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게 나이들어요, 우리

우리 사이의 적절한 거리 두기-수줍음의 미학

[귀엽게 나이들어요, 우리] by 박나긋

2024.01.09 | 조회 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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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부끄해요 / 사진출처: VAITSN
부끄부끄해요 / 사진출처: VAITSN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수줍음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쭈뼛거렸을 행동들을 비교적 쉽게 해내곤 한다. 식당에서 이모~~ 하고 큰 소리로 부른다든지, 맨 얼굴 그대로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온다든지, 불만사항이 있을 때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조곤조곤 따지는 일들 말이다. 

   한편 나이가 들면서 아쉬운 점 역시 수줍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사람이나 상황들을 더 이상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는다. 낯가림이 익숙해질 때까지 들였던 수고를 귀찮게 여긴다. 오히려 이제까지의 내 삶의 경험치만 정답인 마냥 쉽게 판단하고 단정 짓고 자신하는 것 같다. 종종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면서 말이다. 

   몇 년 전, 친하게 지내던 동생 K가 진로 문제로 상담을 청한 적이 있다. 당시 언니 된 도리로 도움이 되고 싶고 또 나름이지만 해답을 제시해 인정받고도 싶었던 듯하다. K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고민을 듣고 난 후 여러 조언들을 딱딱 해 주었다. “K야, 너는 지금 이러이러한 게 문제야. 나라면 너처럼 하진 않을 것 같아. 이렇게 주저주저하니까 상황이 더 안 좋아지지”

   K는 당일에는 고맙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며 돌아갔지만 왠지 그 이후로 연락이 뜸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말한 것 이상의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K의 말의 행간이나 더 깊은 마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 입장에서의 정답들만 읊어댔으니 안 그래도 힘들었을 K에게 괜한 짐만 하나 더 얹어준 셈이었다. 

   ‘수줍다’의 사전적 의미는 “숫기가 없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태도”이다. 상담학적 관점에서는 이를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정서로 간주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수줍음을 간직한다는 것은 비단 사전적 의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오히려 수줍음은 상대방에 대한 적절한 거리 두기이다. 너를 내 기준에 맞춰 함부로 단정 짓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겠다는 배려이다. 너의 마음을 헤아리고 말로 전하지 못하는 눈빛을 읽고자 하는 노력이다. 내 안의 여전한 부족함을 인정하며 나의 생각들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또한 수줍음은 인생 경험치가 쌓이면서 시시하게 여겨지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활력이 된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낯설어하며 호기심 있게 탐구하게 해 준다. 그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아직도 더 자라갈 데가 있는 것에 기뻐하며 우리 사이에 남은 생을 기대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비단 이런 의미들을 재정의하지 않더라도 실제로 수줍어하는 모습은 귀여움을 불러일으킨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짓과 발그레한 볼, 큰 목청 대신에 조용하지만 상냥한 목소리는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자신의 100가지를 다 보여주는 것보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의 신비로운 매력이 분명 있다. 

   할머니(할아버지) 되어서도 여전히 수줍음을 간직할 있다면 좋겠다. 젊은이가 새롭게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눈부셔하는 것처럼, 여전히 마음과 태도로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길 바라본다. 그리될 있다면,  라떼는 말이야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함께 라떼 한 잔의 깊이를, 인생 한 잔의 달콤함을 나누고 싶을 테니까.  



[저자소개]

평생동안 귀여운 것을 수집하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좁은 집이 귀여운 잡동사니들로 가득해졌다. 더 이상 귀여운 것들을 들일 곳이 없자 스스로 귀여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말랑한 마음가짐과 둥글한 삶의 태도면 충분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진리를 믿는 중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매일 글을 쓰고 마음을 뱉으며 한뼘씩 자라는 중이다. 언젠가 작은 그늘이라도 생긴다면, 지친 누군가에게 한자리 내어주고 싶다.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표현해줄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할수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는 글은 <쓰고뱉다> 숙성반 분들의 글입니다. 오늘 읽으신 한잔이 마음의 온도를 1 정도 높여주는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댓글보러가기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커피 보내기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주신다면 더욱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드는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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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니신나

    0
    2년 이상 전

    집어던진 수줍음을 다시 챙겨오게하는 정말 멋진 글입니다! 귀엽게, 수줍게 미소짓는 오늘을 기대하게 하는 오늘의 한잔, 잘 마셨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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