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지필한 조예은 작가의 단편집. 작가의 전작을 추천받았음에도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이번 작을 읽으면서 그녀가 그리는 이야기들의 결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기실 스스로의 선택이라면 손을 댈 일이 그다지 없는 장르문학이다만 친구에게 선물로 받기도 했고 주제의식도 따스해 좋은 마음으로 리뷰를 남긴다.
종말의 지구에도 사랑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다루고 있지는 않으나 사랑의 형태와 지속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각자가 선 외로움이란 외길 속에서 사랑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랑이 거짓이든 참이든, 혹은 그 사랑이 언젠가 나를 집어삼키든 찢어발기든 내 것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는 감정. 조예은 작가는 그렇게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의 힘을 그려낸다.
"우리가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지?
⋯⋯.
그런데 우리라는 게, 하나는 나야. 그럼 나 말고 너는 누구야? 넌 어디에 사는 누구라, 나를 찾아오지 않아?"
"수안은 말없이 미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마 실장이 있던 자리엔 먼지만이 남았다. 정말로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먼지의 신은 다른 대리인을 찾겠지. 통쾌함이나 후련함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어차피 삶은 계속될 테고, 그 사실이 버틸 만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수안이었다. 미주는 그 손을 맞잡았다. 수안은 다시 미주를 바라봤다. 미주 역시 수안을 바라봤다. 둘은 서로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지하실을 빠져나가는 길에, 미주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 문을 열고 나오자, 평소보다 아주 약간 맑은 하늘이 그들을 반겼다. 먼지바람은 한동안 불지 않았다."
"블루는 자신을 데려갈 사신일지도 모를 그 존재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중년의 얼굴이 나타났다. 블루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과 목에 걸린 낡은 목걸이는 분명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
"당신을 계속 찾아다녔어. 아주 오랫동안."
남자가 블루의 손에 별을 쥐여주었다. (⋯) 맞아, 난 한때 이런 기억들로 살았다. 나를 이루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던 시간들이 있었지. 스스로를 되찾은 블루는 너무 오래 부르지 못해 입 안에 갇혀버린 이름을 비로소 떠올렸다. 블루는 마지막 남은 온 힘들 다해, 세월의 먼지를 털어낸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오랜만이야, 썸머.""
- 「트로피컬 나이트」 부분
으스스한 존재를 마주하더라도 사랑이란 이름 하에 용기를 내는 아름다운 마법들로 가득 찬 소설. 조예은 작가의 「트로피컬 나이트」는 따뜻한 사랑의 포근함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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