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그날도 엄마는 달력에 표시된 날들의 수를 셌어. 빨간 펜으로 하트 모양. 갈수록 하트의 수가 줄어간다는 것을 깨닫고선 한숨을 내쉬었어. 이것은 회사 생활에 찌들어 피로한 날이 늘어가는 아빠의 상태가 반영된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어. 잠에 곯아떨어진 아빠를 흔들어 깨울 때면 늘 듣게 되는 말, 너무 피곤해... 피곤한 사람을 굳이 깨우는 엄마의 심정도 편하지만은 않았단다. 하지만 걱정이 되어서 어쩔 수 없었어.
엄마 아빠는 또래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결혼했어. 기다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뿐더러 가진 것 없이 결혼했으니 아기를 천천히 갖자고 의견을 나누었어. 그리고 아기가 생기면 못하는 게 많아지니 적어도 2년은 신혼을 즐기자는 의견에도 합의를 보았지. 그러면서도 따로 약을 먹거나 날짜를 조정하지 않았어. 피임 도구를 사용하지도 않았어. 어쩌면 엄마 아빠는 정말로 아기를 갖지 않으려는 마음보다 적어도 2년 동안은 임신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자는 것에 합의를 한 건지도 몰라.
그도 그럴 것이 큰이모가 J형을 낳기 전에 유산했던 경험이 한 번 있었어. 작은이모도 7년간 아이를 갖지 못해 고생한 건 알고 있지? 그래, 너도 잘 알다시피 작은이모는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낳았어. 그런데 그러기 전, 체외수정으로 인해 나팔관 하나를 들어내는 고통을 겪어야 했어. 그것을 옆에서 고스란히 다 지켜보았던 엄마로서는 두 가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단다. 생명 하나를 얻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구나, 생명을 기다리는 시간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구나...
사랑해서 결혼한 두 사람 사이에 반드시 아기가 있어야 하는 걸까? 그것은 단순히 종족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생각이지 않을까? 아이가 없어도 부부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지 않나? 아기가 생겨봤자 고생문이 훤한데, 마음 졸이고 애를 쓰면서까지 굳이 아기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넌 어떻게 생각하니? 그때 엄마 아빠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어.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자.’
그때는 그 결론이 참 쿨하면서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아이가 있든 없든, 엄마 아빠의 사랑을 흔들만한 요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럴듯하고 꽤 긍정적인 그 결론이 어느 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어. 우리가 약속한 2년이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초조했어. 기껏해야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때, 따로 피임하지 않았음에도 아기가 생기지 않고 있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거든. 먼저 든 마음은 걱정이었어. 한 뱃속에서 태어난 이모들의 사례가 어쩌면 엄마에게도 해당될지 모른다는 유전학적인 염려가 엄마를 사로잡았기 때문이야.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했냐며 너는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없어도 괜찮다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어졌어. 설상가상으로 우리보다 늦게 결혼한 커플들에게서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왔지. 그때 든 엄마의 마음은 시샘이었어. 왜 우리에게 없는 아기가 그들에게는 있는 걸까? 부러운 마음이 걱정하는 마음과 뒤엉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말았지. 벌써 너의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아. 걱정하고 시샘하는 그런 찌질한 감정을 왜 갖냐고 너는 이유를 묻고 싶겠지? 글쎄, 그게 그렇게 근사한 마음은 아니었겠지만 엄마는 그저 너를 어서 만나고 싶었어.
피곤에 절어 잠든 아빠를 깨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란다. 그날은 엄마의 배란일이었고, 너를 가질 확률이 가장 높은 날이었어. 그런 날을 그냥 건너뛴다는 건 엄청난 손해처럼 느껴졌지. 그때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학부 때 들었던 수업 내용이 섬광처럼 떠오르기도 했어. ‘성(sex)은 생명과 쾌락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지닌다.’
그 수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래. ‘성은 생명을 위한 거룩한 행위이다. 그 거룩한 행위에 쾌락이라는 선물이 주어진 것이다. 생명이 우선이고 쾌락은 다음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엄마는 결심한 거야. 쾌락에만 집중했던 엄마 아빠의 관계가 이제는 그 순서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거룩한 다짐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어. 이제 우리는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위해 나아가는 거야....
H야, 엄마는 결혼 후 1년의 시간이 너를 만나기 위해 엄마로서 준비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그 준비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엄마는 비로소 너를 만날 날을 고대하게 된 거지. 넌 ‘실수로 어쩌다 생긴’이 아닌, ‘계획과 달리 당황스럽게 만난’이 아닌 ‘만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나고, 어서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소중한 아이란다. 걱정과 시샘이 어찌 보면 찌질해 보이는 감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너를 만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넌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너도 아빠가 되겠지. 그때 너나 너의 아내가 엄마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될까? 걱정하고 시샘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기다리게 될 때, 엄마는 그 마음이 결코 보잘것없는 마음이 아니라고 말해 줄 거야. 오히려 그 마음은 생명을 오롯이 기다리는 ‘사랑에서 비롯된 마음’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 행여 걱정과 시샘의 끝에 생명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엄마는 너를 칭찬할 거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기다릴 줄 아는 그 마음만으로도 너는 참 괜찮은 사람이니까. 오늘도 깊이 곱씹으며 마음을 전한다.
“사랑해, 아들.”
[저자소개]
글로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신나기 때문에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쓰고 뱉다’(글쓰기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글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이 있기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7년 연애 후 결혼에 골인한 뒤 20년차 주부로 살고 있으며, 초, 중, 고 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한때 ‘완전한 엄마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지금은 ‘안전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 주일 학교에서 4세 이하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황금머릿결’이라는 필명으로 7권의 웹소설 전자책을 출간한 이력이 있습니다. 모든 일상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를 즐깁니다.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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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티제
진심이어서 들 수 밖에 없는 걱정과 시샘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니 저의 찌질함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안심입니다.
쓰니신나
언제나 깊이 있게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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