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조롱하고 자신의 일행과 낄낄거리는 일, 그리고 그런 일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반복된다는 건 나의 모국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문제는 나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진짜 그들과 다르게 생겼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혹시나 내가 너무 한국인스러운 옷차림이나 스타일이라 더 눈에 띄는걸까 같은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한다는 거다. 독일에 처음 와서 길거리에서 ‘칭챙총’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의 당혹감이 이제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지경이 되었지만, 겪는 그 순간만큼은 늘 새로운 불쾌감이 생겨난다.
때로는 아주 노골적인 차별의 모습으로
베를린 여행을 할 때였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서 혼자 신문을 읽고 있는데 창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일곱살쯤 되는 아이들 넷이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며 구경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누군가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듯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며 낄낄 웃다가 나를 보며 비웃었다. 저렇게 작은 아이들인데, 성인인 나를 괴롭힐 수 있을리는 없었다. 묘한 불쾌감에 못 본 척 다시 할 일을 하니, 더욱 과장스럽게 깔깔 웃으며 창밖에서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해코지할 수 없는 작은 존재들이 또래들과 모여있을 때만 나오는 과장된 놀림에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들이 뭐라고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으니 적어도 그 일만큼은 섣불리 ‘인종차별’ 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독일에 온 후 꽤 빈번하게 겪는 일임은 분명하다.
노골적인 차별은 알아차리기 쉽다. 즉각적으로 불쾌하고, 헷갈릴 여지 없이 인종차별이다.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일은 또래와 함께 있는 어린이 또는 10대들이 나를 향해 낄낄거리며 ‘니하오’ ‘칭챙총’ ‘오하요’ 같은 말을 외치는 일이다. 니하오와 오하요는 각각 중국어와 일본어로 안녕이라는 인사말이지만, 확실히 그 상황은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거는 건 아니다. ‘니하오’를 외치며 내 반응을 살피고 주변 친구들에게 ‘봤지? 나 이 정도로 센 사람이야’ 같은 태도로 거들먹댄다. 언젠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끄러운 무리가 조용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은 무시하고 지나치라고들 조언하고 나 역시 무시는 편이지만, 가끔 그게 안 되는 날이 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지금 독일에서 인종차별 한 거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 아이들은 당황한다. 당황하는 모습에 나도 당황스럽다. 이 정도 한 마디 한 걸로 놀랄 베짱이면 무슨 용기로 또래도 아닌 성인에게 장난을 친 건지.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나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른다. “경찰에 신고할까? 끔찍하다 진짜! 인종차별이라니!” 독일인들이 특히 민감하게 생각하는 인종차별이라는 말을 크게 반복적으로 외치면 아이들도 위축되고 때론 주변 성인이 나서서 나 대신 심각하게 아이를 꾸짖고 대신 사과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잘못된 거라고 지적을 했으니 잘한거야 라고 애써 다독이면서도 마음이 좋았던 적은 없다.
곱씹을수록 불쾌한 기억들
노골적이지 않지만 은근하게 다르게 대우하는 일은 당시에는 내 잘못인가 탓하게 만들고 곱씹을수록 불쾌하다. 동네 수영장은 유독 아시아인이 없다. 나와 남편이 수영을 하러 가는 날엔 수영장 전체에서 우리만 아시아인일 때가 대부분이다. 다들 평화롭게 수영을 하는데 그 날 따라 시끄러운 젊은 여성 둘이 한 레일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입영(서서 걷는 듯 떠있는 수영법)을 하기 시작했다. 한 레일 안에서 암묵적으로 한 줄로 수영을 해야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이 부딪히지 않는데, 그들은 주변을 아랑곳 않고 둘이서 손을 잡고 시끄럽게 떠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 수영을 하던 사람들은 불편함을 표하며 그들을 피해다녔는데, 하필 남편이 그 레일에 있었다. 남편도 어쩔 줄 몰라하며 요리조리 피해서 수영을 하는데 갑자기 중년의 독일인이 남편에게 팍 짜증을 냈다.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정해줄래? 방해돼서 수영할 수가 없잖아” 누가봐도 가운데를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 두 독일인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다니느라 레일의 규칙이 엉망이 됐는데, 버럭 짜증은 아시안인 남편에게 돌아왔다. 당황했지만 남편은 웃으며 사과했고, 앞으로는 한 쪽으로 다니겠다 말하자 그 사람도 민망했는지 시간이 지나자 웃으며 머쓱하게 눈인사를 청하기도 했다. 그냥 우연히 운이 나빴다기엔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아무리 조심해서 행동해도 유독 더 아시아인에게 날카롭게 지적하고, 나무라는 일은 우리 부부만의 일은 아니었다. 한국인들끼리 만나면 자주 공유되는 공통의 경험이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쉽게 부정당하기도 한다. “그냥 우연히 재수가 없었거나 네가 눈에 띄는 행동을 했겠지.” 결론은 타지에서 눈에 튀는 소수 인종일수록 더욱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고 누가 나무라면 그냥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노골적인 차별과 은근한 차별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면 문득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만약 성격을 형성하는 청소년기에 왔다면 지금만큼의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더욱 공부하고 운동하고 외모도 가꿔서 그들보다 더 잘난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차별로부터 나를 지키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일차원적 조롱도 반복되면 성인의 감정도 뒤흔드는데, 가만히 남들만큼 살면 초라하고 힘없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을까. 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바로 옆 도시에서 강력범죄로 이어진 인종차별 사건들이 일어날 때, 특히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시비와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하는데, 그에 비하면 사소한 일들일 뿐이겠지만 차곡차곡 쌓여 알 수 없는 감정을 만든다.
