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을 사부작사부작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글을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나서부터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책을 대하는 마음이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여정을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누군가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펴낸 책 한 권을 후루룩 잔치국수 먹듯이 읽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앞선다. 함께 한 편집자의 노력과 책 디자이너의 수고도 함께 읽혀서 왠지 푹 삶아낸 곰탕을 음미하듯 먹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런 마음으로 펼쳐 든 책이, 정인한 작가의 <커피의 위로>다.
‘로스팅, 분쇄, 추출, 드립’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된 목차를 훑어보면서 어떤 에피소드 먼저 읽어볼까 살펴보다가 첫 페이지부터 차분하게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 마음이 갈 때마다 이야기 하나씩 하나씩을 펼쳐봐야지 했는데 어느덧 책 사분의 삼을 읽어버렸다. ‘아, 이런 기세라면 하루만에 다 읽어버리겠는데.’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을 처음 펼쳐들 때의 마음과는 다르게 후루룩 읽어버리는 내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사람 삶의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또는 그의 품 안에서 살펴보는 맛이 에세이 읽기에 있다면 이 책 역시 에세이집의 본질에 충실했다. 카페라는 공간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주체로서의 고민과 감정, 그 안에서 품어보는 소망의 메시지와, 과정과 결과로써의 글, 이 모든 것을 섬세한 감각으로 마주했다. <카페, 계절과 삶의 리듬>이란 부제처럼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는 작가의 계절과 삶의 리듬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조직문화와 리더십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고민해 왔던 나의 ’직업병‘일까? 한 권의 에세이집을 읽으며 그 안의 감성에 흠뻑 젖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의 ‘카페 사장’, ’팀 리더‘로서의 모습이 읽혔고, ’좋아서 하는 카페‘의 팀 문화가 자연스럽게 포착되었으니 말이다.
2.
한 회사에서 이십 년 가까이 근무해 오면서 우리 회사 구성원들을 제법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동료와 대화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나는 우리 회사 구성원의 특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가 되어있었고 나 역시도 그런 전문가 타이틀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우리 회사가 더 나은 회사가 되기 위해 구성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려 할수록 우리 구성원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곤 했다. 달리 말하면, 우리 회사 구성원들을 포괄하는 공통적인 특질을 지닌 페르소나를 구체적으로 그리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그간 외쳐온 우리 회사 구성원들을 위한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것이 공염불과 같은 공허한 캠페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들기도 했다. 마치 명확한 타깃을 모르는 채 무수히 많은 화살을 열심히 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발견하게 된 보석 같은 깨달음이 하나 있다. 회사 전체 조직 구성원을 한 덩어리로 바라보며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 가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각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마주하는 ’생활공동체로서의 단위조직‘의 경험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무수히 많은 계약 관계가 얼기설기 연결된 독립체(entity)가 조직(Organization)이라고 할 때, 구성원 개인이 떠올리는 ‘회사’는 경영자보다는 매일 마주하는 ‘팀 리더’나 ‘중간관리자’일 가능성이 높다. 회사의 전체 문화도 중요하지만, 구성원 개인에게 더 중요한 건 내가 속한 생활공동체 안에서의 분위기(mood)다. 그 분위기는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지만, 무엇보다 ‘단위조직 우두머리’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3.
리더가 팀 구성원의 표정을 ‘매일의 날씨’ 확인하듯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도 이상적이어서 우리의 일터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감성이 풍부한 카페 사장님‘만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냉소 섞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더욱이 조직의 규모가 백 명, 천 명, 만 명에 이르면 리더가 구성원의 표정을 살필 여력이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구성원의 표정을 살피는 일‘은 생활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자칫 회사의 부속품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구성원 각자는 실은 자신의 고유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구성원은 개인 일상의 삶과 일터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 속에서 자연스럽게 희로애락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조직문화에서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동기부여(motivation)나 몰입(engagement)과는 다른 층위에서, 구성원 개인의 에너지(energy) 수준이 매일, 매 순간 변화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에 리더는 이를 주목하고 살펴서 더 나은 조직 분위기(mood)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리더의 노력은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참여를 가져온다.
‘고객의 불만을 접수했을 때 리더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말을 조직문화 관점으로 번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먼저 솔선수범의 자세로 구성원에게 모범을 보이고,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 피드백하되, 방식은 비폭력 대화로 한다.’ 많은 리더십 단행본을 읽어왔지만 이렇게 쉽게, 하지만 명확하게, 피드백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한 책은 없었다.
거의 모든 조직 인사담당자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구성원 리텐션(Retention)’이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게 할지 여러 방면으로 궁리한다. 보상체계와 일터 환경, 복리후생 개선에 힘을 기울이다. 그럼에도 여러 형태의 ‘당근’들이 비실비실 힘을 못 쓴다. ‘왜 그럴까?’ 오랫동안 생각해 왔는데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구성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구성원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라고 응원하느냐?’와 같은 질문에 진정성 있게 답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싶다.
‘구성원과 고객을 내담자로 생각하며, 함께 하는 동안 함께 행복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는 것’,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구성원을 ‘내담자’로 바라본다는 시선은 내게 날 선 도끼같이 다가왔다. 인사담당자로서 구성원의 경력개발과 관련된 면담을 할 때 그들의 성장을 돕는 마음이었지만 ‘내담자’라고 명확히 바라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을 단위조직 리더가 갖는다면 분명 그 조직의 구성원은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아가, 구성원을 함께 행복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는다면 그 믿음은 고스란히 구성원들에게 전달되어, 함께 하는 동안 진정 행복한 일터 경험을 할 것이다.
4.
‘모든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를 통해 재창작된다.’고 믿는다. 카페에서의 경험을 짙은 농도로 담아낸 정인한, 작가의 <커피의 위로> 역시 더 이상 그의 품 안의 작품이 아닐 것이다. 에세이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작가의 감정과 경험을 따라가면서 그 이야기에 깊은 울림으로 공명하는 한편, 조직문화를 탐사하는 탐험가로서 작가의 리더십과 조직문화 관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영감을 얻었다. ‘좋아서 하는 카페’의 바리스타이자 대표이자 작가인 그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9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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