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용하는 버스 노선은 좀 특이하다. 내리는 정류장에 상 하행 버스가 함께 선다. 그러니까 같은 번호라도 어떤 버스는 버스 정류소 앞에서 유턴해서 회차하는 버스고 다른 하나는 종점으로 가는 버스다. 번호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사 아저씨가 수동으로 바꾸는 표지판을 잘 보고 타야 한다.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려주는 전자 안내판에는 버스 번호 뒤에 (회차) (종점행) 이렇게 표시가 되어 나온다. 나는 내가 내린 정류장에서 다시 타면 집으로 오게 된다. (물론 잘 보고 종점행이 아닌 회차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터널을 지나 바로 집 앞으로 오기 때문에 내가 무척 선호하는 노선이기도 하다.
오늘도 일을 마치고 길을 건너 버스를 타려는데, 아차, 내가 타야 하는 회차 버스가 보행 신호에 천천히 유턴을 하고 있었다. 저런 타이밍이면 뛰어봤자 놓칠 수도 있지만 일단 한 번 뛰어보기로 했다. 혹시 승하차 하는 승객이 많아서 정류장에서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으니까. 어? 그런데 이상했다.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별로 없는데 버스가 여전히 서 있었다. 열심히 우다다 뛰고 있는 아줌마를 기다려 주는 고마운 버스인가 싶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나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도 보이지 않는 정류장인데 왜일까?
타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있었던 것이다. 저상 버스에서 휠체어 손님을 태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기사가 버튼으로 조작하면 자동으로 뭐가 설치되는 것이 아니었다. 버스를 세우고 공간을 확보한 후에 기사가 직접 버스 문 앞 바닥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겨 뚜껑을 열듯이 바닥의 장치를 잡아당겨 넘겨서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슬로프를 수동으로 마련해야 했다. 그러느냐고 버스가 늘 하던 것보다 오래 정차했고 그 덕분에 내가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아주머니가 타고 기사가 다시 좌석으로 돌아오고 버스가 출발했다. 아주머니는 큰 소리로 “아저씨 00에서 내려주세요!” 하고 외쳤다. 나는 맨앞 좌석에 앉아있었지만 순간 버스에 싸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버스를 잘못 타셨던 것이다! 회차행이 아닌 종점행 버스를 타셔야 했다.
아저씨가 대답하셨다. “잘못 타셨어요. 이 버스 거기 안 가요.”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왜 안 가요? 00라고 옆에 적혀 있는데 왜 안 가요?”
“다른 버스 타셔야 해요.” 아저씨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시는 것 같았다. “물어보고 타세요”
“아저씨 저희 내려주세요! 내려주세요!” 아주머니가 점점 목청을 높이며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렀다.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는,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때 아저씨가 예상치 못한(그리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셨다. 아주머니 말 대로 정류장 중간에 버스를 그냥 세워버리셨던 것이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다시 슬로프를 설치하셨다. 그리고 아주머니를 내려드렸다. 그제서야 돌아보니 다행히 아주머니에게는 묵묵히 아무 말 없이 있는 도우미 같은 청년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내리면서도 경사가 너무 급하다 뒤를 잡아달라 계속 다급하고 큰 소리로 불평을 하셨고 휠체어가 내려갈 때는 뭐가 걸리신 듯 비명을 지르셨다. 그러는 와중에 아주머니가 타야 했던 종점행 버스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저 버스를 타셨어야 했는데…
문이 닫히고 아주머니와 도우미 청년을 뒤에 남긴 채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혹시 기사 아저씨가 한 마디라도 하시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저씨는 그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운전을 하고 계셨다. 몇 정류장 후에 나도 내렸다.
아주머니가 조금 더 침착하게 문의를 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기사 아저씨는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친절하지는 않을지라도) 정확한 안내를 해주셨을 것이다. 아니면 기사 아저씨가 아주머니의 막무가내의 외침을 견디면서라도 다음 정류장까지 가서 내려드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정류장 중간에 정차를 하고 승객을 내리는 일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에게 어떻게 뭐라 하겠는가. 저상버스라 할지라도 휠체어를 탄 승객을 태우는 일은 정말 시간과 수고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바로 뒷자리에서 아저씨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저씨는 많이 참고 계신 것 같았고 결국은 뭐라 한 마디 하시지도 않으셨다. 마치 진상 고객을 대하는 직원 같았다. 그렇다고 휠체어를 탄 아주머니에게 또 뭐라 하겠는가. 길에도 버스 노선에도 또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서툰 것이 꼭 그 아주머니의 탓이라고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는 우리가 익히 듣지 않았던가.
결국 문제는 그 헛갈리는 버스 노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용기를 내서 그 버스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가 버스 정류장에 안내문을 붙이는 것을 건의하는 글을 올렸다. 앞쪽에 버스 번호와 정류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이러한 승객들의 착각에 대해 쓰고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기사분들에게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물어보시고 눈에 뜨이는 안내문을 두 정류장에 붙여놓으신다면 승객들의 편의는 물론 잘못 탄 승객들과 실랑이를 하는 기사분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버스 회사에서 진지하게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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