나는 익숙한데, 나를 낯설어하는 사람들
차별이라 말하기 어렵지만 신기한 존재가 되는 일도 종종 있다. 외국인이 거의 없는 동네를 걸으면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걸음을 멈춘다. 고개를 들어 신기한 걸 보듯이 나를 구경하기 시작한다. 가끔 어린이가 많은 수영장에 가면 레일 안에서도, 탈의실에서도 나를 동그랗게 아이들이 둘러싸기도 한다. 아이들에 둘러쌓여 신기한 시선을 받고 있는 나를 멀리서 보며 남편이 어이없어 하며 웃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 악의없이 나를 보고 놀란 아이들은 보호자가 와서 데려갈 때까지 아무말 없이 빤히 구경한다. 외국인을 본 적이 별로 없는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빈자리에 앉자 맞은 편에 앉은 할머니가 나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더니 가방을 움켜쥐었고 (마치 자신을 지키려는 듯이) 내릴 때까지 한참을 빤히 나를 바라봤다. 보통의 시민에게는 무례한 행동이라 말을 하겠지만, 그야말로 외계인을 보는 듯 놀란 그들 앞에서, 순수한 호기심 또는 당황이나 두려움 앞에서 헛웃음이 날 뿐이다.
아무리 익숙한 동네일지라도, 자꾸만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3년을 매일 같이 가는 집 앞 마트 앞에서 지나가던 독일인이 달리던 자전거의 방향을 돌려서 나에게 다가왔다. “도와줄 게 있을까요?” 차가 오는지 좌우로 살피고 건널목을 건너는 내 모습이 마치 낯선 길을 헤매는 여행자 같아보였나보다. 그럴 때면 그냥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곤 하는데, 적극적인 선의에 살짝 기분이 묘했다. 어느 봄날에는 벚꽃이 예쁜 우리 동네를 산책하다 한 독일인이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정중하게 중국인이 아니라고 답하면 곧장 사과를 하고 스몰톡을 시작한다. 독일에 여행하러 왔냐고 묻는 그 사람에게 이 곳에 산다고 하니 또 한 번 당황하며 자신은 독일의 다른 도시에 살고 이 곳에는 여행하러 온 것이라 한다. “로컬(현지인)은 너고, 내가 여행객이네. 내 질문이 좀 웃겼지?” 머쓱하게 말하는 그에게 그저 웃을 뿐이다. 어쩌면 이 곳에서 태어난 한국계 이민자들도 평생을 자신의 고향인 곳에서 ‘여행왔니?’ 같은 질문에 반복적으로 답변을 하고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30년 전 독일로 이민 오신 한국계 독일인 이웃도 코로나가 한참 심한 시기에는 길거리에서 인종차별을 자주 겪었다고 한다. 어지간해서는 유치한 조롱에 대꾸도 안하는 편이지만 그 때만큼은 너무 빈도가 잦아 스트레스를 받게 됐고 한 번씩은 지적하고 나무랐다고 한다. 어쩌면 이 곳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아도, 나는 이 곳이 익숙해지지만 이 곳은 나를 익숙해하지 않는 느낌을 계속 받을지도 모르겠다. 타지에 산다는 것이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서글프기도 하다. 아무리 오래 고민해도 인종차별에 가장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다만 독일에서의 경험이 나를 바꾸게 된 것이 있다. 전형적으로 타국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 할 지라도 독일에서는 반드시 독일어로 먼저 말을 건다. 그 사람이 교포 2세일 수 있고, 이민자 출신의 독일인일 수 있는데 외모만 보고 국적을 함부러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한국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다른 인종이라 할 지라도 당연하게 영어로 말을 걸지 않고 일단 한국어로 말을 걸겠다고 다짐한다. 혹시나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 할 지라도 관찰하듯 빤히 바라보는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한국에서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한국어를 잘하더라도 섣불리 칭찬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한국에 오래 산 사람일 수 있는데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여행자 취급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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