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어느 날 마을회관 앞을 지날 때였다. 아기 오리들이 줄 지어 서 있는 것마냥 회관 입구 옆엔 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회관 주변의 주차할 수 있는 모든 곳은 트럭이며 승용차로 가득했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꼭 초등학교 입학식이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길래 다들 모이신 걸까 궁금해졌다.
며칠 뒤 찾아온 일요일. 교회 예배에 오신 김권사님한테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쭸다. 참고로 김권사님은 마을에 일어나는 일이나 궁금한 점을 물으면 다 알려주시는 그런 분이다. 김권사님 말씀하시길, 대동회가 열렸었다 하셨다. “대동회요?”
대동회는 이랬다. 구정을 보내고 정월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지난 한 해 동안 마을 살림이 어떻게 꾸려졌는지 결산한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기 전 올 해도 함께 힘내서 지어보자며, 농사의 출발을 알리는 잔칫날이었다. 마을 반상회나 교회의 월례회의 규모가 커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시골에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이곳에 살다 보니 자연을 곁에 둔 모든 계절이 새로웠다. 봄을 앞둔 첫 번째 겨울의 끝자락은 유독 그랬다. 어느 때보다도 무엇이 도시와 다른지를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다 함께 모여서 잔치를 연다니.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도시살이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옆집 문 열리는 소리조차도 그저 옆집에 사람이 살고 있구나 정도의 인기척 일뿐 나에겐 어떠한 온기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누가 주차를 잘했는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집은 어디인지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옆집 사람, 윗집 사람이었다.
어릴 적 집 앞마당에 둘러앉아 엄마와 콩나물을 다듬던 동호네 아주머니와 수지 할머니. 에스페로를 타다 아카디아로 차를 바꾸고 애지중지 세차하던 준짱네 할아버지. 하교 후 틈만 나면 자전거 시합을 겨루던 동갑내기 남자애 선진이. 보물이 가득했던 경연슈퍼 주인아주머니까지. 옆집 윗집이 아닌 이름으로 불린 추억 속의 이웃들이다.
커갈수록, 이사를 하고 새로운 곳에 살면서부터였다. 우리 집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이웃이라기보단 나의 오고 가는 것을 인사는 생략된 채 눈으로 확인하는 존재로 여겨진 게. 말 거는 사람도, 말을 걸 사람도 없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언젠가부터 점점 어두워졌다.
이웃은 내가 성장할수록 점점 마음의 거리가 멀고 불편한 존재로 여겨졌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 주변을 둘러보니 어릴 적에 쓰던 친근한 단어인 ‘이웃’은 사라졌고, 아랫집 윗집, 몇 호에 사는 사람으로 이웃을 명명했다. 이런 이웃 아닌 이웃에 오랜 시간 익숙해진 후 마주한 대동회는, 얼어붙은 손에 따듯한 쌍화탕을 쥐여 준 것처럼 잠들었던 어릴 적의 온기를 되찾게 했다.
어릴 적의 온기. 회상해 보면 이 온기는 사람 인(人) 자를 그리며 서로 잠시 기댈 어깨가 되어주고 속내를 들어주던, 그저 옆에서 묵묵히 함께 있어주던 그런 포근한 연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퍽퍽한 도시살이에선― 이마저도 안 되는 경우가 있지만― 가족 안에서나 기대할 수 있었던 연대가, 이곳에서는 마을 전체를 둘러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다. 땅이 생명을 품 듯 마을의 연대는 존재를 다 품는 것만 같았다.
이듬해 대동회 날. 마을회관 밖의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줄 지어 서있는 풍경도 회관 가득히 북적대는 잔칫집 웃음소리도 여전했다. 띄엄띄엄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종근 어멈, 감나무집에서 먹으라고 줬슈!” “지문이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댜.” “강희야, 혼자 밥 채리기 힘들 텐데 이거 갖다 먹어라 야.” 돌이켜 보면 도시살이도 시골살이도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셋넷이 좋았다. 어디 사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은 연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저자 소개]
초록, 하늘, 나무, 들꽃. 자연의 위로가 최고의 피로회복제라 믿는 사람. 퍽퍽한 서울살이에서 유일한 위로였던 한강을 붙들고 살다, 시골로 터전을 옮긴 지 8년 차 시골사람. 느지막이 찾아온 줄줄이 사탕 5살 아들, 4살 남매 쌍둥이, 3살 막내딸과 평온한 시골에서 분투 중인 어설픈 살림의 연연년생 애 넷 엄마. 손글씨와 손그림, 디자인을 소소한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 ‘사랑하고, 사랑받고’라는 인생 주제를 이마에 붙이고, 주어진 오늘을 그저 살아가는 그냥 사람. 소박한 문장 한 줄을 쓸 때 희열을 느끼는, 쓰는 사람.
그대여. 행복은 여기에 있어요.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는 글은 <쓰고뱉다> 숙성반 분들의 글입니다. 오늘 읽으신 글 한잔이 마음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댓글 보러 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 주신다면 더욱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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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아... 따스합니다. 우리는 연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다시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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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티제
마지막 사진에서 침 꼴깍. 연대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 연두색 형광펜 쭉 긋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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