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디터 람스의 말이다. 그는 디자이너로서의 자신의 직업을 있게 하고 자기 디자인 철학의 기본이 되는 10가지 원칙을 공식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내가 하는 일, 그 일을 하는 방법, 그리고 왜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해 새삼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자동차회사에서 인사와 조직의 나아갈 바를 연구하고, 개선 방향을 제안하는 책임매니저’, 나의 일, 나의 포지션을 간략하게 표면적으로 정의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회사 내에서나 회사 밖에서도 이렇게 내 일을 소개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 단어들의 나열이 나의 일을 적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여전했다. 그러면 나는 나의 일을 어떻게 좀 더 세밀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난 그 일을 왜 하며,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렇다. 한명수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 안에 흐르는 공기가 있다. 새로운 조직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설렘과 긴장 속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순식간에 그 조직의 ‘공기’를 파악하게 된다. 기존 구성원들의 반응, 리더의 표정과 말투, 사무실의 분위기와 온도, 이 모든 것들이 일시 정지 화면처럼 박제되듯 머릿속 한편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처럼 처음 접한 기존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에서, 특히 리더의 말과 행동에서 새로 조직에 들어온 사람은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을 읽어낸다. 나를 환영해 주는지 아닌지, 서로 위해주는 문화인지 각자도생의 문화인지, 조직의 방향이 명확한지 아닌지 등을 삽시간에 파악하게 된다. 이렇듯 출근 첫날에서 시작해서 일정 기간 신규 구성원이 경험하는 일련의 ‘온보딩(Onboarding)'은 이후 조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조직을 살피는 인사 담당자는 자연스레 구성원의 온보딩 경험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 역시 그렇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봄에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 전 세계에서 온 만 명 넘는 인사 담당자들이 모여 주제 발표도 하고 토의도 하고 상호 교류도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HR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세션에 참석하여 새로운 인사 기법 사례 설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가장 크게 나를 사로잡았던 단어는 ‘구성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이었다. 새로운 직원이 회사 조직에 입사하여 업무를 하고 성장하다가 조직을 떠나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여정(Journey)으로 볼 수 있는데, 각 단계에서 구성원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에 따라 그들의 조직 적응, 업무 성과, 협업, 조직 몰입도, 고용 유지 등에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 주요 메시지였다. 십 년 넘게 인사교육 담당자로 일해오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었지만, 조직 구성원이라면 느끼게 되는 경험의 과정 전체를 한 발짝 떨어져서 응시할 기회였기에 지금까지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인사교육 담당자(HR 매니저)’가 아니라, ‘구성원 경험 디자이너(Employee Experience Designer)’라고 나 스스로를 소개하기 시작했던 게. ‘사람과 조직, 그리고 일’에 대해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더 만족하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고, 조직과 적합성이 높은 사람들을 채용하고, 그들의 경력개발 고민을 들어주고 전환 배치를 도와주며, 지속적인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의 일터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더 낫게 구성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일하고자 했다.
구성원 경험 디자이너로서 첫 시작을 ‘신규 직원의 온보딩 경험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 로 잡았고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준비했다. 그러다가 ’누가, 어떤 순서로, 어떤 내용으로, 어떤 마음으로, 새로 조직에 발을 내딛는 분을 환대할 것이냐?’ 라는 기획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건 바로 기존 구성원들의 일상의 일터 경험에 따라 ’신규 입사자 온보딩의 질‘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몇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좋은 척이 아니라, 진정 좋은 조직문화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려면 결국 기존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구성원들의 ‘일상의 경험’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떻게 일상 경험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 파고들고 또 파고든다. 여전히 어려운 주제이지만 그 탐구의 과정에서 ‘내가 하는 일, 그 일을 하는 방법, 그리고 왜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해 사부작사부작 답해가고 있다. 우리 회사 안에 ‘좋은 공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오늘 하루도 시작한다.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자동차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9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자동차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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