및 벼락치기 정도는 해냈을 정도의 양심. 거기에 이제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티끌만 했던 성실함과 여러 결함들을 상쇄해 준 부모님의 유전자. 맞다, 내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내 노력이 아닌 부모님의 유전자와 아낌없이 투자하신 자본 덕이다. 안타깝게도 얼마 안 남은 의지마저 수능을 끝으로 결별한 뒤 대학 진학 이후부터 빡대가리의 삶을 살고 있지만. 어디서 우리 부모님이 통곡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내가 이렇게 클 줄 알았다면 우리 엄마 아빠에게 얘기해 줬겠지. 투자 멈춰. 엄마 아빠 딸은 인생 그래프가 하락주인 인간이야.

 

2.

아무튼 대학 진학 이후부터 공부에는 손도 안 댄 우럭은 공부하는 법 자체를 잊었다. 얼마 전에 회사 선임이랑 대화하다가 근의 공식 얘기가 나왔는데 거짓말 안 치고 진짜 틀렸음. 20대 초중반에는 정말 문장 한 줄이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아서 너무 공부를 안 했더니 빡대가리가 됐나봐- 라며 멘탈이 바스러진 적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이제 댁알히에 든 게 없다. 누군가 내 머리를 때리면 맑고 청량한 소리가 날 거다. 남들의 배가 되는 사교육비를 썼는데 이 꼬락서니라니. 역시 투자도 될성부른 놈한테 하는 게 맞다.

 

3.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대학만 가면 다 할 수 있으니까 고등학생 때까지만 참고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은 다 개구라다. 학점 관리를 안 하고 놀기만 하면 취업이 어렵다. 취업하고 나서도 공부를 안 하면 승진이 어렵다. 싯팔, 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다. 하다못해 그림을 그려도 인체와 투시 공부를 해야 하고 음악을 해도 발성과 악기 공부를 해야 한다. 연기를 하려면 대사를 외워야 되고 요리를 하려면 식재료와 칼질 연습을 해야 하고… 어느 길로 가나 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라는 말이다. 존나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사람은 돈 많은 백수밖에 없다. 후자는 쌉가능하지만 전자는 쌉불가능이라 난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인생이 고달프다. 그렇지만 공부를 하면 인생이 고달픈데 그럼 공부를 하나 안 하나 뭔 차이가 있지? 인생이란 어려운 거다.

 

4.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올해는 공부를 해야 해. 무슨 공부?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하기엔 할 게 존나 많아서 얘기를 쉽게 꺼낼 수가 없다. 그리고 사실 뭘 해야 할지도 아직 정확히 찾아보거나 정해 놓은 것이 없어서 대답하기 곤란함.

일단 분명한 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 짧고 굵었던 수험생 시절 수능 영어를 욱여넣었던 댁알히는 inaugural이나 asthma 같은 쓸모없는 어휘는 기억해도 정작 pretty의 스펠링 따위를 헷갈려 하는 저능의 잔재로만 존재한다. 실화냐고? 안타깝게도 실화다. 우럭은 이 말을 엄마 앞에서 꺼냈다가 욕이란 욕은 다 처먹었다.

 

5.

작년에 영어 공부를 하려고 책을 사놓긴 했었는데 뭐든지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어려운 법이잖아. 우럭은 영어 공부 작심삼일도 채우지 못하고 책을 봉인시켰다. 반 년간 봉인했으니 이제 봉인을 풀고 진짜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온 거다. 안 그래도 종이값이 올라서 책이 비싼데 사놓기만 하고 풀지 않으면 그게 무슨 돈 낭비니. 이렇게 얘기하지만 우럭, 집에 사두기만 하고 안 읽은 책이 존나 산처럼 쌓였다. 신년 목표 독서,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저께 처음 시작해서 서문까지 읽었으니 반은 이루었나. 아무래도 시작이 반인 법이니까. 거듭 얘기하지만 내 장점은 존나게 뻔뻔한 거다.

 

6.

영어 외에는 뭐, 몇 가지 목표들을 추상적으로 세워 놓긴 해서 차근차근 알아볼 작정인데 이러다 말 수도 있고 할 수도 있고. 아, 컴활과 운전면허는 따야 한다. 엑셀 너무 싫지만 엑셀을 하지 못하면 회사에서 혼자 멍청이가 된다는 걸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에 어쩔 수 없다. 운전면허는… 놀러 다니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후회성 발언이다.

 

7.

그래서 우럭은 이제 밑 빠진 댁알히에 이것저것 존나게 부어야 한다. 사람이 늙으면서 몸도 댁알히도 낡아가다 보니 거의 다 휘발되지만. 아니, 물은 수용성인데 왜? 하고 생각해 보니 내가 붓는 건 물이 아니었다. 유감.

사실 이게 내 올해 마지막 목표인데 살다 보면 추가될 수도 있고 포기하거나 미룰 수도 있고 해서 확신은 못하겠다. 근데 쓰고 보니 올해 목표로 독서, 운동, 공부라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전설의 트리플크라운을 완성했네. 제기랄.

 

8.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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