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계절이 계절 답게 익어가는 시월이네요. 눈을 돌리면 이곳저곳은 모두 아름다운데 마음은 바쁘고 초조하기만 합니다. 요즘 저는 초등학생들의 즐거운 수학여행을 위해 애쓰고 있어요.
하여, 이번 주제를 '수학여행'으로 잡고 [수학여행의 유래]까지 적었답니다.
그런데... 그냥, 제 맘 같지 않더라고요.
유독 지치고 버거운 마음이 드는 하루라 '수학여행' 토픽은 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감사한 계기로 글을 실었던 지면에 제목으로 내세운 동명의 노래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읽고 싶은 양질의 편지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정보전달의 측면이 강해진 장아찌는 본래 그런 의도였어요. 내 기억 속에 봉인된 서랍, 누군가의 기억 속에 봉인된 서랍.
드르륵
서랍 문을 열어 케케묵은 먼지를 후- 불어내고 담아 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오늘은 누군가의 서랍을 닮은 시, 서랍에 담긴 가사를 건져 담아냅니다.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인사이드 아웃 '빙봉'이 사는 곳이 있다면 이곳, 명왕성일까요?
이따금 곱씹게 되는 장이지 시인의 시를 가장 먼저 소개합니다.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장이지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 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너를 찾아와 안부를 물어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도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 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 사진도 있는 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려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포옹이 지나가, 겁이 난다는 너의 말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 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 밑이 검어져서는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 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말하는 텔레토비 나나 인형, 딱 스물 다섯곡. 엄선된 노래만 담아들을 수 있었던 아이리버 mp3, 이사가던 친구가 목숨처럼 선물하고 갔던 장나라의 sweet dream 포토북, 색색을 바꿔가며 들뜬 감정을 털어놓던 다이어리. 잊혀진 제 명왕성을 떠다니며 끝없는 음파를 보낼 대상은 이 정도 떠오르네요. 여기에 들지 못한 무엇이면 미안해서 어떡하죠?
여러분의 명왕성에선 누가 이따금 신호를 보내나요?
💿Track 11 - 이소라
모든 제목이 트랙과 숫자로만 되어있는 이소라 7집.
세번째 트랙, 여덟번째 트랙, 아홉번째 트랙이 가장 유명한 것 같은데요. 한때 첫번째부터 열세번 째 트랙까지 가리지 않고 열심히 들었는데 지나고 가장 좋은 건 이 열한번 째 트랙이더라고요. 잊혀진 별 명왕성의 여파인지 이상하게 서랍 안에 있는 이 노래를 소개하고 싶어졌어요.
"함께 우주에 뿌려진 우리 수많은 별 그중에 처음 맘 내려 놓을 곳 찾아 헤매였죠."
서랍을 넘어 우주로 가는 것만 같지만, 우린 모두 소우주니까 그 서랍은 어차피 우주고 그 우주는 어차피 서랍일 거예요. 이 노래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시타르 소리가 좋아서요.
60년대 말, 전세계적으로 히피의 사랑과 평화가 유행하던 시기에 서양인들은 동양의 정신과 사상에 매료되어 동경했대요. 그래서 많은 웨스터너들이 동양으로 넘어가 동양의 악기를 배웠다고 하는데요.
그중 대표적인 그룹이 조지해리슨이 속한 비틀즈랍니다!
조지해리슨 역시 시타르의 소리에 푹- 빠졌었다고 하는데 너무 이해해요.
어딘가 초월적이고 편안하고 신선이라기엔 소박하고... 암튼 참 좋습니다.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지금까지 우리의 서랍이 행성과 우주였다면 이번엔 바다로 갑니다.
지금은 잔잔한듯 보이지만 한 때 거세게 불어 닥치던 우리의 낡은 바다.
'나의 바다 그 고요한 곳에 무겁게 내려가 나를 바라보네
난 이리 어리석은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나 그 어린 날에 웃음을 잃어만 갔던가
초라한 나의 세상에 폐허로 남은 추억들도 나 버릴 수는 없었던 내 삶의 일부인가'
'추억'으로 남은 대부분은 서툴던 시절입니다. 그 고요한 바다가 가진 것들은 필연적으로 서툴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뼈아프고 부끄러운 것들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근데 참 이상하죠. 추억의 행위자였던 나는 그때 부끄러운 선택만 했던 것 같은데 우린 언제나 난 그대로인데 나이만 이만큼 먹었다고 놀란다는 점이에요.
언젠가의 바다엔 오늘의 파도가 칠텐데요.
그 바다를 얼마나 낯뜨겁게 여길지 또 내심 질투하고 있을지 벌써부터 알겠어요.
오늘은 번뇌로 가득한 마음 속, 해묵은 감성을 꺼내어 장아찌를 담가보았습니다.
평소와 사뭇 다른 이번 편지는 어떠셨나요?
좋든 나쁘든
여러분의 서랍, 행성, 우주, 바다 어딘가에 넘실대는 아련한 추억의 조각이
부디 슬쩍 고개를 들이미는 시간이길 바라요!
회상하기 좋은 기온의 계절입니다.
몸은 아프지 마시고 남은 가을은 맘껏 타시길 바라요!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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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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